브리스가 목사

THE POWER CHURCH 담임 목사

주식회사 밸류체인 홀딩스 대표

종합건설사 신성 합자 법인 이사

종합건설사 지음산업개발 이사



Story


가난한 신학생에서 억대 연봉자를 만드는 목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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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된 위조할 수 없는 기록 


함께 했던 성도들의 삶에 나타나고 있는 지속적인 기도 응답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구체적인 삶의 돌파


2017년 여름 

‘내게는 주님께서 주신, 절대로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정착하게 만드는 달란트가 있다. 억대 연봉자도 여럿 배출했다’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 인터넷에 믿음과 기도에 관한 칼럼을 올리기 시작함 

3년 후

lazy 크리스천들의 실태와 현실을 직시하게 됨. 함께하는 이들에게 성령 체험 등 기름 부으심은 나타났으나 그것을 통해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지는 못함

성실한 알곡 멤버를 선별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6년 후 

다수의 억대 연봉자를 배출하는 등 멤버 전원이 매출 증가와 인간관계 회복, 건강 등 구체적인 삶의 돌파를 경험하게 됨. '이렇게 큰돈은 처음 벌어 본다'고 말하는 소득 최대치 갱신 사례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음 

지체들이 계속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하여 플랫폼 형태를 띄게 됨. 멤버들 끼리 서로 돕다보니 신입 멤버들의 성장 속도가 가속화됨

플랫폼 성장과 맞물려 브리스가의 저서, 온라인 활동 내역, 함께하는 성도들의 간증이 그에 대한 신뢰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하며 투자금이 끊이지 않게 됨

100억대 규모의 공사를 여러 곳에 분산투자 + 우량 사업체들과의 금융 거래를 모두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력이 생김

자산가들의 상황에 맞는 자산관리를 컨설팅 하게 됨. 법인을 설립하여 돈을 벌게 해드리고, 비용처리부터 세무 회계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방식으로... 이런 건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임

노동 대신 시스템으로 돈을 버는 수익의 다각화 완성 

고액 자산가의 상속, 증여, 치매 등 정신 지체를 가진 분들의 자산 관리, 명의신탁 등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거래의 상층부에 입성하게 되는, 바라던 것들의 실상이 눈앞까지 다가옴 (히 11:1)

교회라 불리는 플랫폼 리더인 목사님들과 컨택이 시작됨. 플랫폼 대 플랫폼의 만남은 배수의 원리로 성장이 가능하여 곧 30배, 60배, 100배의 성장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플랫폼에 온, 한 사람 만큼은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 되도록 리스크 관리와 집중케어를 받게 됨



소수의 성도를 선별하여 집중하자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모인 멤버들은 서로를 지지하며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멤버 한 사람이 천 명을 이길 수 있도록 만드는, 인당 생산성 최대치를 이끌어 내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여호수아 23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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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보잘것없는 한 청년의 기도를 잊지 않고, 진지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긴 역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몹시 가난한 한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주님의 일을 하고 싶어 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목회자를 꿈꾸며 기도했습니다. 몇 년 동안 그가 드렸던 기도는 애절했으며 간절했습니다. 그는 신학대학 동기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목회자들을 후원하는 목회자가 될 겁니다”


그러나 청년은, 목회자인 부모님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Lazy Christian에게 시달리시는 모습을 보며 목회를 포기하게 됩니다. 청년이 신학대학에 입학할 즈음, 청년의 부모님은 사업부도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조그만 지하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목회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쳥년은 ‘예수님이 좋은 것’과 ‘목회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마이너스 통장은 늘 한도치에 달해 있었고 성전 임대료는 몇 개월씩 밀려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 청년이 생각하는 목회자의 삶이란 궁핍과 돈에 대한 쪼들림이 늘 함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다 못한 청년은 부모님께 목회를 중단하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가 그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부모님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늘 부모님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자녀로서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목회지에는 노숙자 또는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분들이 주로 계셨던 터라 교회의 유일한 운영자금은 이모부부, 삼촌부부, 어머님과 함께 해온 친구 같은 동역자 분들이 보내 주시는 헌금이 전부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들어온 후원 헌금들로 성도들에게 반찬을 만들거나 찬거리를 사서 주시기도 하시고 항상 무엇인가를 베풀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성전 임대료가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교회에서 주는 구제 물품과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지내던 분들이 교회를 떠날 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나는 모습을 자녀로서 모른 척 지켜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돈을 빌려 달라거나 자신이 하는 다단계에 같이 가달라거나 보험을 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전혀 필요가 없을 200만원 상당의 무전기를 가져와서 팔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청년의 부모님께 큰 소리로 화를 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청년이 부모님께 말했습니다.

“차라리 목회를 그만 하시거나, 다른 교회의 부교역자로 들어가시면 안 되나요?”


당연히 부모님은 청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통해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교회는 닫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다’


청년의 눈에 비친 부모님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TV에 출연하는 훌륭한 분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청년은 자신의 지난 과오를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지, 부모님이 하시는 일이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부모님은 옳은 일을 하시는 것인데 내가 사역에 도움이 될 정도로 충분히 돈을 벌면 될 일 아닌가.’


청년은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목회자의 길을 가는 대신 돈을 벌어 부모님의 목회를 돕기로 결단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를 돕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청년의 기도는 어떻게 될까요? 청년이 포기했으니 하나님도 포기하셨을까요?

 


'돈이 생긴다 해도 절대 부모님처럼 임대료를 지불하며 교회를 개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청년은 수없이 다짐합니다. 그는 부모님의 오랜 부탁에도 끝내 목사 안수를 받지 않습니다. 과연 이 청년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을까요? 


목회자가 된다고 신학대를 갔던 사람이 목회자의 길을 버리고 돈을 벌러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과연 주님께서는 이 청년과 함께 해 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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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길을 내려놓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한 청년은, 왜 기도가 필요한지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축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간증과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기도 응답에도 일종의 노하우 비슷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반면, 10~20년씩 교회 다니면서도 이렇다 할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분들을 살피며 그들이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청년의 삶에 기도를 하니까 응답이 되고, 응답이 되니까 힘이 나서 몇 시간씩 기도를 하게 되는 선순환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청년은 억대 연봉자 모임 최그 그레이드 달성자가 되었습니다.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차라리 돈을 벌게 해달라’고 주님께 드렸던 나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이것은 MDRT협회 최고 등급인 Top of the table 인증서이다. 한 해 동안 4억 4천만원 이상을 번 사람들에게 부여된다. 나는 보험사에 입사한 이후로 한 번도 MDRT기준을 놓친 적이 없다. 실시간으로 뒤바뀌는 전국 사원 매출 순위표에서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MDRT 협회 최고 그레이드를 달성한 후 내게 찾아온 것은 깊은 우울감이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구나’

 

기도 가운데, 잊고 지냈던 목회자의 꿈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차마 목회자의 길을 갈 엄두는 낼 수 없었다. 반드시 망할 것만 같았다.


나는 어떤 불가능한 상황이 와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도록 주님께 훈련받았다. 기도하며 악착같이 맞서다 보면 피할 길이 열리곤 했다. 적어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안 좋은 상황이 와도 속수무책으로 있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목회만큼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목회자의 길을 가는 대신, 그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하며 삶을 돌파하는 방법을 전하기 위해 ‘그 힘 사용 설명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출간 후 판촉 활동 겸 시작한 블로그를 통해 ‘나를 주님께서 보내신 메신저’라 믿고 가이드에 따라주는 지체들을 만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지체들을 통해 나의 목회 트라우마를 부수어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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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최초의 그 힘 사용자는 부모님이었다. 필자의 부모님은 한 푼 없이 시작한 사업체를 현재가치로 수백억대의 규모로 일구어 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거래처 중에 오뚜기 같은 중견 기업이 있어 반가워했던 것이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사업부도 후에도 난생처음 도전하는 분야에서 예외 없이 성공을 일구어 냈다. 생면부지의 신도림 곱창집 주인에게 부탁해서 전수 받은 레시피로, 강남 포이동에 순대곱창집을 열어 폐점 상태이던 상가를 권리금까지 두둑이 받고 매도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양은으로 만든 들통에 수제비나 호박죽을 담아서 동대문 상인들에게 팔아 자녀들의 학비를 대주기도 하셨다. 무엇이든 하는 부모님이셨고 일단 하면 실패는 하지 않는 두 분이었다. 딱 한가지만 빼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 또한 어느 정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한 가지 확신이 있다.

“절대로 망하지는 않는다.”


확신의 근거를 묻는다면 첫 번째는 믿음이다. 믿음은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설명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다.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믿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설명으로도 돌려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기도이다. 기도하며, 도전하려는 아이템의 가능성과 리스크를 분석해본다.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더욱 기도에 몰입한다. 그러다보면 그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기 시작한다. 전능자와의 대화인 기도는 강력한 에너지와 지혜의 보고를 여는 열쇠이다.


평소의 내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탁월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그 일이 재밌어서 못 견딜 정도가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워크홀릭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머릿속은 온통 그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길이 열리고 전진이 시작된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속도가 붙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용기를 얻어 더욱 힘을 내게 되고, 더욱 힘을 내니 더욱 속도가 붙는 선순환이 시작 된다. 


나는 이 공식이 세상 어떤 것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딱 한 가지만 빼고... 그것은 목회자에게 찾아오는 가난이다.

 

내게는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다. 목회를 제외하면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업장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목회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님, 성도들이 많이 와서 월급 좀 많이 받게 해주세요. 연금도 부을 수 있게 해주세요. 차도 좀 바꾸려고요. 집 좀 사게 헌금 많이 하는 성도들을 보내주세요.”


세상에 이런 기도를 하는 목회자가 있을까?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고 싶은 사람은 목회자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서 신학대학을 졸업했지만 뜻하지 않게, 극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일종의 목회 트라우마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목회를 하면 망할 것만 같다. 간신히 밥이나 먹으며 가족들까지 고생시킬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목회는, 성실하고 능력있는 필자의 부모님에게 최초로 완벽한 실패를 선사했다. 기복이 없었다. 그냥 꾸준히 어려웠다. 엄밀히 말해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회를 ‘성도들을 양육하는 목양’과 ‘교회의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경영’으로 구분지어 본다면 목양에서는 성공했다. 


노숙자와 경제적으로 빈곤한 분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신 부모님은 지역사회에서도 인정 받을 정도로 헌신적인 삶을 사셨다. 그러나 경영에 있어서는 완벽한 실패를 이어오셨다. 부모님은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급여를 받아 보신 적이 없다. 


자녀들이 드린 돈, 지인들이 드린 돈 구분 없이 모두 목회에 사용되었다. 많이 드리면 더 많이 써야 할 곳이 생겼다. 얼마를 드리건 부족한 재정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교회 운영비로 발생한 대출이 발견되었다. 그런 부모님의 삶을 지켜본 나로서는 도저히 목회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필자의 책에서 짧게 다루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사업부도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불편들을 경험했다. 그 중에는 누군가의 자살 이유가 되었을 만큼 무거운 경험들도 있다. 나는 목회를 생각하면 그때 그 가난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에게는 ‘목회 =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지독한 가난’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다.


병원에서 죽음을 선고 받은 이들과 해결 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있던 이들이 부모님의 기도를 통해 해결 받는 경우를 적잖이 보았다. 필자가 보기에 부모님의 기도는 응답이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하나님께 월급을 달라고, 노후준비를 시켜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으셨다. 필리핀의 안영호 선교사님도, 미얀마의 SK선교사님도 모두 그러했다. 


그 분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목회자의 자격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고, 목회는 돈을 버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되겠기에 나 같은 사람은 목회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내 눈에는 목회자들의 경제적으로 부족한 모습만 보인다. 유튜브를 틀어도 ‘은퇴준비를 하지 못한 목사님들의 빈곤한 노후’에 대한 영상만 보게 된다. 


오래전부터 은퇴한 목회자들을 위한 타운 하우스를 계획하고 있다. 입주 대기자 중에는 필자의 신학대학 동기들도 있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어째서인지 이런 기도, 다른 목회자를 위한 기도는 잘 된다. 하지만, 나의 목회를 위해서는 기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긴 세월 부모님의 목회를 바라보며 느낀 것은 


‘목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계속 베풀면서 계속 핍박받는 것,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아지면 큰 교회로 가버리는 성도, 그래서 언제나 헌금할 사람이 없는 교회, 가족들과 지인들의 후원이 없으면 대출을 써야 하는 것, 10번 잘해주다가 1가지 마음에 안 들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좋은 것이 선물로 들어오면 무례하고 배은망덕한 성도에게 줘야하는 것, 말만 앞서고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 목회자 혼자서 청소부터 밥까지 모두 다 해야 하는 것, 밀린 성전 임대료, 그래도 일용할 양식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



좋은 성도들도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그렇지 않은 교인들이 많았다. 나빠도 너무 나빴고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회 경영에 있어서만큼은 타당성이 보이지 않았다. 타당성이 보이지 않으니 간절한 기도가 나오지 않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니 목회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세팅이 되지 않는다. 늘 마음속에는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한 죄송함’이 부담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눔과 전도를 실천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얻어 보려 노력했지만 계속해서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 나라의 정규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하나님 나라의 정규직이라 함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반드시 본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일 하고 싶을 때만 일하는’ 비정규직으로 살아왔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늘 정규직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나만의 사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돈 되지 않은 산만한 기도뿐이었다.


“한국, 미얀마, 필리핀의 미자립 교회를 충분히 도울 수 있도록 제가 하는 모든 사업을 축복해 주세요. 원하신다면 저도 목회자로 써주세요. 하지만 솔직히 목회는 못하겠어요.”


연로한 부모님과 필리핀 선교사님을 대신해서 교회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두 곳 모두 고사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강경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면 두려워서라도 순종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내게 강요하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주님께서는 내가 기쁨으로 자원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그러던 중 세상 말로는 뭔가에 홀린 듯, 성경적 언어로는 주님의 섭리 가운데 나는 ‘그 힘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나는 여기서부터 모든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강권적인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책은 베스트셀러에 선정 되었고 사업 또한 평생을 기도해 왔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도하심을 따라 블로그를 개설하고 식어버린 성도들의 기도에 불을 붙이는 ‘기도 부흥’사역이 시작되었다. 이따금 독자분들이 ‘그 힘 사용설명서’를 읽고 경험한 간증을 말해주곤 한다. 그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나는 정규직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 내게도 정기적으로 해야 할 나만의 사역이 생긴 것이다.


계속해서, 나의 목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들을 부수시는 주님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기도 부흥 사역에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나타나서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사역을 함께하고 있다. 늘 혼자 감당해야 했던 선교에도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이들은 언제나 내가 기대했던 그 이상의 업무량과 성과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말만 앞세우지 않았다. 자신의 헌신에 대해 자랑하지도 않았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지켰다.



나에게 기도란 ‘주실 것을 믿고 주실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게 기도해왔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목회를 위해 그렇게까지는 기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 내가 기도한 것에 비해 과할만큼 부어주시는, 이것은 ‘은혜’이다.


함께 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진짜로 보내 주실 거라는 믿음은 없었던 것 같다. 분명,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응답이 된다. 하지만, 내게는 그만한 믿음은 없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필요한 인재들을, 필요보다 넘치는 능력의 사람들로 채워주셨다. 내가 가진 믿음보다 넘치게 부어주시는, 이것은 분명 ‘은혜’이다.


나는 선교헌금 모금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금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동역자 분들의 자발적 제안을 거듭 만류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도 기대가 되지 않았었다. 보나마나 얼마 걷히지도 않을 헌금 때문에 함께 하는 분들이 신경을 쓰는 것도 싫었고 부담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는 반복된 제안에 마지못해 승낙을 하긴 했는데... 이번에도 나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나의 부정적인 목회 선입견이 씻겨 내리고 있었다. 이런 분들과 함께 한다면 목회든, 선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막상 힘든 상황에선 힘든 줄을 모른다. 모든 어려움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힘든 상황에 있었고 힘들어 했었구나.”


이제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나는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혼자 사역을 하며 외로웠었고 때로는 힘들어 했었구나. 부모님을 가난 가운데 방치하신 듯한 하나님께, 나도 모르게 토라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상한 마음을 주님께서 사랑과 인내라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어루만지셨음도...



사람들은 이따금 우중충한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가난했던 그 시절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 싫고 주님을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날뛰어도 스스로를 통제 할 수 없던 옛 자아와 마주하는 것이 싫다. 무엇보다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그곳에는 없기에 나는 지금 이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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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체들에게 기도 훈련과 동시에 삶에 필요한 실질적인 컨설팅을 해드렸고 구체적인 삶의 결과물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교회 사람들에게 돈을 떼이고 떠돌이 교인 생활을 하던 홍채아성도가, 필자의 부모님 시무교회에 십일조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연이어 다른 지체들도 헌금에 동참했다. 나는 처음 경험하는 헌신에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져서 성도들이 교회 예배를 아예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왔고 나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지체들과 함께 메신저로 예배를 드렸다. 나아가 1개월간 매일 밤마다 작정 기도회를 열었다. 방언 등 성령 체험과 재정 축복, 영육 간의 건강 회복 등 응답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배자 전원이 100% 기도 응답을 경험했다. 억대 연봉자 두 명을 포함, 벌었던 소득의 최고치를 갱신했다는 간증들이 이어졌다. 증인들이 없었다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신기하고 다양한 응답들이 연거푸 쏟아져 성도마다 따로 응답 리스트를 만들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새 나는 목회를 하고 있었다.


“저희 부모님께서 이사님은 목사 안수 안 받으시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성도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느끼게 해드릴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 안수를 받게 된 이야기 (클릭)


그리고 얼마 후, 교회부지를 헌당한 성도님이 나왔다.

사역을 위해 500평을 헌납한 성도님 이야기 (클릭)



평소 청년은 주변 성도들을 도우며 살아왔다. 성도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첫 번째로 섬겼던 대상은, 중풍으로 신체 절반을 쓸 수 없게 된 부모님 시무 교회의 한 집사님이었다. 그녀는 대변처리를 손으로 해서 벽에 문지를 정도로 정신조차 온전치 못했다.

 

청년은 집사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할 수 있다’고 응원하며 함께 기도하며 운동을 시켜 드렸다. 당시의 청년은 생활보호 대상자인 집사님보다도 가난했다. 아니 그는, 그가 섬겼던 어떤 사람보다도 가난했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세울 순 없어도 성도를 세울 순 있다고 믿었기에 성도들을 돌보며 살았다.

 

결과적으로 주님께서는, 청년이 세운 성도들을 재료로 사용하시어 교회를 지으셨다.


1세대 교회: 교제 중심, 초대 교회, 모이기를 힘썼다.

2세대 교회: 건물 중심, 개척하려면 하다못해 천막이라도 있어야 했다.

3세대 교회: 사람 중심, 사람만 있으면 어디서든 개척이 가능하다.


청년이 성도들을 세우자 성도들은 그를 목회자로 세웠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리스크는 없었다. 성도가 기둥이고 벽돌이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성도가 사라지면 교회도 사라진다. 성도 한 사람이 교회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이렇게 교회를 설계하면 적어도 교회가 돈 때문에 문을 닫는 일은 없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진심만 있다면 목회자는 돈이 없어도 교회 개척이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성도들이 모여 재정이 충분해 지면 오프라인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내게 리스크 없이 교회를 설계하는 방식을 주셨고 완성까지 해 주셨다. 나는 주님께서 주신 이 방식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사업장을 리스크로부터 보호하며 세워나갈 것이다.



‘목회자들을 후원하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청년의 선포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장 10절)

개척이 가능하다.

세워진 성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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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이야기


The Power Church

대한예수교장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