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에도 터전을 옮기는 것에 따른 다양한 리스크를 가족들까지 함께 겪게 되므로 사실상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SNS를 통한 미디어 선교는 누구나 리스크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SNS의 역기능을 역이용한 미디어 선교
미디어의 영향력은, 영상물이나 음악으로 사람을 세뇌 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사람을 잘못 만나서 사기, 납치, 살인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SNS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 관계를 형성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리적 이동이나 지출 없이 안전하게 누구나, 기독교를 박해하는 지역에 리스크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 선교의 효율
1. 미디어는 한 사람이 수십~ 수 만명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2. 한번 컨텐츠를 업로드해 놓으면, 그 컨텐츠가 나를 대신해 24시간 365일 메시지를 전한다.
3. 팔로워가 모이게 되면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그야말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육성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과 달리, 온라인에 업로드된 컨텐츠는 영원히 세상에 남아서 내가 전할 메시지를 대신한다. 내가 전한 메시지가 공유되어 세계를 돌며 선교 여행을 하는 것이다.
미디어 선교를 통해 부어 주신 축복
미디어 선교를 진행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후원자를 만나기도 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물 나게 고마운 동료들을 만나기도 한다. 동료 중 일부는 사업에 큰 도움을 주는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주님 안에서 같은 뜻을 가진 세계 각국의 검증된 크리스천 전문가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집단 지성’이 형성된다. 성실하고 능력있는 크리스천으로 이루어진 집단 지성은 멤버들을 다양한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도하려는 어린 청년 선교사들에게 음흉한 목적으로 다가오는 시도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이 분이 저에게 직접 만나서 상담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악인은 교회 안에도 있고 성도들은 생각 이상으로 순진하다. 성도들로부터 듣는 교회 내에서 입은 피해 사례는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아닐 수 있어도 나의 자녀나 주변 지인들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밸류체인에서는 멤버 모두가 서로를 함께 돌보며 직장, 회사, 친구들과 겪는 문제까지 중보하며 객관적 판단을 돕는다. 어떤 악도 틈탈 수 없도록 마땅히 상의할 곳 없는 고충에도 함께 한다. 즉, 뭔가에 홀린 듯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일이 없게 된다.
‘관행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모든 부당함에 대해서도 다수의 시선을 통한 객관적 통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언자 모두가, 까다로운 점검 과정을 통과한 검증된 멤버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밸류체인 멤버들에게는 그 어떤 형태의 사기나 정서적 학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용하려는 착취가 원천 봉쇄된다. 직장은 물론 교회에서 지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 어떤 불합리한 행태에 대해서도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밸류체인은 함께 선교에 동참할 보석같은 멤버들을 찾고 있다. 가까이는 국내 선교, 멀리는 신변의 위협을 요하는 복음의 불모지까지 안전하게 직장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것이다.
능력이 입증되면 따르려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권세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권능이라 합니다.
권능을 가진 사람이 잘못 휘두르게 되면 다양한 피해사례가 속출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권능은 하나님께 있어야만 합니다.
밸류체인은 특정인에게 권세가 주어지지 못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설립자인 저는,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도록 인터넷이라는 노출된 공간에 자신을 오픈시켰습니다. 저의 모든 행동은 멤버들로부터 모니터링 되고 있습니다. 신규 멤버를 제가 어떻게 섬기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풀어 가는지...
만일 은혜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그 사실을 인터넷에 적시하는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저 또한 멤버들에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만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그 사실을 인터넷에 적시하세요.”
부정적인 글들이 누적된다면 저는 앞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어떤 사업도, 사역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없도록 배수의 진을 치는 것입니다.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힘이 좀 생겼다고 멤버들을 함부로 대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곧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멤버들을 보며 자신의 그런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밸류체인이라는 집단 지성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그리스도의 인격을 추구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춘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제대로 된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경거망동(輕擧妄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다루시는 주님의 방식은 꾸짖음이 아니라 진정한 권능을 보여 주시고, 은혜로 도와주신 후, 한 발짝 물러서서 그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배울 만큼 배운 분, 알 만큼 아는 분, 가질 만큼 가진 분들이 밸류체인에 있습니다. 모두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교회의 자원이 열매 맺을 수 없는 밭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질서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질서를 지키는 사람만이 교회로부터 아낌없는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만이 강조되다 보면 교회는 철저한 이익집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의가 요구되는 현장에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격조건이 되지 않는 자들에게도 베풀어지는 은혜’입니다. 은혜는 영혼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구제가 봉사자에게 아무 유익도 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3~4절)
사랑은, 상대방이 답답하게 굴어도 오래 참고
사랑은, 상대방이 무례하게 굴어도 온유하며
사랑은, 내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베풀었는지 그의 앞에서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내게 도움을 청해오는 상대방 앞에서 지위를 이용하여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는
이런 사랑을 우리는 주님께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같은 사랑을 우리도 한 번 세상에 전해보라’ 하시기에 순종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 기능, 구글은 검색기능, 교회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을 제공합니다. 성도는 전도대상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구원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최선의 섬김을 제공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위대한 능력’을 작동시키는 스위치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단다. 이제 내가 너희와 함께 할테니, 너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장 20절)”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르친 것을 ‘지키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할 수 있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권세는 아낌없이 베푸는 진심 어린 사랑을 통해 나타납니다. 진심 어린 사랑에는 악인조차도 회심하여 주님께 순종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을 통해 베풀어지는 사랑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감정에 영향을 크게 받는 인간은, 자신이 베푼 진심에 대해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도 없을 때 점점 의욕을 잃게 됩니다. 억지로 힘을 내려고 노력도 하지만 기쁨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열매가 전혀 없기만 할 때, 성도는 더 이상 열심을 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성도가 열심을 내지 않게 되면 교회의 성장이 멈춥니다.
[건강한 교회]
기존 성도들이 새 신자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풂 → 새 신자는 그 사랑이 고마워 교회에 계속 출석하다가 주님을 만나 성도의 무리로 합류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그림
[아픈 교회]
선순환 구조가 깨진 상태, 기존 성도들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태도로 새 신자를 맞이함 → 새 신자들 또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서비스에 교회를 떠남
진심이 담기지 않은 섬김을 베풀게 된 이유를 성도들에게서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해 와서, 교회와 성도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문제만 일으키다가 떠나는 ‘떠돌이 교인’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새로운 교인이 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경계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쁜 밭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쭉정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고... 그러니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찍어 내어 버리라고...
문제는 우리의 눈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8~29절)
종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 “가만히 두라.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섬겼던 사람에게서 보람조차도 느낄 수 없고, 늘 배신과 이용당하는 것 같은 상실감만을 계속 경험한다면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교회는 유지될 수 있을까요?
마케팅 전문가들은 트렌드를 분석하여 대중들의 심리 상태를 살피고 앞으로의 판매 전략을 세웁니다.
예의 주시해야 할 대중들의 움직임 중에는 ‘프로토콜 경제’라는 키워드와 ‘탈중앙화’가 있습니다. 이는 과거에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던 중앙집권세력으로부터 ‘why’를 던지며 독립하려는 움직임입니다.
[과거의 메신저 사용자]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쓰게 해 줘서 고마워요”
[오늘날 메신저 사용자]
“우리 정보로 그렇게 막대한 돈을 벌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다니 다른 곳을 찾아보겠다. 아니 그냥 우리끼리 모여서 만듭시다”
페이스북, 구글 등 플랫폼 기업들은 우리가 쇼핑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던 기록 즉, 빅데이터를 광고 업주들에게 제공하여 막대한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용자들은 플랫폼을 이루는 구성원이자 매출의 주체라서 사용자들이 없으면 플랫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업 덕분에 사용자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품질이 같다면 자신에게 혜택을 주는 쪽으로 가려는 것은 당연한 심리입니다. 그래서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몽한 대중들의 자기 몫을 찾기 위한 움직입니다. 블록체인 기술 역시 탈중앙화를 가속화합니다. 세계인들은 비트코인이라는 매개체로 연합하여 은행과 정부의 화폐 발행 권한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정부들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서민들의 자산가치를 주기적으로 반 토막 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자신에게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모든 세력에게 ‘why’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역시 이런 대중들의 ‘why’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 한 교회의 청년부 리더들이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왜 자꾸 헌신을 강요하냐’고 단체로 내년 직책을 맡지 않겠다고 말하며 교회를 떠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교회는, 차마 말로 꺼내 놓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의 불만을 읽을 수 있어야 교인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놓치며 살아왔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문제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기쁨은커녕 우울증약조차 끊을 수가 없는 상태로 10년, 20년 째 살고 있는 성도들...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원을 누가 다니겠습니까? 병이 낫지 않는 병원을 누가 가겠으며, 변화와 발전이 없는 멘토를 누가 찾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내가 왜 많은 교회 중에서 이 교회에 헌신과 헌금을 드려야 하는지 대중, 아니 성도들이 ‘why’를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사례비라도 받지만 나는 얻은 게 뭐가 있나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거래 관계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래 관계보다 못해서는 대중들을 교회로 이끌 수 없습니다. ‘성과 없음’을 ‘당신의 믿음 때문’이라고만 말하면 성도들은 교회이탈로 응수할 뿐입니다.
기도에 불을 붙여 기적과 같은 성령 체험을 보여 주든지, 진심이 느껴져서 내가 교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도록 정서적 안정감을 주든지, 온 교회가 나서서 안정적인 삶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드리고 있는 헌신에 대한 ‘why’에 답을 얻길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식당에서 우려해야 할 것은, 고객이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시는 찾지 않는 상황입니다. 교회 또한 성도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고 떠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기반한 지성으로 바라보면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구체적인 변화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영에 있어 트렌드를 읽는 안목은 중요합니다. 트렌드에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역시 대중이므로 트렌드를 알면 성도들의 심리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예들 들어, 교회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개설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은 모두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주요 트렌드를 분석하여 교회 경영에 적용했고 의미 있는 결괏값을 얻었습니다.
#플랫폼
#메타버스
#블록체인
#프로토콜_경제
이를 모두 반영할 수만 있다면 4차 산업으로 인한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교회,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회, 평신도가 살고 목회자도 살 수 있는 교회가 만들어집니다. 기존의 무료 인프라를 이용하는 매시업(mash-up) 방식으로 진행하면 리스크는 없어지고 성장 가능성은 무한대가 됩니다.
플랫폼 = 교회
블록체인 = 지체 (밸류체인의 모티브)
비트코인 = 성도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교회 설계방식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로 개척에 성공해서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 또한 형통해지는 선순환을 예외 없이 누리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2절)
- 목사님은 성전 임대료 등 재정 문제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일이 없어집니다. 돈 때문에 목회를 못하게 되는 일이 사라집니다.
- 평신도는 창업 실패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일이 없어집니다. 재정적 리스크로부터 안전해집니다.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며 무조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게 됩니다. 노력하면 30배, 60배, 100배의 성장을 거두는 것이 수월해집니다.
- 교회의 주요 기능인 지체 역할이 회복됩니다. 지체란 신체 일부를 뜻합니다. 이 기능이 회복된 교회는 대단히 강력합니다.
오늘날 비즈니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플랫폼이라 함은 사람들을 모아 놓은 모든 형태를 뜻합니다.
사람이 모이면 거래가 발생하고, 거래가 발생하면 매출이 발생합니다. 판매, 광고, 서비스 등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매출이 발생합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구글 등을 보면 이런 부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돈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업들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으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회를 베이스캠프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태생 자체가 비즈니스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즉, 플랫폼은 기독교인에게 가장 유리한 기술 환경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추월만 당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모임은 제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작은 한 개의 교회만으로도 파급력은 엄청 납니다. 상상 이상의 큰 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들을 연결시키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플랫폼
#주식회사
#블록체인
#협동조합
이 모든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뭉치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리스크에도 최적의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의 최대 장점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카카오톡 하나로 얼마나 다양한 사업이 파생되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환경을 통해 주실 수 있는 복을 제한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한 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크고도 비밀한 일을 보이실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아 33:3)
보증금 5000/250, 20평 남짓한 교회의 임대료치고는 처음부터 부담스런 금액이었다. 목사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사모님 혼자 쓸쓸히 교회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애달프다. 강남 하늘 아래, 그렇게 또 하나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세상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당연한 원칙이 있습니다.
- 병원비가 없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
- 음식값을 내지 않으면 굶는다.
- 임대료를 못 내면 쫓겨난다.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면 적자가 발생하고 누적되면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교회 역시 그러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임대료를 내지 않으면 퇴거당합니다. 실제로 개척교회가 문을 닫는 비율은 자영업자 폐업률을 상회합니다.
유럽의 교회는 이슬람사원 또는 무도회장으로 팔려나가고 한국의 교회들 또한 이단의 손에 넘어가곤 합니다. 서두에 언급한 교회 역시 이단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돈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업무적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한다’는 말 대신 ‘망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성공의 기준이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약속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컨설팅을 받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최소한 먹고는 살게 됩니다. 당사자의 역량에 따라 큰 성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필자의 달란트는 지난 6년 동안 블로그를 통해 모집한 생면 부지의 성도들을 통해 여러 차례 증명되었습니다.
최저 임금에서 시작해 억대 연봉을 넘어서는 모든 과정이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삶의 돌파를 경험했고 당연히 실패한 사람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함께하는 지체들은 사역의 열매인 동시에 필자의 달란트를 증명해 주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컨설팅을 받으면 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지능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오픈된 공간에서 열매와 증거들을 갖추기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모두 비용 한 푼 받지 않고 한 분 한 분께 집중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자리 잡은 멤버들은, 다른 지체들도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밸류체인 멤버 최지연 성도님 한 분의 소개로, 1년 동안 멤버들에게 발생한 매출이 6천만 원에 달합니다. 올해는 이를 초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밸류체인을 통해 억대 연봉자가 된 홍채아 성도님은, 최지연 성도님의 자녀 아영이의 인생 멘토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디서든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억대의 돈을 벌 수도 있고, 월 3백 정도는 너무도 편하게 버는 방법을 알고 있는 멘토로부터 그 방법을 코칭 받게 된 것입니다.
밸류체인 멤버들은 이렇게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그 방식 그대로, 신학생 때부터 선포해 왔던 ‘목회자들을 돕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완성하려 합니다. 밸류체인 멤버들에게 했던 것처럼 목사님들을 섬기려 합니다.
밸류체인 평신도 멤버분들에게서 서로를 돕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목회자 멤버분들을 통해서도 같은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선배 목사님들이 후배 목사님들을, 자리 잡은 목사님들이 정착하지 못한 목사님들을 살피고 돕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세대에 복음이 흘러가는 통로를 열라”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캄보디아 시골에서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교사들을 구하기 어려웠고, 가난한 시골 어린이들은 4학년 5학년이 되도록 어려운 캄보디아 글자를 익히지 못하다가 밥술이라도 덜기 원하는 부모님들의 한숨 소리에 학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씨를 뿌리는 것이 선교사의 몫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열매를 거두실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대합니다.
이제 곧 예수님 탄생의 계절이 돌아옵니다. (캄보디아는 12월 내내 성탄절축제를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교회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힘들어진 이때 우리 교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더 신실하게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절 안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캄보디아의 많은 초등학교가 절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나라 캄보디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교와 함께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기독교교육의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지요
십자가가 서 있는 교회 마당에서 놀게 해주세요
교회 안에 유치원을 열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교육을 해보려고 합니다. 어릴 때 부터 에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는 어린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중입니다. 앙코르 왓의 후예라는 민족적 자부심도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직도 1% 미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의 삶 가운데 깊이 뿌리내린 우상숭배와 국가의 강력한 불교 정책, 오랜 독재로 부패해진 정치.경제, 그리고 집집마다 안고 있는 깨어진 가정의 상처들은 캄보디아인들이 성숙한 크리스찬으로 성장하는 걸림돌입니다. 캄보디아가 복음이 선포되고 성숙한 크리스찬들이 스스로 교회를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선교사 소개
* 이종용, 신미선 선교사(2007년 캄보디아 입국, 미아중앙교회<담임강명구목사> 파송)
-후원계좌 : 국민은행 667502-01-01-3231 예금주 이종용
* 선교지역 : 바탐방 주 몽르싸이 군 (글로리아 교회) 깜뽕짬 주 쁘레이 초 군 (호산나 센터)
* 주요사역 : 교회 개척사역
유치원 및 기술학교 사역 (2020년 1월 개원 예정)
청소년 및 청년 학사사역
이동도서관 사역
캄보디아 기독교교육연구소 운영
(Christian Education Research Center Shema Cambodia)
2. 기도해 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교회 사역에 주님의 은혜를 부어 주소서.
2020년 11월 개원 예정이었던 팜트리 유치원 개원이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 미뤄졌었습니다. 2021년 1월에는 문제없이 개원하여 팜트리 동네의 어린이들에게 기독교 교육이 실천될 수 있도록 주님 도우소서.
도시와 떨어진 팜트리 동네에 세워질 기술학교 (컴퓨터, 영어, 목공)를 통해 청소년 및 청년들이 복음을 듣고 삶의 자리에 하나님을 만나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을 주소서.
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시골지역이라 교사를 확보하기 매우 어려운데 주님께서 준비된 교사들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샬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은혜와 평강을 기도합니다.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이 때에 또 하나의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그럼에도 바스토교회의 연약함 속에서 이 짐을 서로 지기를 원하시는(갈6:2) 주님의 마음을 감히 생각하며 기도와 동역의 부탁을 드립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감동이 있는 형제, 자매들의 함께해 주심을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소식을 나눕니다.
늘 함께 해 주시는 한분 한분 믿음의 가족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모두의 강건함을 함께 기도드립니다.
서정관 목사 올림
[바스토 교회 사모님의 블로그]
사역 첫 헌금요청 : 예배당 에어컨설치를 위해
안녕하세요. 브리스가입니다.
우연처럼, 주님께서 바스토 교회의 에어컨 이슈 글을 보게 하시어 예정된 칼럼을 뒤로하고 이렇게 공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다가 마음에 감동이 있으셨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마음일 것입니다.
액수 보다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돕는 손길이 한 분은 아닐 것이기에 모이면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칼럼의 링크를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축복의 통로 되신 성도님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바스토 교회 계좌 번호-
농협 어더처치 1300 5255 0010 52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overflowing된 에어컨 헌금/이스라엘과 필리핀과 중국까지!
전통적 방식의 선교 즉, 물리적 파송에는 다음과 같은 리스크가 따른다.
실직
큰 지출
신변 위협
그 외에도 터전을 옮기는 것에 따른 다양한 리스크를 가족들까지 함께 겪게 되므로 사실상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SNS를 통한 미디어 선교는 누구나 리스크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SNS의 역기능을 역이용한 미디어 선교
미디어의 영향력은, 영상물이나 음악으로 사람을 세뇌 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사람을 잘못 만나서 사기, 납치, 살인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SNS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 관계를 형성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리적 이동이나 지출 없이 안전하게 누구나, 기독교를 박해하는 지역에 리스크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 선교의 효율
1. 미디어는 한 사람이 수십~ 수 만명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2. 한번 컨텐츠를 업로드해 놓으면, 그 컨텐츠가 나를 대신해 24시간 365일 메시지를 전한다.
3. 팔로워가 모이게 되면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그야말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육성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과 달리, 온라인에 업로드된 컨텐츠는 영원히 세상에 남아서 내가 전할 메시지를 대신한다. 내가 전한 메시지가 공유되어 세계를 돌며 선교 여행을 하는 것이다.
미디어 선교를 통해 부어 주신 축복
미디어 선교를 진행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후원자를 만나기도 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물 나게 고마운 동료들을 만나기도 한다. 동료 중 일부는 사업에 큰 도움을 주는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주님 안에서 같은 뜻을 가진 세계 각국의 검증된 크리스천 전문가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집단 지성’이 형성된다. 성실하고 능력있는 크리스천으로 이루어진 집단 지성은 멤버들을 다양한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도하려는 어린 청년 선교사들에게 음흉한 목적으로 다가오는 시도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이 분이 저에게 직접 만나서 상담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악인은 교회 안에도 있고 성도들은 생각 이상으로 순진하다. 성도들로부터 듣는 교회 내에서 입은 피해 사례는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아닐 수 있어도 나의 자녀나 주변 지인들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밸류체인에서는 멤버 모두가 서로를 함께 돌보며 직장, 회사, 친구들과 겪는 문제까지 중보하며 객관적 판단을 돕는다. 어떤 악도 틈탈 수 없도록 마땅히 상의할 곳 없는 고충에도 함께 한다. 즉, 뭔가에 홀린 듯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일이 없게 된다.
‘관행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모든 부당함에 대해서도 다수의 시선을 통한 객관적 통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언자 모두가, 까다로운 점검 과정을 통과한 검증된 멤버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밸류체인 멤버들에게는 그 어떤 형태의 사기나 정서적 학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용하려는 착취가 원천 봉쇄된다. 직장은 물론 교회에서 지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 어떤 불합리한 행태에 대해서도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밸류체인은 함께 선교에 동참할 보석같은 멤버들을 찾고 있다. 가까이는 국내 선교, 멀리는 신변의 위협을 요하는 복음의 불모지까지 안전하게 직장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것이다.
능력이 입증되면 따르려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권세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권능이라 합니다.
권능을 가진 사람이 잘못 휘두르게 되면 다양한 피해사례가 속출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권능은 하나님께 있어야만 합니다.
밸류체인은 특정인에게 권세가 주어지지 못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설립자인 저는,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도록 인터넷이라는 노출된 공간에 자신을 오픈시켰습니다. 저의 모든 행동은 멤버들로부터 모니터링 되고 있습니다. 신규 멤버를 제가 어떻게 섬기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풀어 가는지...
만일 은혜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그 사실을 인터넷에 적시하는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저 또한 멤버들에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만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그 사실을 인터넷에 적시하세요.”
부정적인 글들이 누적된다면 저는 앞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어떤 사업도, 사역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없도록 배수의 진을 치는 것입니다.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힘이 좀 생겼다고 멤버들을 함부로 대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곧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멤버들을 보며 자신의 그런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밸류체인이라는 집단 지성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그리스도의 인격을 추구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춘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제대로 된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경거망동(輕擧妄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다루시는 주님의 방식은 꾸짖음이 아니라 진정한 권능을 보여 주시고, 은혜로 도와주신 후, 한 발짝 물러서서 그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배울 만큼 배운 분, 알 만큼 아는 분, 가질 만큼 가진 분들이 밸류체인에 있습니다. 모두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교회의 자원이 열매 맺을 수 없는 밭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질서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질서를 지키는 사람만이 교회로부터 아낌없는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만이 강조되다 보면 교회는 철저한 이익집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의가 요구되는 현장에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격조건이 되지 않는 자들에게도 베풀어지는 은혜’입니다. 은혜는 영혼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구제가 봉사자에게 아무 유익도 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3~4절)
사랑은, 상대방이 답답하게 굴어도 오래 참고
사랑은, 상대방이 무례하게 굴어도 온유하며
사랑은, 내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베풀었는지 그의 앞에서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내게 도움을 청해오는 상대방 앞에서 지위를 이용하여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는
이런 사랑을 우리는 주님께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같은 사랑을 우리도 한 번 세상에 전해보라’ 하시기에 순종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밸류체인은 공의를 담당하겠습니다.
각 교회와 목사님께서는 사랑을 담당해 주십시오.
플랫폼마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가 있습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 기능, 구글은 검색기능, 교회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을 제공합니다. 성도는 전도대상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구원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최선의 섬김을 제공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위대한 능력’을 작동시키는 스위치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단다. 이제 내가 너희와 함께 할테니, 너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장 20절)”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르친 것을 ‘지키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할 수 있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권세는 아낌없이 베푸는 진심 어린 사랑을 통해 나타납니다. 진심 어린 사랑에는 악인조차도 회심하여 주님께 순종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을 통해 베풀어지는 사랑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감정에 영향을 크게 받는 인간은, 자신이 베푼 진심에 대해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도 없을 때 점점 의욕을 잃게 됩니다. 억지로 힘을 내려고 노력도 하지만 기쁨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열매가 전혀 없기만 할 때, 성도는 더 이상 열심을 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성도가 열심을 내지 않게 되면 교회의 성장이 멈춥니다.
[건강한 교회]
기존 성도들이 새 신자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풂 → 새 신자는 그 사랑이 고마워 교회에 계속 출석하다가 주님을 만나 성도의 무리로 합류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그림
[아픈 교회]
선순환 구조가 깨진 상태, 기존 성도들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태도로 새 신자를 맞이함 → 새 신자들 또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서비스에 교회를 떠남
진심이 담기지 않은 섬김을 베풀게 된 이유를 성도들에게서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해 와서, 교회와 성도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문제만 일으키다가 떠나는 ‘떠돌이 교인’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새로운 교인이 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경계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쁜 밭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쭉정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고... 그러니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찍어 내어 버리라고...
문제는 우리의 눈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8~29절)
종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 “가만히 두라.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섬겼던 사람에게서 보람조차도 느낄 수 없고, 늘 배신과 이용당하는 것 같은 상실감만을 계속 경험한다면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교회는 유지될 수 있을까요?
마케팅 전문가들은 트렌드를 분석하여 대중들의 심리 상태를 살피고 앞으로의 판매 전략을 세웁니다.
예의 주시해야 할 대중들의 움직임 중에는 ‘프로토콜 경제’라는 키워드와 ‘탈중앙화’가 있습니다. 이는 과거에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던 중앙집권세력으로부터 ‘why’를 던지며 독립하려는 움직임입니다.
[과거의 메신저 사용자]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쓰게 해 줘서 고마워요”
[오늘날 메신저 사용자]
“우리 정보로 그렇게 막대한 돈을 벌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다니 다른 곳을 찾아보겠다. 아니 그냥 우리끼리 모여서 만듭시다”
페이스북, 구글 등 플랫폼 기업들은 우리가 쇼핑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던 기록 즉, 빅데이터를 광고 업주들에게 제공하여 막대한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용자들은 플랫폼을 이루는 구성원이자 매출의 주체라서 사용자들이 없으면 플랫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업 덕분에 사용자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품질이 같다면 자신에게 혜택을 주는 쪽으로 가려는 것은 당연한 심리입니다. 그래서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몽한 대중들의 자기 몫을 찾기 위한 움직입니다. 블록체인 기술 역시 탈중앙화를 가속화합니다. 세계인들은 비트코인이라는 매개체로 연합하여 은행과 정부의 화폐 발행 권한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정부들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서민들의 자산가치를 주기적으로 반 토막 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자신에게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모든 세력에게 ‘why’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역시 이런 대중들의 ‘why’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 한 교회의 청년부 리더들이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왜 자꾸 헌신을 강요하냐’고 단체로 내년 직책을 맡지 않겠다고 말하며 교회를 떠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교회는, 차마 말로 꺼내 놓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의 불만을 읽을 수 있어야 교인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놓치며 살아왔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문제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기쁨은커녕 우울증약조차 끊을 수가 없는 상태로 10년, 20년 째 살고 있는 성도들...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원을 누가 다니겠습니까? 병이 낫지 않는 병원을 누가 가겠으며, 변화와 발전이 없는 멘토를 누가 찾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내가 왜 많은 교회 중에서 이 교회에 헌신과 헌금을 드려야 하는지 대중, 아니 성도들이 ‘why’를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사례비라도 받지만 나는 얻은 게 뭐가 있나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거래 관계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래 관계보다 못해서는 대중들을 교회로 이끌 수 없습니다. ‘성과 없음’을 ‘당신의 믿음 때문’이라고만 말하면 성도들은 교회이탈로 응수할 뿐입니다.
기도에 불을 붙여 기적과 같은 성령 체험을 보여 주든지, 진심이 느껴져서 내가 교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도록 정서적 안정감을 주든지, 온 교회가 나서서 안정적인 삶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드리고 있는 헌신에 대한 ‘why’에 답을 얻길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식당에서 우려해야 할 것은, 고객이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시는 찾지 않는 상황입니다. 교회 또한 성도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고 떠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기반한 지성으로 바라보면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구체적인 변화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영에 있어 트렌드를 읽는 안목은 중요합니다. 트렌드에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역시 대중이므로 트렌드를 알면 성도들의 심리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예들 들어, 교회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개설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은 모두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주요 트렌드를 분석하여 교회 경영에 적용했고 의미 있는 결괏값을 얻었습니다.
#플랫폼
#메타버스
#블록체인
#프로토콜_경제
이를 모두 반영할 수만 있다면 4차 산업으로 인한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교회,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회, 평신도가 살고 목회자도 살 수 있는 교회가 만들어집니다. 기존의 무료 인프라를 이용하는 매시업(mash-up) 방식으로 진행하면 리스크는 없어지고 성장 가능성은 무한대가 됩니다.
플랫폼 = 교회
블록체인 = 지체 (밸류체인의 모티브)
비트코인 = 성도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교회 설계방식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로 개척에 성공해서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 또한 형통해지는 선순환을 예외 없이 누리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2절)
- 목사님은 성전 임대료 등 재정 문제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일이 없어집니다. 돈 때문에 목회를 못하게 되는 일이 사라집니다.
- 평신도는 창업 실패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일이 없어집니다. 재정적 리스크로부터 안전해집니다.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며 무조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게 됩니다. 노력하면 30배, 60배, 100배의 성장을 거두는 것이 수월해집니다.
- 교회의 주요 기능인 지체 역할이 회복됩니다. 지체란 신체 일부를 뜻합니다. 이 기능이 회복된 교회는 대단히 강력합니다.
오늘날 비즈니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플랫폼이라 함은 사람들을 모아 놓은 모든 형태를 뜻합니다.
사람이 모이면 거래가 발생하고, 거래가 발생하면 매출이 발생합니다. 판매, 광고, 서비스 등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매출이 발생합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구글 등을 보면 이런 부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돈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업들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으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회를 베이스캠프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태생 자체가 비즈니스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즉, 플랫폼은 기독교인에게 가장 유리한 기술 환경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추월만 당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모임은 제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작은 한 개의 교회만으로도 파급력은 엄청 납니다. 상상 이상의 큰 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들을 연결시키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플랫폼
#주식회사
#블록체인
#협동조합
이 모든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뭉치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리스크에도 최적의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의 최대 장점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카카오톡 하나로 얼마나 다양한 사업이 파생되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환경을 통해 주실 수 있는 복을 제한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한 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크고도 비밀한 일을 보이실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아 33:3)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의 겸손에 존경을 표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목사님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또 하나의 교회가 별이 되었다.
보증금 5000/250, 20평 남짓한 교회의 임대료치고는 처음부터 부담스런 금액이었다. 목사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사모님 혼자 쓸쓸히 교회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애달프다. 강남 하늘 아래, 그렇게 또 하나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세상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당연한 원칙이 있습니다.
- 병원비가 없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
- 음식값을 내지 않으면 굶는다.
- 임대료를 못 내면 쫓겨난다.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면 적자가 발생하고 누적되면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교회 역시 그러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임대료를 내지 않으면 퇴거당합니다. 실제로 개척교회가 문을 닫는 비율은 자영업자 폐업률을 상회합니다.
유럽의 교회는 이슬람사원 또는 무도회장으로 팔려나가고 한국의 교회들 또한 이단의 손에 넘어가곤 합니다. 서두에 언급한 교회 역시 이단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돈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업무적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한다’는 말 대신 ‘망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성공의 기준이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약속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컨설팅을 받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최소한 먹고는 살게 됩니다. 당사자의 역량에 따라 큰 성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필자의 달란트는 지난 6년 동안 블로그를 통해 모집한 생면 부지의 성도들을 통해 여러 차례 증명되었습니다.
최저 임금에서 시작해 억대 연봉을 넘어서는 모든 과정이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삶의 돌파를 경험했고 당연히 실패한 사람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함께하는 지체들은 사역의 열매인 동시에 필자의 달란트를 증명해 주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컨설팅을 받으면 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지능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오픈된 공간에서 열매와 증거들을 갖추기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모두 비용 한 푼 받지 않고 한 분 한 분께 집중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자리 잡은 멤버들은, 다른 지체들도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밸류체인 멤버 최지연 성도님 한 분의 소개로, 1년 동안 멤버들에게 발생한 매출이 6천만 원에 달합니다. 올해는 이를 초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밸류체인을 통해 억대 연봉자가 된 홍채아 성도님은, 최지연 성도님의 자녀 아영이의 인생 멘토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디서든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억대의 돈을 벌 수도 있고, 월 3백 정도는 너무도 편하게 버는 방법을 알고 있는 멘토로부터 그 방법을 코칭 받게 된 것입니다.
밸류체인 멤버들은 이렇게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그 방식 그대로, 신학생 때부터 선포해 왔던 ‘목회자들을 돕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완성하려 합니다. 밸류체인 멤버들에게 했던 것처럼 목사님들을 섬기려 합니다.
밸류체인 평신도 멤버분들에게서 서로를 돕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목회자 멤버분들을 통해서도 같은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선배 목사님들이 후배 목사님들을, 자리 잡은 목사님들이 정착하지 못한 목사님들을 살피고 돕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세대에 복음이 흘러가는 통로를 열라”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캄보디아 시골에서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교사들을 구하기 어려웠고, 가난한 시골 어린이들은 4학년 5학년이 되도록 어려운 캄보디아 글자를 익히지 못하다가 밥술이라도 덜기 원하는 부모님들의 한숨 소리에 학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씨를 뿌리는 것이 선교사의 몫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열매를 거두실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대합니다.
이제 곧 예수님 탄생의 계절이 돌아옵니다. (캄보디아는 12월 내내 성탄절축제를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교회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힘들어진 이때 우리 교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더 신실하게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절 안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캄보디아의 많은 초등학교가 절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나라 캄보디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교와 함께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기독교교육의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지요
십자가가 서 있는 교회 마당에서 놀게 해주세요
교회 안에 유치원을 열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교육을 해보려고 합니다. 어릴 때 부터 에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는 어린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중입니다. 앙코르 왓의 후예라는 민족적 자부심도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직도 1% 미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의 삶 가운데 깊이 뿌리내린 우상숭배와 국가의 강력한 불교 정책, 오랜 독재로 부패해진 정치.경제, 그리고 집집마다 안고 있는 깨어진 가정의 상처들은 캄보디아인들이 성숙한 크리스찬으로 성장하는 걸림돌입니다. 캄보디아가 복음이 선포되고 성숙한 크리스찬들이 스스로 교회를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선교사 소개
* 이종용, 신미선 선교사(2007년 캄보디아 입국, 미아중앙교회<담임강명구목사> 파송)
-후원계좌 : 국민은행 667502-01-01-3231 예금주 이종용
* 선교지역 : 바탐방 주 몽르싸이 군 (글로리아 교회) 깜뽕짬 주 쁘레이 초 군 (호산나 센터)
* 주요사역 : 교회 개척사역
유치원 및 기술학교 사역 (2020년 1월 개원 예정)
청소년 및 청년 학사사역
이동도서관 사역
캄보디아 기독교교육연구소 운영
(Christian Education Research Center Shema Cambodia)
2. 기도해 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교회 사역에 주님의 은혜를 부어 주소서.
2020년 11월 개원 예정이었던 팜트리 유치원 개원이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 미뤄졌었습니다. 2021년 1월에는 문제없이 개원하여 팜트리 동네의 어린이들에게 기독교 교육이 실천될 수 있도록 주님 도우소서.
도시와 떨어진 팜트리 동네에 세워질 기술학교 (컴퓨터, 영어, 목공)를 통해 청소년 및 청년들이 복음을 듣고 삶의 자리에 하나님을 만나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을 주소서.
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시골지역이라 교사를 확보하기 매우 어려운데 주님께서 준비된 교사들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교사 : 쩨임(남, 컴퓨터 전공), 낌홍(여, 유치원 교사) 부부
짠타엣 (여, 교회사역 및 이동도서관), 짠타엥 (여, 교회사역 및 이동도서관)
타리 (여, 교회사역, 복음전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