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힘 사용설명서’가 출간되었을 때부터 블로그를 개설하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요나처럼 버티다 지난 8월이 되어서야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엔 좋은 이웃들을 통해 제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 지금 제가 잘하고 있는 건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말씀 좀 해주세요.’
기도할 때마다 칼럼을 읽은 분들로부터 기도가 회복되었다는 간증과 함께 책을 구매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칼럼을 읽고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몇 년간 교회에 나가지 않았었는데 다시 교회에 나가보려 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장 10절)
순종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썼더니 첫 번째 만난 출판사를 통해 바로 책이 출간 되도록 해주셨고, 계속해서 책 홍보와 관련된 인맥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의미 있는 점은 홍보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제가 직접 찾아갔던 사람들로부터는 1%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뭔가 도움을 줄 것처럼 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간과 경비만 더 썼을 뿐 겨자씨만큼의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순종하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운영했었더라면 그런 손실들은 없었겠지요. 블로그를 시작한 후부터 난생처음 보는,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들을 만나 협력을 받도록 해주셨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과 함께하는 모든 분이 책 출간 후 만난 인연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 힘 사용설명서’가 제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을 당시엔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막막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나 같은 초보 작가의 원고를 받아 주겠어. 설령 책으로 나온다 해도 어떤 사람이 내 글을 읽겠어.'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아예 집필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저입니다. 주님께서 믿음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던 생각의 조각들이 맞춰져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출간 후 얻게 된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하는 것은 좋은 분과의 만남입니다.
삶에 기도 부흥을 선포하고 이 메시지를 자신의 삶과 주변에 전파하십시오. 기도를 방해하는 세력과 그들이 쌓아 놓은 철옹성을 기도로서 침노하십시오. 침노하지 않으면 침노당할 것입니다. 강하지 않으면 약해지고, 밝지 않으면 어둠이 틈타며,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습니다.
액체가 담기지 않은 공간만큼 공기가 들어오듯, 기도의 부재만큼 우리는 침노당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점점 더 기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미 교회 내에는 기도의 집중을 방해하는 메시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야.”
“기도만 하면 안 되고 이것도 해야 해. 저것도 해야 해.”
거짓 거룩함으로 그럴듯하게 위장한 사탄의 메시지가 성도의 호흡과 같은 기도를 제한하고 차단시켰습니다. 기도의 하드웨어를 구성케 하는 이 블로그의 메시지를 여러분 주변에 전파하십시오. 적어도 여러분의 지경에는 기도에 대한 방해 전파가 없도록 기도의 동역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분별력을 선물하십시오.
이런저런 잘못된 참견에 눌려 기도하지 못하게 된 성도들이 일단 기도할 수 있도록 공유하고 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칼럼을 구독하시는 모든 분들께서 기도 부흥을 견인하는 통로로 함께 쓰임 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후, 삶의 변화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까지 약 5~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땐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었는지...
돌이켜 보면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중간중간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의 기회를 놓치기도 했으니까요. 저의 시행착오에 대한 나눔이 기도생활을 막 시작하는 누군가의 광야생활을 단축시켜 주기를 소망합니다.
학원을 운영할 때 일입니다. 길벗출판사의 대표님 이하 임원진과 비상에듀의 대표님이 함께 필자의 학원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교육 사업을 시작한 지 5년도 되지 않은 학원장에게 교육업체 전문경영인들이 사업 관련 자문을 구하기 위해 방문을 하곤 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후에 길벗 출판사에서는 저의 의견을 그대로 사업에 반영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늘 이와 같은 패턴의 반복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빠르게 핵심 지식을 익혀 상위권 실적을 낸다.
→ 노하우를 묻는 질문을 받게 된다.
→ 주님께서 하신 일을 간증한다.
→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주님과 동행을 막 시작한 초창기에는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상황만 지속되었습니다. 그때는 오로지 반드시 응답해 주실 거라는 그 믿음 하나로만 버텨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따금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는 반지하 빌라의 전세 보증금만 있어도 좋겠다고 하루에 3~4시간을 무릎 꿇고 기도하던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기도로 뚫고 나온 그 길고도 어두웠던 터널 속으로 돌아가서 다시 기도로 그 모든 상황을 뚫고 나올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터널의 끝이 정말 있는지, 있다면 그 끝은 어디인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터널 속을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반드시 터널에 끝이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으라고... 절대 걷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끊임없이 상담만 요청하며 기도는 하지 않는 청년들, 또 몇 개월 시도하다가 기도하기를 중단하는 젊음들을 저는 이해합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 비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그래서 그 노력이 반드시 결실을 맺도록 돕고 싶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간간이 주시는 작은 응답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책값이 없어서 기도하면 5만 원, 10만 원... 제가 기도한 조건에 딱 맞는 아르바이트 자리, 어쩌면 그렇게 제가 기도한 만큼만 딱딱 맞춰서 주시던지...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는 응답이겠지만 저는 거기서 기도의 위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훈련을 통해서 저를 점점 더 기도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제대 후, 3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제단을 쌓기로 했던 다짐을 중간쯤 되었을 때 허물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12시간 가까이를 서서 일하는 아들이 감기몸살로 앓으면서도 새벽기도를 나가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나 봅니다.
“너무 그러는 것도 율법이야.”
하루쯤 쉴 것을 권하셨지만 제 결심을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또 다른 말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새벽기도만 나간다고 될 것 같아!”
열심히 기도한다면서 실천은 그에 못 미치는 아들에게 홧김에 아버지가 던진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요! 하나님의 축복이 그렇게 완벽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저 도저히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그날 저는 습관이 되어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도 의도적으로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 신앙적으로 의지하던 분들이 축복의 기회를 막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해주는 조언일 겁니다. 그러나 사탄의 잘못된 조언은 평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으로부터 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조언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똑똑한 지인은 똑똑한 지혜로 나의 축복을 가로막고, 기도 없이 성경 지식만 가득한 사람은 그것을 통해 나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기도하면 누구나 주님께 쓰임 받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누구나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한 형제님과 관련하여 비즈니스 미팅을 가졌습니다. 현재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다수의 저서까지 출간해서 인지도까지 갖춘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그분 또한 좋은 파트너를 만나지 못해 많은 손해를 보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는 것이 몹시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착한 주인은 못된 종업원을 만나서 손해를 입고, 착한 종업원은 못된 주인을 만나서 손해를 봅니다. 착한 주인과 착한 종업원을 묶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늘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블로그를 통해서 이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개월에 한 번, 기독교 방송인 예배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방송국의 국장님부터 방송국 PD, 영화감독 등 하나님을 믿는 방송 관계자분들이 참석합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정말 신실한 믿음의 청년을 발굴해서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거짓 신실함으로 무장한 이들이 너무도 많아서, 벌써 여러 차례 속아 본 경험 때문에 이제는 쉽게 돕지를 못합니다. 돕기로 한 모임인데 돕지를 못합니다.
저는 기도로 흥해도 보고 기도 안 하다 망해도 봤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로 일어서 봤습니다. 왜 삶의 모든 자리에서 기도해야만 하는지 호되게 대가를 치르며 배웠습니다. 기도가 일터에서 어떻게 능력으로 작용하는지를 기록한 저의 경험이 모두의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치 공기처럼, 세상에 정말 소중한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어서 무료라지요. 제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며 무보수 칼럼을 쓰는 이유는 전하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잠언을 비롯해 성경 곳곳에 기록된 성공원리로 창업, 취업, 투자 관련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어리면 어린 대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기본 원리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크게 ‘전문성을 갖추는 법, 브랜딩, 홍보, 서비스, 품질유지 ’를 알면 비즈니스는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정직하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과대포장하고 핵심적인 것을 빼기도 합니다. 설령 이론을 배웠다 해도 그것이 현장에서 무용지물인 이유는 그 이론을 실행할 수 있는 ‘그 힘’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책과 칼럼을 읽은 분들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여러분들과 직접 만나서 함께 비즈니스와 투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될 날을 꿈꿉니다.
“지금부터 그 힘을 사용해서 이 성도님의 사업체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장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담대히 선포하고 제게 주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누군가를 돕는 꿈, 하나님의 사람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세상에 생중계하는 꿈을 꿉니다. 부딪히는 문제들을 기도로 극복해가며 하루하루 매출이 늘어가는 모습, 그리고 선교에까지 앞장서게 되는 그 모든 과정을 공개하며 많은 성도님들께 기도의 도전을 드리는 ‘기도 부흥 프로젝트!’
안 되면 어떻게 하냐고요? 안될 리가 없지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재원을 선발해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을,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진행할 것이니까요. 단 한 가지라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준비될 때까지 준비하면 되니까요.
두 번째 영어 학원까지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내가 다음으로 도전한 영역은 학원장들을 모집, 관리하는 ‘지사 업무’였다. 지사의 수익구조는 가맹 학원들이 매월 구입하는 책에서 발생한다. 학원생이 많아질수록 지사의 매출도 늘어나기 때문에 나는 가맹점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대체로 지사장들은 가맹점을 직접 나서서 돕지 않는다. 가맹점이 변심하면 가맹점을 키우는데 들어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니 차라리 다른 가맹점을 더 모집하러 다니는 것이다. 가맹점을 믿지 못하냐며 지사장을 탓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변심하는 가맹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서 지사장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인천 원당, 8평 교습소에서 임신한 몸으로 혼자 아이들을 가르치던 20대 중반의 황원장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얘기하며 도움을 청하곤 했다. 나는 교습, 홍보, 회원관리에 필요한 모든 운영 자료는 물론 필요에 따라 학원에 맞는 맞춤 자료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학원 컨설턴트들이 300~1000만 원을 받고 1개월 정도에 걸쳐 주는 노하우 전수를 나는 무료로, 성공할 때까지 지원해 주었다. 꾸준한 시간과 열정을 쏟은 결과, 황원장의 학원은 원당 신안아파트 단지 부근에서 규모와 수강생 면에서 선두를 다투는 소문난 학원이 되었다. 매머드급 학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해 문을 닫아도 그녀의 학원은 승승장구했다.
황원장이 억대 연봉 학원장이 되었을 때, 감춰왔던 그녀의 성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녀 때문에 다양한 업무상의 곤란을 겪었다. 적게는 교재를 복사해서 쓰는 것부터 크게는 고작 1개월에 2~3만 원을 아끼기 위해 본사가 아닌 다른 루트에서 교재를 사는 행동까지... 계약 위반을 밥 먹듯 하는 통에 나는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지사장으로서 학원을 곤란에 빠뜨릴 수 있는 장치가 있었지만 그것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것 일뿐 나에게 얻어지는 실질적 이득은 없었다. 나를 예수님 잘 믿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굳이 보복만이 목적인 그 행동을 실행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의 약점을 적당히 이용할 줄 알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모든 법률적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에게 모욕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동안, 황원장을 용서하는데 많은 기도가 필요했다. 운전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분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2년쯤 흘렀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저... 안녕하세요. 지사장님. 저 황**에요.”
순간, 상냥하던 내 목소리 톤이 지하 100m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아... ... 네.”
급 정색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상황. 황원장 역시 돌변한 내 목소리에 당황했는지 얼마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황원장은 이번에도 나에게 뭔가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했다가 예상치 못한 내 태도에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와 친분이 있던 정현서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그동안 황원장에게 일어난 악재 퍼레이드를 듣게 되었다.
수학 선생에게 학원 일부를 임대 줬는데 임대료도 안 내고 갖은 횡포를 부려 큰 손해를 보고 그를 내보냈다. 황원장이 애인을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학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 황원장 남편에게 말했으며 심지어 법정에서 황원장에게 불리한 증언까지 해줘서 양육권까지 박탈당했다. 수강생들이 계속 줄어서 원당 학원은 폐업했다. 그 뒤로, 장소를 옮겨 두 번 더 학원을 오픈했는데 몇 달이 못 가서 번번이 문을 닫았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형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악인들이 망하는 이유는 그들의 악이 지혜를 가려서 발생하는 문제인 경우가 많다. 세상 사람들, 심지어 무신론자들조차도 악을 행하면 점점 미련해져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몰고 간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 승승장구하던 명석한 악인들이 어처구니없는 선택으로 자멸을 초래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평소 황원장은 학원 선생님들을 막 대했다. 죄에 아둔해진 황원장은 애인 자랑을 자신이 막 대하는 그 선생님들에게 했다. 모두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지만 적대감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총명함은 혼탁해져 있었다. 학원이 망한 것도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하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원래 간신히 몇 안 되는 수강생을 모아 가르치던 작은 공부방 오너였었다. 옆에서 필요한 도움을 주던 조력자를 본인 손으로 내쫓았으니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결국 자신을 수렁으로 밀어 넣은 것은 자비의 하나님이 아닌 죄로 인해 아둔해진 본인 자신일 것이다.
반대로 마음을 좋게 쓰면 정신도 맑아져서 지혜롭게 일 처리를 할 수 있게 되어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도 동의하는 이 세상의 법칙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표현한다. 이 법칙이 세상에 적용되는 이유는 이 세상을 설계하신 분이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 모든 답이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발견한 그 많은 지혜와 지식의 말들이 시편과 잠언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한 마디로 선하면 지혜롭고, 악하면 미련하다. 악인이 계속 성공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과연 성공의 기준이 무엇일까.
10만원 안 되는 돈으로 100명이 먹을 수 있는 닭죽을 끓일 수 있고, 그것을 먹기 위해 모인 아이들과 어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필리핀도 지금은 과거보다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선물이나 밥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복음을 듣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 존경하는 이웃 삼월이님을 통해 ‘나눔’에 대해서도 다루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눔의 계절이네요.
오래전부터 부자들을 관찰해 왔습니다. 관찰대상은 흙 수저 출신의 하나님의 부자. 주변에서 만나기조차 어려울 만큼의 부를 축적한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특징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
1. 하나님을 사모한다.
2. 기도를 많이 한다.
3. 부유함을 추구한다.
4. 나눔을 실천한다.
2번까지 하시는 분들은 많습니다. 3번에서 숫자가 조금 줄어들지만 그래도 3번까지 실천하시는 분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4번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따금 소개를 통해 사업관련 자문요청을 해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 같이 돈을 벌면 선교헌금 많이 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헌금은 어떻게 해 오셨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을 못합니다.
한 번도 선교헌금을 해 본적 없던 분이 돈 벌면 할 테니 도와 달라는 말, 어쩐지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조금도 나누지 않는 사람의 기도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실까요.
다행히 저는 아주 가까이서 하나님의 부자들을 보며 1~3번 외에도 4번의 필연성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주님, 저희 집 사정 아시잖아요. 등록금 주시면 신학대학 입학하겠습니다.’
저의 당돌한 기도는 부모님께서 우연히 기도원에서 알게 된 김경숙 교수님을 통해 즉시 응답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부모님이 산에서 내려와 정착 할 수 있도록 강남에 있는 자신의 건물 옥탑을 무상으로 제공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준이가 신학대학 간다고 하면 내가 등록금은 내 줄게.”
그렇게 꼼짝 없이 신학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혈혈단신 이군을 만났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없고, 영양부족으로 척추가 조금 휘었다던 그는 자주 아프기도 했습니다. 동인천에 살던 이군은 이따금 형이 사주는 갈비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2시간 남짓 거리를 마다 않고 오곤 했습니다.
이군을 만날 때면 저는 집에서 밥을 든든히 먹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갈비탕은 언제나 1인분, 제겐 두 그릇을 살만한 돈은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까지는 없었습니다. 당시 저의 전 재산은 5만원 미만에서 왔다 갔다 했었더랬습니다.
‘잘 먹었다.’는 인사 외에는 다른 답례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졸업 후, 1번의 이메일을 끝으로 따로 연락을 받은 적도 없지요.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저는 초라한 지갑을 열곤 했습니다. 순종하는 횟수와 함께 지갑을 열 때 들던 마음의 저항도 점점 줄어들어 갔습니다.
처음으로 특별헌금 700만원을 새노래교회와 행복한교회에 드리던 날이 기억납니다. 마음에 감동은 오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액수라 갈등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리고 나니 확실히 기뻤습니다. 기쁨으로 드린다던 선배님들의 간증,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 오토바이 택시, 트라이시클 후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실한 성도 가정에 공급되어 가정의 안정과 그 십일조로 교회자립을 기대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쉽게 결정 할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 필리핀, 한국의 미자립교회, 그렇게 점점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금액을 드리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많이 해서 수입이 늘었는지, 수입이 늘어서 헌금을 많이 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을 하며 선순환을 했다는 것.
학원을 운영할 때, 저에게 찾아와 노하우를 묻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자료하나 감추지 않고 모두 내주고 심지어 제 돈으로 밥까지 사주며 도와주었지요. 그 중에 극소수만 지인으로 남고 또 일부는 연락조차 없습니다.
실수로 학원을 잃고 보험세일즈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도 영업노하우를 묻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중에는 도저히 영업을 할 수 없는 복장을 갖춘 분들이 있었습니다. 찢긴 구두를 신은 김씨, 단벌 셔츠를 세탁 않고 입고 다녀 심한 냄새로 사원들조차 함께 있기를 꺼려하던 정씨, 정장부터 구두까지 모든 아이템이 낡고 오래 된 또 다른 김씨였습니다.
저는 저보다 나이가 많던 세 분에게 구두, 정장, 셔츠를 제공하고 식사도 사곤 했습니다. 같은 평사원이었고 그들이 잘 되도 제가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은 전혀 없었지요. 얼마 후, 정씨는 차비가 없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돈 거래는 할 수 없다고 하며 이따금 5만원권 지폐를 주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구두를 받은 김씨는 여전히 저와 좋은 인연으로 교회 나가라고 하면 대답이라도 잘 해 줍니다. 정씨는 연락이 없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셋트를 선물 받은 또 다른 김씨는 제가 끝까지 자신을 돕지 않았다고 저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년간 함께 하며 저 한사람이 발생시킨 매출로 5천만원~1억원 사이의 금액을 그가 벌었다는 것을 지점장님과 온 사원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열매도 있었습니다. 공부를 너무 싫어하던 세 번째 김씨, 저는 회사 임원들처럼 김씨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금융은 공부가 업무의 일부인데 너는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하니 이 일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고정급 받는 일이나 한번만 공부해도 되는 상품판매직을 알아봐.”
착하기만 한 김씨는 기본급이 전혀 없는 회사에서 소득 없이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주일마다 저와 함께 교회를 다니고 저와 성경공부도 하던 김씨는 얼마 후,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역교회에 출석했고 결국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김씨가 교인이 아니라 성도가 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세 번째 김씨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있다면 너를 주님께로 인도 한 걸 거야.”
몇 년 전, 그동안 살면서 나눈 것들에 대한 중간정산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전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사람들에게 쓴 커피 값, 밥 값, 기타지출, 얼추 계산해 봐도 소형 세단 값이 나왔습니다.
‘아, 그 돈을 선교지에 보냈었더라면...’
함께 소비 된 시간, 열정, 그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소득은 참으로 비효율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그 때부터 조금씩 더치페이를 연습하며 수 없이 다짐했습니다.
‘주님의 강권적인 푸시가 있지 않는 한,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의 최대 효율성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따라 ‘그 힘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저에게 듣고 싶어 하던 ‘성공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제가 그 도구를 통해 그토록 전하고 싶어 하던 ‘예수님’도...
주님은 책과 블로그를 통해, 한 사람만을 향하던 저의 시간과 열정이 다수를 향하도록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기도한 ‘최대효율성’에 대한 뚜렷한 응답이었습니다. 가장 큰 기쁨은 이제는 저도 받는 것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여러분들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성공이 그러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없는 나눔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저는 배웠습니다.
‘나중에 부자 되면 교회 갈게요. 나중에 부자 되면 헌금 할게요.’
지금 주님을 전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더군요.
1~3번을 실천하고 계시다면 4번도 실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크기는 4번의 크기와 반드시 비례합니다. 아무도 돕지 않고 누군가의 삶 속에도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저는 서운한 마음도 경험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저의 삶에도 아무런 변화는 없었을 겁니다.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또 내가 그렇게 사랑해 준 사람으로부터 다시 그런 사랑을 돌려받는 경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따님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간절함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 번도 뵌 적 없고, 목소리 또한 들어 본 적 없는 두 분이지만 제 하루가 어느 분의 삶보다 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중보기도하고 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
얼마 전, 아버님께서 교회에 등록하셨다는 반가운 소식과 증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소식을 동시에 듣게 되었습니다. 암, 예전보다 치료가 용이해졌다고 하지만 중증 암은 여전히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병원에서 가망 없다는 진단을 받은 분들이 건강을 다시 회복했다는 얘기가 이제 신기하지도 않을 만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붙들었다는 것이지요.
점점 더 나아지고, 반드시 낫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소유하신 분들은 건강한 삶을 되찾았습니다.
믿음으로 병이 낫고, 또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의학계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정설이 되었습니다. ‘진짜 믿음’이 있으면 병은 반드시 낫게 된다는 이 말, 미신이 아니라 상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진짜 믿음’을 갖을 수 있느냐 겠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루트와 종교를 통해 믿음 갖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구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믿음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분들에게도 믿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이제 막 주님을 의지하려고 선택한 분이 암을 극복할 만한 믿음을 가지려 할 때, 얼마나 힘들게 느껴지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귀하께서 아버지라는 사실에 희망을 품습니다. 가족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아내신 그 저력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능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어려운 순간들도 있으셨겠지요.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는 간절함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간절함으로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낫고 싶다는, 건강해지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주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실 때, ‘그 힘 사용설명서’를 들고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심정으로 그 책을 가져가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책도 읽으시고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성경도 계속 읽으세요. 성경에는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는 원리를 몰라도 스위치를 누르면 누구나 전등을 켤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의 의미를 몰라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믿음의 스위치가 켜집니다. 반면, 성경 지식을 잘 알아도 믿음의 스위치를 켜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계속 읽으십시오. 읽으면 읽을수록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힘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교회에도 가시고 병원에서 치료도 잘 받으시고 낫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되 병원에서 말해주는 현실에 귀를 기울이진 마세요. 기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하나님께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원래 긍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늘 부정을 주입하며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근거 있는 말이기에 언제나 타당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무지하고 막무가내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 견해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내 삶, 나의 인생이 됩니다.
병원의 진단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병원은 현재 검진 결과를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것이니까요. 병원에서 뭐라 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로, 기도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음을 선택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도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게 선포하십시오. 당부드릴 것은 ‘만약에 안 되면’이라는 가정은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역사 속에서 ‘만약에 안 되면’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제2, 제3의 차선책을 준비하며 기도했던 사람 중에 응답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영적인 배수의 진을 칠 때 우리의 간절함은 배가 됩니다.
저 역시 ‘만약에 안 되면’이라는 가정을 했었다면 이렇게 편지를 쓰지 못했겠지요. 직업상 안 되었을 때를 염두에 두기도 하지만 기도할 때만큼은 그런 가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야 하지만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그 순간을 위해서만 살 것처럼, 마치 오늘 응답받지 않으면 내일은 없을 것 같은 각오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 믿음을 갖는 것은 힘이 듭니다. 이렇게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평범을 넘어서는 당사자의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귀하께서 스스로를 살릴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 따님과 교회 분들 또 온라인에서 함께 기도해 주실 많은 분들의 믿음으로 귀하를 살게 할 것입니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세상 사람들은 우연이라 부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 부릅니다. 이것은 아마도, 아직은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실 수 없는 분에게 주님께서 저를 통해 보내시는 첫 번째 러브레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운영한 뒤부터 출판사에서 부쩍 주문량이 늘었다는 소식은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블로그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들어오는 단체 주문도 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블로그 운영전까지 단체 주문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단체 주문은 백 퍼센트 주님께서 판매하신 건이지요. 그런데 블로그 운영 후부터 단체 건이 조금씩 늘더니 드디어 소망교회에서 500권을 주문해 주셨습니다.
제가 움직이니까 주님도 함께 움직이시는 듯한 이 상황,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주님도 함께 일하시더라는 목사님들의 간증이 떠오릅니다.
이웃분의 글 중에서 ‘기도의 응답을 본인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낯설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면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불확신, 결과물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항상 그 녀석이 맹위를 떨칩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를 하면 평안과 알 수 없는 확신을 주시고, 그 가운데 꾸준히 행함을 유지하다 보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동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전령이 도착한 것이죠.
이 패턴,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새로운 도전과 맞닥뜨리게 되면 ‘기도의 응답이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되는’ 그 불확신이 찾아옵니다. 블로그 초창기 아무런 댓글도 없을 때, 주님께 여쭙곤 했습니다.
‘지금 제가 잘하고 있는 건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말씀 좀 해주세요.’
저에게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굳히게 만든 것은 여러분이었습니다. 불확신은 열정을 차단하지요. 아시다시피 열정이 없다면 뭐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 상태가 조금만 더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블로그에 신앙일기를 다시 적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다시 하루하루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시 교회를 나가보려고 한다.’
‘다시 ~ 하게 되었다.’는 신앙 간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글을 통해서 기도가 회복되는 ‘기도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다가 블로그 알람이 울려서 봤더니 본인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던 그 제목이었다.’
‘초대가 와서 무심코 읽은 첫 번째 칼럼이 내가 요즘 기도하던 그 문제의 답이었다.’
‘요즘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런 간증을 접할 때마다 ‘아,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고 계시구나.’ 확신이 들면서 평소보다 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 보려고 몸가짐, 마음가짐 노력하게 되더군요.
신앙 연조가 있는 분들 중에는 ‘아직도 이것밖에 안 되는 자신의 모습’을 못마땅해 하며 스스로를 혼내고 정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때 우리 자신은... 참 못마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그런 꾸지람보다 ‘칭찬과 보상’이 훨씬 더 발전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사람들도 알고 있는 양육방법을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모르실리 없겠지요. 결국 주님께선 이렇게 저에게 칼럼을 쓰게 하신 이유는 여러분이라는 최고의 칭찬을 통해서 저부터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들어 가시려는 계획이셨나 봅니다.
운영해 보니 블로그는 우리 마음과 구조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영화, 음식, 여행 자기가 주제를 정해서 포스팅하는 만큼 주제별 관심사와 지식이 깊어지듯, 주님에 대한 포스팅이 많아지는 만큼 신앙도 성장하는 듯합니다.
단지, 신앙 포스팅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나 봅니다. 신앙일기를 쓰기 시작했더니 일어나는 소소한 변화들을 알려옵니다. 아시다시피 큰 변화는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우선 시작하고,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는 꾸준함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듭니다. 언제나, ‘일단 시작’과 ‘꾸준함’이 기적을 만듭니다. 성실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창의력은 쓸모가 없게 되어 버리지요. 모든 성공은 10퍼센트 미만의 탁월함과 90퍼센트 이상의 단순함을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실천이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발걸음이라면 우리는 기도의 응답과 믿음의 성장이라는 보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이 사탄의 세력에게 점령되다시피 했다는 말, 흔하게 들려오는 이슈인 것 같습니다. 이곳 온라인에서는 믿음, 기도, 예수그리스도라는 키워드가 실린 포스팅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이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미디어 선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복의 근원이기에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축복의 통로는 하나님의 각별한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전하면서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것은 통로입니다.
봄부터, 주님께서 블로그를 통해 ‘책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알리라는’ 사인을 주셨는데 블로그는커녕 흔한 페이스북도 해 본 적 없던 터라 계속 버티다 뒤늦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려고 해서였을까요. 페이스북은 회원 가입 때부터 계속 오류 나서 아이디도 못 만들고... 알바 도움 잠깐 받았더니 사이비 친구들을 잔뜩 초대해오고...
아이디를 만드는 것부터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막막해 계속 미루던 때에 분명하게 들려온 마음의 음성.
“오프라인의 하나님이 온라인의 하나님은 아니냐.”
그에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제 간증 글도 올리겠지만 온라인을 시작할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을 저는 삶에서 몇 번이고 경험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하나 문제를 극복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평범을 넘어서는 성과들이 나타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했었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그 힘’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간 주님과 함께한 자취를 검색과 자료로 증거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도 남겨두게 하셨나 봅니다.
전교 꼴등 했던 학생이 어떻게 선생님들에게 교수법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세계적인 영어 매거진의 교육파트 팀장을 거쳐 국내 일류대학 라이센스로 진행되는 어학원 프로그램의 총괄기획까지 맡게 되었는지...
기도 안 하고 안일한 삶을 살다가 어떻게 무너지고 또다시 어떻게 기도하며 억대 연봉자협회 회원이 될 수 있었는지... 무너질 때마다 전혀 다른 새 분야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인지...
단순히 정신집중과 열정의 산물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저 급여 70만 원을 받던 어린 청년이 대체 어떻게 해서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상위 1%까지 올라갈 만큼의 정신집중과 열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제게는 주님께 해답이 있었습니다. 이 문장만 읽으신 분들은 저를 기복 신앙인으로 오해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과거도 올립니다. 제가 극복한 것은 단순히 가난만이 아니었고, 그곳엔 언제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함께 계셨으니까요.
살면서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과거입니다. 그것이 비즈니스에 1%도 도움 될 만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요. 묻어두고 싶은 과거지만 제 삶을 통해 전해져야 하는 메시지는 그래야 균형을 찾겠지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저희 가족의 가난과 삶의 아픔을 모른척하며 선교만 하라고 강조하시는 분이라고 믿었다면 고등학생이던 저는 교회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주님을 만나는 시간은 훨씬 더 뒤로 미루어졌었겠죠. 그런 이유로 신앙적 갈등을 하시고 있는 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 메시지를 준비하셨다고 믿습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방식으로 기도와 믿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분을 어린 날의 제가 만났었더라면 저는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읽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가 글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요. 하나님의 사람은 성경 속에 답이 있습니다.
신학을 전공했지만 목회자는 아닙니다. 저를 친구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다가 조금 더 빨리 수학공식을 깨달은 같은 반 친구. 같은 학생 입장이라서 그런지 친구의 설명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될 때가 있지요.
믿음의 법칙 = 이루어질 것을 생생하게 꿈꾸듯 바라보는 것
저는 블로그에 방문하신 분들께서 기도의 응답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감하며 기쁨에 전율하는 모습을 꿈꾸며 바라봅니다. 그것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덮는 꿈도 꿉니다.
『그 힘 사용설명서』 브리스가 저자는 기도의 원리와 축복 메시지를 구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책에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법과 믿음대로 되는 법칙이 자세히 적혀져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면 축복을 받기 원하는 브리스가 저자의 간곡함이 느껴진다.
기자: 책 제목이 ‘그 힘 사용설명서’입니다. ‘그 힘’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저자: The Power, 그 힘은 고유명사로 쓰인 단어로, 하나님의 힘 즉, 절대 주권을 의미합니다.
기자: 출간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으신가요?
저자: 20대 초반, 주님을 만나고 꿈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일 하고 싶어서 20대 중반에 신학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더 이상 돈을 안 벌어도 될 정도가 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을 할 것입니다.
기자: 억대 연봉자 모임에 회원으로 등록이 되어있으시던데 얼마나 돈을 더 버셔야 하나요?
저자: 한국, 미얀마, 필리핀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데 모두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영혼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입니다. 특히 필리핀은 TV에도 여러 차례 소개 된 쓰레기 마을에 위치해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따로 모금 활동을 위해 다니지 않으셔서 보내드려야 합니다.
기자: 목회를 그만 두시고 사회 전선에 뛰어드신 건가요?
저자: 신학대학에 와보니 대부분 학생들이 하나님께 부르심 받아서 오게 되었다고 하던데 저의 경우에는 특별히 그런 부르심을 경험하진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제 마음대로 무작정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막상 입학을 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우선 등록금이 문제였고 졸업을 한 후에 받게 될 목회자들의 급여도 저에게는 고민거리였습니다.
당시에 저희 집은 부모님의 사업부도로 처하게 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부모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조그만 지하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저는 ‘예수님이 좋은 것’과 ‘목회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마이너스 통장은 늘 한도치에 달해 있었고 성전 임대료는 몇 개월씩 밀려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생각하는 목회자의 삶이란 궁핍과 돈에 대한 쪼들림이 늘 함께하는 것처럼 보여 졌습니다. 몇 차례 목회를 중단하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무례를 무릅쓰고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부모님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늘 부모님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자녀로서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목회지에는 노숙자 또는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분들이 주로 계셨던 터라 교회의 유일한 운영자금은 이모부부, 삼촌부부, 어머님과 함께 해온 친구 같은 동역자 분들이 보내 주시는 헌금이 전부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들어온 후원 헌금들로 성도들에게 반찬을 만들거나 찬거리를 사서 주시기도 하시고 항상 무엇인가를 베풀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성전 임대료가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교회에서 주는 구제 물품과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지내던 분들이 교회를 떠날 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나는 모습은 자녀로서 모른 척 지켜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기자: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저자: 이를테면 돈을 빌려 달라거나 자신이 하는 다단계에 같이 가달라거나 보험을 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전혀 필요가 없을 200만원 상당의 무전기를 가져와서 팔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기자: 사주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는 건가요?
저자: 네. 그 중에는 부모님께 큰 소리로 화를 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목회를 그만 하시거나, 다른 교회의 부교역자로 들어가시면 안 되겠냐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부모님은 제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셨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저희 부모님이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TV에 가끔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가만히 보니까 저희 부모님이 그런 분들인 거에요. 너무나 죄송해서 회개하고 눈물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교회는 닫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지, 부모님이 하시는 일이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부모님은 옳은 일을 하시는 것인데 내가 사역에 도움이 될 정도로 충분히 돈을 벌면 될 일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고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목회가 아닌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사람들에게 왜 기도가 필요한지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분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모두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축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간증과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기도 응답에도 일종의 노하우 비슷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주변에는 10~20년씩 교회 다니시면서도 이렇다 할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당시 저 역시 그런 유형의 신자였는데 듣고 배운 대로 기도를 드렸더니 저에게도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 기억나는 기도 응답이 있으신가요?
저자: 가장 처음으로 경험한 극적인 기도 응답은 부모님 교회에 제가 존경하는 성도님 부부가 계신데 당시 두 분에게는 몇 개월간 꾸준히 기도를 했음에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두 분께 찾아가서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 됩니다”라고 함께 기도했는데 정말 그날로 그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분들도 놀라셨겠지만 저도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그 때부터 기도에 불이 붙었던 것 같아요. 기도를 하니까 응답이 되고, 응답이 되니까 힘이 나서 몇 시간씩 기도를 하게 되는 선순환이 시작됐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그 힘 사용설명서’는 기도 응답의 노하우에 대한 책인가요?
저자: 주변에서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의 경험담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응답의 원리,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원리를 분석해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제대 후에 첫 직장에서 받은 급여가 70만 원이었는데 최저 임금을 받던 사람이 불과 몇 년 만에 억대 연봉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 해지니까 차츰 기도에 소홀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기도를 하지 않다시피 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니까 제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지지 않더라고요. 주님 만나기 전의 거친 성품들도 다시 나타나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성품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던 지혜와 실행능력까지도 삶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더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저로 돌아갔습니다.
기자: 이를테면 최저 급여를 받던 예전의 본인 말인가요?
저자: 네, 맞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특별하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보통 사람’과 ‘특별한 사람’으로 구분 되는 것 같아요. 그럼 누가 특별한 사람이냐?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다시 보통 사람이 됩니다.
‘보통 사람’은 특별한 사람들의 성공노하우를 배우겠다고 뒤를 쫓지만 ‘특별함’은 배움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생기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성공보다는 실패를 하잖아요. 사업이든, 장사든... 저도 딱 그렇게 보통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다시 삶의 위기가 찾아오면 저는 또 예전처럼 기도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저를 보통 사람들의 범위에서 구분 지어 특별한 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기자: 어느 정도의 성공이신가요?
저자: 성공이라는 말은 조심스러워서 저는 성취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제가 속한 분야에서 상위 1% 안에 드는 실적을 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 앞에서 잘 된 케이스로 사례 발표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사실 제 삶에서 나누고 싶은 부분은 제가 크게 부자가 되었거나 성공을 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부터 사고 싶어 하던 자동차가 있는데 아직 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제가 지금까지 드린 헌금이면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정말 큰 자산가가 되었다면 아마 예물도 드리고 사고 싶은 것도 샀겠지요. 제 성취의 크기는 현재 그 정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최저임금을 받던 사람이 기도를 통해 억대 연봉자가 되었지만 기도 생활에 나태해져서 다시 최저 임금을 받던 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시 기도했더니 다시 억대연봉을 받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 패턴을 반복하며 극에서 극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 마디로 1등 아니면 꼴등이었던 거죠. 보통은 한 사람의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성취와 실패, 실패와 회복이 제게 몇 번이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동행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제가 경험한, 제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모태신앙으로 주일학교부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주신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거든요. 그냥 추상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기도에 응답 받았다는 간증을 해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도 응답해주시리라는 확신은 없었던 거지요. 저는 분명히 성도 분들 중에 저와 같은 분이 계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자: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이신가요?
저자: 제 필명 브리스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의 선교사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잖아요. 그녀의 이름을 딴 브리스가 선교재단건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저도 모든 수익 사업에서 손을 떼고 거기서 매월 발생하는 금융소득을 그 달 안에 100% 다 선교에 소진하며 사는 것입니다. 재단 건립자금을 모을 때까지는 충분히 벌어서 충분히 헌금하며 사는 것이고요.
기자: 작가님의 본명이 궁금합니다.
저자: 억대 연봉자 모임에서 조회해 보실 수 있도록 제 책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브리스가 저자는 ‘그 힘’, 즉 하나님의 힘을 온전히 구하고 기대하면 반드시 응답을 주신다는 당찬 확신과 하나님의 향한 열망으로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브리스가 저자는 현재 두 번째 저서 ‘구원의 밸런스’ 출간을 마쳤으며, 3번째 책을 출간 준비 중이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분만하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소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무사히 나를 낳게 해달라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면서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철야예배에 참석했었다는 어머니의 무용담은 어려서부터 워낙 많이 듣던 단골소재였다.
“너는 그렇게 기도해서 낳은 아이야.”
그렇게 기도해서 낳은 아이는 삼남매 중 유일한 골칫거리가 되었다. 순둥순둥 무난하게 자라던 나는 부모님의 사업부도와 함께 급격히 어긋나갔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신앙적인 면을 누구보다 존경했었다. 그런 부모님의 사업 부도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쌀이 떨어지고, 시장 상인들이 버린 팔다 남은 채소를 얻어다 먹을 만큼 어려웠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밀린 고등학교 수업료 때문에 울 때마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보내줘야 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실망감으로 성경책을 땅에 팽개쳤다.
하나님이 너무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어째서인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도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축복의 하나님을 소개해 주셨다. 한 푼 없이 시작한 사업체를 현재가치로 수백억 규모의 기업으로 일으키기까지의 끊임없는 신앙 간증들. 당시의 나는 구원과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질병처럼 우리에게 닥쳐온 이 지독한 가난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뿐이었다.
군에 입대한 나는 부모님 말씀대로 매일 신명기28장, 시편 1편을 읽기 시작했다. 취사병이었던 나는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 놓고 혼자 보일러실에서 어린 시절 가정예배를 드렸던 순서대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성경을 읽고 성경책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삶을 돌아봐 주실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대 후에도 형편은 그대로였다. 아픈 아버지께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으로 일을 하시던 모습은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오신 주님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내가 기대했던 물질이 아니라 못 자국이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난 나는 정신병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던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진심어린 감사가 가능케 되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전도 대상자들에게 말하곤 한다.
“심령의 고통을 차단하셔서 아픔을 잊게 하시고 현실을 극복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녀에게 예수님을 선물 하십시오. 당신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날에, 주님께서 당신 대신 당신의 자녀를 지키실 것입니다.”
- (중략) -
20대 초반의 나는 10살도 더 차이나는 형님, 누나 집사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었고 겸손한 두 분은 진심으로 기도에 동참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몇 개월 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그날 바로 해결 되었다. 그 때부터 작은 개척교회에 기도다운 기도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기도다운 기도란 하나님의 구체적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요청, 응답 주신다는 확신이 있으니 몇 시간도 거뜬히 무릎 꿇게 되는 것이다. 요즘 일부 교인들이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를 강조하는 것에 반감 표함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플러스가 된 것은 기도였기에 나는 기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급여 70만원을 받던 나는 몇 년 후 억대 연봉을 받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전교 꼴찌를 했던 아이가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하고, 선생님들에게 교수법을 강의하는 강사가 되었으며 어학원 프로그램 기획 총괄을 맡게 되었다. 평균이하로 미련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응답주시는 방식은 뜻 밖에도 ‘탁월한 지성’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이, 이후에는 기업체들이 소개소개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면 공략해야 할 고객유형, 화법, 마케팅 포인트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이디어는 나의 배경 지식에서는 나올 수 없는 ‘내가 알지 못하던 크고도 비밀한 것’이었다. 관리자가 되면 평균매출은 오르고 육성을 받은 사원들 중에서 억대 연봉사원들이 나왔다. 신명기와 시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성령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였다. 지금도 나는 기도를 소홀히 하는 성도들을 만나면 말하곤 한다.
‘용해되지 않은 말씀은 내 것이 아니라고, 그 말씀을 녹여서 내 영혼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 기도라고...’
성경공부 교재 첫 장에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인도하시던 집사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각자가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일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게 하시는 분, 끊임없이 내일을 기대하며 기도하게 하시는 내 인생의 유일한 플러스이다.
‘책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알려라.’
‘그 힘 사용설명서’가 출간되었을 때부터 블로그를 개설하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요나처럼 버티다 지난 8월이 되어서야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엔 좋은 이웃들을 통해 제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 지금 제가 잘하고 있는 건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말씀 좀 해주세요.’
기도할 때마다 칼럼을 읽은 분들로부터 기도가 회복되었다는 간증과 함께 책을 구매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칼럼을 읽고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몇 년간 교회에 나가지 않았었는데 다시 교회에 나가보려 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장 10절)
순종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썼더니 첫 번째 만난 출판사를 통해 바로 책이 출간 되도록 해주셨고, 계속해서 책 홍보와 관련된 인맥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의미 있는 점은 홍보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제가 직접 찾아갔던 사람들로부터는 1%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뭔가 도움을 줄 것처럼 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간과 경비만 더 썼을 뿐 겨자씨만큼의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순종하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운영했었더라면 그런 손실들은 없었겠지요. 블로그를 시작한 후부터 난생처음 보는,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들을 만나 협력을 받도록 해주셨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과 함께하는 모든 분이 책 출간 후 만난 인연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 힘 사용설명서’가 제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을 당시엔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막막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나 같은 초보 작가의 원고를 받아 주겠어. 설령 책으로 나온다 해도 어떤 사람이 내 글을 읽겠어.'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아예 집필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저입니다. 주님께서 믿음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던 생각의 조각들이 맞춰져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출간 후 얻게 된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하는 것은 좋은 분과의 만남입니다.
삶에 기도 부흥을 선포하고 이 메시지를 자신의 삶과 주변에 전파하십시오. 기도를 방해하는 세력과 그들이 쌓아 놓은 철옹성을 기도로서 침노하십시오. 침노하지 않으면 침노당할 것입니다. 강하지 않으면 약해지고, 밝지 않으면 어둠이 틈타며,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습니다.
액체가 담기지 않은 공간만큼 공기가 들어오듯, 기도의 부재만큼 우리는 침노당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점점 더 기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미 교회 내에는 기도의 집중을 방해하는 메시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야.”
“기도만 하면 안 되고 이것도 해야 해. 저것도 해야 해.”
거짓 거룩함으로 그럴듯하게 위장한 사탄의 메시지가 성도의 호흡과 같은 기도를 제한하고 차단시켰습니다. 기도의 하드웨어를 구성케 하는 이 블로그의 메시지를 여러분 주변에 전파하십시오. 적어도 여러분의 지경에는 기도에 대한 방해 전파가 없도록 기도의 동역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분별력을 선물하십시오.
이런저런 잘못된 참견에 눌려 기도하지 못하게 된 성도들이 일단 기도할 수 있도록 공유하고 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칼럼을 구독하시는 모든 분들께서 기도 부흥을 견인하는 통로로 함께 쓰임 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 힘 사용 설명서 The Power] 바로가기
주님을 만난 후, 삶의 변화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까지 약 5~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땐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었는지...
돌이켜 보면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중간중간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의 기회를 놓치기도 했으니까요. 저의 시행착오에 대한 나눔이 기도생활을 막 시작하는 누군가의 광야생활을 단축시켜 주기를 소망합니다.
학원을 운영할 때 일입니다. 길벗출판사의 대표님 이하 임원진과 비상에듀의 대표님이 함께 필자의 학원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교육 사업을 시작한 지 5년도 되지 않은 학원장에게 교육업체 전문경영인들이 사업 관련 자문을 구하기 위해 방문을 하곤 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후에 길벗 출판사에서는 저의 의견을 그대로 사업에 반영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늘 이와 같은 패턴의 반복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빠르게 핵심 지식을 익혀 상위권 실적을 낸다.
→ 노하우를 묻는 질문을 받게 된다.
→ 주님께서 하신 일을 간증한다.
→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주님과 동행을 막 시작한 초창기에는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상황만 지속되었습니다. 그때는 오로지 반드시 응답해 주실 거라는 그 믿음 하나로만 버텨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따금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는 반지하 빌라의 전세 보증금만 있어도 좋겠다고 하루에 3~4시간을 무릎 꿇고 기도하던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기도로 뚫고 나온 그 길고도 어두웠던 터널 속으로 돌아가서 다시 기도로 그 모든 상황을 뚫고 나올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터널의 끝이 정말 있는지, 있다면 그 끝은 어디인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터널 속을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반드시 터널에 끝이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으라고... 절대 걷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끊임없이 상담만 요청하며 기도는 하지 않는 청년들, 또 몇 개월 시도하다가 기도하기를 중단하는 젊음들을 저는 이해합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 비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그래서 그 노력이 반드시 결실을 맺도록 돕고 싶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간간이 주시는 작은 응답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책값이 없어서 기도하면 5만 원, 10만 원... 제가 기도한 조건에 딱 맞는 아르바이트 자리, 어쩌면 그렇게 제가 기도한 만큼만 딱딱 맞춰서 주시던지...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는 응답이겠지만 저는 거기서 기도의 위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훈련을 통해서 저를 점점 더 기도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제대 후, 3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제단을 쌓기로 했던 다짐을 중간쯤 되었을 때 허물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12시간 가까이를 서서 일하는 아들이 감기몸살로 앓으면서도 새벽기도를 나가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나 봅니다.
“너무 그러는 것도 율법이야.”
하루쯤 쉴 것을 권하셨지만 제 결심을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또 다른 말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새벽기도만 나간다고 될 것 같아!”
열심히 기도한다면서 실천은 그에 못 미치는 아들에게 홧김에 아버지가 던진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요! 하나님의 축복이 그렇게 완벽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저 도저히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그날 저는 습관이 되어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도 의도적으로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 신앙적으로 의지하던 분들이 축복의 기회를 막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해주는 조언일 겁니다. 그러나 사탄의 잘못된 조언은 평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으로부터 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조언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똑똑한 지인은 똑똑한 지혜로 나의 축복을 가로막고, 기도 없이 성경 지식만 가득한 사람은 그것을 통해 나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기도하면 누구나 주님께 쓰임 받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누구나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한 형제님과 관련하여 비즈니스 미팅을 가졌습니다. 현재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다수의 저서까지 출간해서 인지도까지 갖춘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그분 또한 좋은 파트너를 만나지 못해 많은 손해를 보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는 것이 몹시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착한 주인은 못된 종업원을 만나서 손해를 입고, 착한 종업원은 못된 주인을 만나서 손해를 봅니다. 착한 주인과 착한 종업원을 묶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늘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블로그를 통해서 이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개월에 한 번, 기독교 방송인 예배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방송국의 국장님부터 방송국 PD, 영화감독 등 하나님을 믿는 방송 관계자분들이 참석합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정말 신실한 믿음의 청년을 발굴해서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거짓 신실함으로 무장한 이들이 너무도 많아서, 벌써 여러 차례 속아 본 경험 때문에 이제는 쉽게 돕지를 못합니다. 돕기로 한 모임인데 돕지를 못합니다.
저는 기도로 흥해도 보고 기도 안 하다 망해도 봤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로 일어서 봤습니다. 왜 삶의 모든 자리에서 기도해야만 하는지 호되게 대가를 치르며 배웠습니다. 기도가 일터에서 어떻게 능력으로 작용하는지를 기록한 저의 경험이 모두의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치 공기처럼, 세상에 정말 소중한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어서 무료라지요. 제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며 무보수 칼럼을 쓰는 이유는 전하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잠언을 비롯해 성경 곳곳에 기록된 성공원리로 창업, 취업, 투자 관련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어리면 어린 대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기본 원리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크게 ‘전문성을 갖추는 법, 브랜딩, 홍보, 서비스, 품질유지 ’를 알면 비즈니스는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정직하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과대포장하고 핵심적인 것을 빼기도 합니다. 설령 이론을 배웠다 해도 그것이 현장에서 무용지물인 이유는 그 이론을 실행할 수 있는 ‘그 힘’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책과 칼럼을 읽은 분들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여러분들과 직접 만나서 함께 비즈니스와 투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될 날을 꿈꿉니다.
“지금부터 그 힘을 사용해서 이 성도님의 사업체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장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담대히 선포하고 제게 주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누군가를 돕는 꿈, 하나님의 사람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세상에 생중계하는 꿈을 꿉니다. 부딪히는 문제들을 기도로 극복해가며 하루하루 매출이 늘어가는 모습, 그리고 선교에까지 앞장서게 되는 그 모든 과정을 공개하며 많은 성도님들께 기도의 도전을 드리는 ‘기도 부흥 프로젝트!’
안 되면 어떻게 하냐고요? 안될 리가 없지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재원을 선발해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을,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진행할 것이니까요. 단 한 가지라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준비될 때까지 준비하면 되니까요.
모든 것에는 비등점이 있습니다. 사람이든, 사업이든 충분히 준비가 되면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영어 학원까지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내가 다음으로 도전한 영역은 학원장들을 모집, 관리하는 ‘지사 업무’였다. 지사의 수익구조는 가맹 학원들이 매월 구입하는 책에서 발생한다. 학원생이 많아질수록 지사의 매출도 늘어나기 때문에 나는 가맹점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대체로 지사장들은 가맹점을 직접 나서서 돕지 않는다. 가맹점이 변심하면 가맹점을 키우는데 들어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니 차라리 다른 가맹점을 더 모집하러 다니는 것이다. 가맹점을 믿지 못하냐며 지사장을 탓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변심하는 가맹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서 지사장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인천 원당, 8평 교습소에서 임신한 몸으로 혼자 아이들을 가르치던 20대 중반의 황원장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얘기하며 도움을 청하곤 했다. 나는 교습, 홍보, 회원관리에 필요한 모든 운영 자료는 물론 필요에 따라 학원에 맞는 맞춤 자료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학원 컨설턴트들이 300~1000만 원을 받고 1개월 정도에 걸쳐 주는 노하우 전수를 나는 무료로, 성공할 때까지 지원해 주었다. 꾸준한 시간과 열정을 쏟은 결과, 황원장의 학원은 원당 신안아파트 단지 부근에서 규모와 수강생 면에서 선두를 다투는 소문난 학원이 되었다. 매머드급 학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해 문을 닫아도 그녀의 학원은 승승장구했다.
황원장이 억대 연봉 학원장이 되었을 때, 감춰왔던 그녀의 성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녀 때문에 다양한 업무상의 곤란을 겪었다. 적게는 교재를 복사해서 쓰는 것부터 크게는 고작 1개월에 2~3만 원을 아끼기 위해 본사가 아닌 다른 루트에서 교재를 사는 행동까지... 계약 위반을 밥 먹듯 하는 통에 나는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지사장으로서 학원을 곤란에 빠뜨릴 수 있는 장치가 있었지만 그것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것 일뿐 나에게 얻어지는 실질적 이득은 없었다. 나를 예수님 잘 믿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굳이 보복만이 목적인 그 행동을 실행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의 약점을 적당히 이용할 줄 알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모든 법률적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에게 모욕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동안, 황원장을 용서하는데 많은 기도가 필요했다. 운전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분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2년쯤 흘렀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저... 안녕하세요. 지사장님. 저 황**에요.”
순간, 상냥하던 내 목소리 톤이 지하 100m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아... ... 네.”
급 정색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상황. 황원장 역시 돌변한 내 목소리에 당황했는지 얼마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황원장은 이번에도 나에게 뭔가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했다가 예상치 못한 내 태도에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와 친분이 있던 정현서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그동안 황원장에게 일어난 악재 퍼레이드를 듣게 되었다.
수학 선생에게 학원 일부를 임대 줬는데 임대료도 안 내고 갖은 횡포를 부려 큰 손해를 보고 그를 내보냈다. 황원장이 애인을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학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 황원장 남편에게 말했으며 심지어 법정에서 황원장에게 불리한 증언까지 해줘서 양육권까지 박탈당했다. 수강생들이 계속 줄어서 원당 학원은 폐업했다. 그 뒤로, 장소를 옮겨 두 번 더 학원을 오픈했는데 몇 달이 못 가서 번번이 문을 닫았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형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악인들이 망하는 이유는 그들의 악이 지혜를 가려서 발생하는 문제인 경우가 많다. 세상 사람들, 심지어 무신론자들조차도 악을 행하면 점점 미련해져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몰고 간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 승승장구하던 명석한 악인들이 어처구니없는 선택으로 자멸을 초래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평소 황원장은 학원 선생님들을 막 대했다. 죄에 아둔해진 황원장은 애인 자랑을 자신이 막 대하는 그 선생님들에게 했다. 모두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지만 적대감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총명함은 혼탁해져 있었다. 학원이 망한 것도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하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원래 간신히 몇 안 되는 수강생을 모아 가르치던 작은 공부방 오너였었다. 옆에서 필요한 도움을 주던 조력자를 본인 손으로 내쫓았으니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결국 자신을 수렁으로 밀어 넣은 것은 자비의 하나님이 아닌 죄로 인해 아둔해진 본인 자신일 것이다.
반대로 마음을 좋게 쓰면 정신도 맑아져서 지혜롭게 일 처리를 할 수 있게 되어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도 동의하는 이 세상의 법칙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표현한다. 이 법칙이 세상에 적용되는 이유는 이 세상을 설계하신 분이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 모든 답이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발견한 그 많은 지혜와 지식의 말들이 시편과 잠언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한 마디로 선하면 지혜롭고, 악하면 미련하다. 악인이 계속 성공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과연 성공의 기준이 무엇일까.
[1. 당신은 어느쪽입니까] 바로가기
눈을 감으면 필리핀 빠야따스의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아이들이 그려질 때가 있다.
10만원 안 되는 돈으로 100명이 먹을 수 있는 닭죽을 끓일 수 있고, 그것을 먹기 위해 모인 아이들과 어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필리핀도 지금은 과거보다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선물이나 밥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복음을 듣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 존경하는 이웃 삼월이님을 통해 ‘나눔’에 대해서도 다루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눔의 계절이네요.
오래전부터 부자들을 관찰해 왔습니다. 관찰대상은 흙 수저 출신의 하나님의 부자. 주변에서 만나기조차 어려울 만큼의 부를 축적한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특징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
1. 하나님을 사모한다.
2. 기도를 많이 한다.
3. 부유함을 추구한다.
4. 나눔을 실천한다.
2번까지 하시는 분들은 많습니다. 3번에서 숫자가 조금 줄어들지만 그래도 3번까지 실천하시는 분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4번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따금 소개를 통해 사업관련 자문요청을 해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 같이 돈을 벌면 선교헌금 많이 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헌금은 어떻게 해 오셨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을 못합니다.
한 번도 선교헌금을 해 본적 없던 분이 돈 벌면 할 테니 도와 달라는 말, 어쩐지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조금도 나누지 않는 사람의 기도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실까요.
다행히 저는 아주 가까이서 하나님의 부자들을 보며 1~3번 외에도 4번의 필연성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주님, 저희 집 사정 아시잖아요. 등록금 주시면 신학대학 입학하겠습니다.’
저의 당돌한 기도는 부모님께서 우연히 기도원에서 알게 된 김경숙 교수님을 통해 즉시 응답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부모님이 산에서 내려와 정착 할 수 있도록 강남에 있는 자신의 건물 옥탑을 무상으로 제공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준이가 신학대학 간다고 하면 내가 등록금은 내 줄게.”
그렇게 꼼짝 없이 신학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혈혈단신 이군을 만났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없고, 영양부족으로 척추가 조금 휘었다던 그는 자주 아프기도 했습니다. 동인천에 살던 이군은 이따금 형이 사주는 갈비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2시간 남짓 거리를 마다 않고 오곤 했습니다.
이군을 만날 때면 저는 집에서 밥을 든든히 먹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갈비탕은 언제나 1인분, 제겐 두 그릇을 살만한 돈은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까지는 없었습니다. 당시 저의 전 재산은 5만원 미만에서 왔다 갔다 했었더랬습니다.
‘잘 먹었다.’는 인사 외에는 다른 답례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졸업 후, 1번의 이메일을 끝으로 따로 연락을 받은 적도 없지요.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저는 초라한 지갑을 열곤 했습니다. 순종하는 횟수와 함께 지갑을 열 때 들던 마음의 저항도 점점 줄어들어 갔습니다.
처음으로 특별헌금 700만원을 새노래교회와 행복한교회에 드리던 날이 기억납니다. 마음에 감동은 오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액수라 갈등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리고 나니 확실히 기뻤습니다. 기쁨으로 드린다던 선배님들의 간증,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 오토바이 택시, 트라이시클 후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실한 성도 가정에 공급되어 가정의 안정과 그 십일조로 교회자립을 기대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쉽게 결정 할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 필리핀, 한국의 미자립교회, 그렇게 점점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금액을 드리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많이 해서 수입이 늘었는지, 수입이 늘어서 헌금을 많이 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을 하며 선순환을 했다는 것.
학원을 운영할 때, 저에게 찾아와 노하우를 묻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자료하나 감추지 않고 모두 내주고 심지어 제 돈으로 밥까지 사주며 도와주었지요. 그 중에 극소수만 지인으로 남고 또 일부는 연락조차 없습니다.
실수로 학원을 잃고 보험세일즈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도 영업노하우를 묻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중에는 도저히 영업을 할 수 없는 복장을 갖춘 분들이 있었습니다. 찢긴 구두를 신은 김씨, 단벌 셔츠를 세탁 않고 입고 다녀 심한 냄새로 사원들조차 함께 있기를 꺼려하던 정씨, 정장부터 구두까지 모든 아이템이 낡고 오래 된 또 다른 김씨였습니다.
저는 저보다 나이가 많던 세 분에게 구두, 정장, 셔츠를 제공하고 식사도 사곤 했습니다. 같은 평사원이었고 그들이 잘 되도 제가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은 전혀 없었지요. 얼마 후, 정씨는 차비가 없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돈 거래는 할 수 없다고 하며 이따금 5만원권 지폐를 주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구두를 받은 김씨는 여전히 저와 좋은 인연으로 교회 나가라고 하면 대답이라도 잘 해 줍니다. 정씨는 연락이 없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셋트를 선물 받은 또 다른 김씨는 제가 끝까지 자신을 돕지 않았다고 저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년간 함께 하며 저 한사람이 발생시킨 매출로 5천만원~1억원 사이의 금액을 그가 벌었다는 것을 지점장님과 온 사원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열매도 있었습니다. 공부를 너무 싫어하던 세 번째 김씨, 저는 회사 임원들처럼 김씨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금융은 공부가 업무의 일부인데 너는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하니 이 일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고정급 받는 일이나 한번만 공부해도 되는 상품판매직을 알아봐.”
착하기만 한 김씨는 기본급이 전혀 없는 회사에서 소득 없이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주일마다 저와 함께 교회를 다니고 저와 성경공부도 하던 김씨는 얼마 후,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역교회에 출석했고 결국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김씨가 교인이 아니라 성도가 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세 번째 김씨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있다면 너를 주님께로 인도 한 걸 거야.”
몇 년 전, 그동안 살면서 나눈 것들에 대한 중간정산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전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사람들에게 쓴 커피 값, 밥 값, 기타지출, 얼추 계산해 봐도 소형 세단 값이 나왔습니다.
‘아, 그 돈을 선교지에 보냈었더라면...’
함께 소비 된 시간, 열정, 그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소득은 참으로 비효율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그 때부터 조금씩 더치페이를 연습하며 수 없이 다짐했습니다.
‘주님의 강권적인 푸시가 있지 않는 한,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의 최대 효율성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따라 ‘그 힘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저에게 듣고 싶어 하던 ‘성공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제가 그 도구를 통해 그토록 전하고 싶어 하던 ‘예수님’도...
주님은 책과 블로그를 통해, 한 사람만을 향하던 저의 시간과 열정이 다수를 향하도록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기도한 ‘최대효율성’에 대한 뚜렷한 응답이었습니다. 가장 큰 기쁨은 이제는 저도 받는 것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여러분들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성공이 그러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없는 나눔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저는 배웠습니다.
‘나중에 부자 되면 교회 갈게요. 나중에 부자 되면 헌금 할게요.’
지금 주님을 전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더군요.
1~3번을 실천하고 계시다면 4번도 실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크기는 4번의 크기와 반드시 비례합니다. 아무도 돕지 않고 누군가의 삶 속에도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저는 서운한 마음도 경험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저의 삶에도 아무런 변화는 없었을 겁니다.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또 내가 그렇게 사랑해 준 사람으로부터 다시 그런 사랑을 돌려받는 경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따님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간절함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 번도 뵌 적 없고, 목소리 또한 들어 본 적 없는 두 분이지만 제 하루가 어느 분의 삶보다 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중보기도하고 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
얼마 전, 아버님께서 교회에 등록하셨다는 반가운 소식과 증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소식을 동시에 듣게 되었습니다. 암, 예전보다 치료가 용이해졌다고 하지만 중증 암은 여전히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병원에서 가망 없다는 진단을 받은 분들이 건강을 다시 회복했다는 얘기가 이제 신기하지도 않을 만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붙들었다는 것이지요.
점점 더 나아지고, 반드시 낫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소유하신 분들은 건강한 삶을 되찾았습니다.
믿음으로 병이 낫고, 또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의학계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정설이 되었습니다. ‘진짜 믿음’이 있으면 병은 반드시 낫게 된다는 이 말, 미신이 아니라 상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진짜 믿음’을 갖을 수 있느냐 겠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루트와 종교를 통해 믿음 갖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구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믿음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분들에게도 믿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이제 막 주님을 의지하려고 선택한 분이 암을 극복할 만한 믿음을 가지려 할 때, 얼마나 힘들게 느껴지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귀하께서 아버지라는 사실에 희망을 품습니다. 가족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아내신 그 저력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능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어려운 순간들도 있으셨겠지요.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는 간절함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간절함으로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낫고 싶다는, 건강해지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주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실 때, ‘그 힘 사용설명서’를 들고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심정으로 그 책을 가져가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책도 읽으시고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성경도 계속 읽으세요. 성경에는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는 원리를 몰라도 스위치를 누르면 누구나 전등을 켤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의 의미를 몰라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믿음의 스위치가 켜집니다. 반면, 성경 지식을 잘 알아도 믿음의 스위치를 켜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계속 읽으십시오. 읽으면 읽을수록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힘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교회에도 가시고 병원에서 치료도 잘 받으시고 낫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되 병원에서 말해주는 현실에 귀를 기울이진 마세요. 기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하나님께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원래 긍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늘 부정을 주입하며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근거 있는 말이기에 언제나 타당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무지하고 막무가내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 견해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내 삶, 나의 인생이 됩니다.
병원의 진단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병원은 현재 검진 결과를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것이니까요. 병원에서 뭐라 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로, 기도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음을 선택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도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게 선포하십시오. 당부드릴 것은 ‘만약에 안 되면’이라는 가정은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역사 속에서 ‘만약에 안 되면’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제2, 제3의 차선책을 준비하며 기도했던 사람 중에 응답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영적인 배수의 진을 칠 때 우리의 간절함은 배가 됩니다.
저 역시 ‘만약에 안 되면’이라는 가정을 했었다면 이렇게 편지를 쓰지 못했겠지요. 직업상 안 되었을 때를 염두에 두기도 하지만 기도할 때만큼은 그런 가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야 하지만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그 순간을 위해서만 살 것처럼, 마치 오늘 응답받지 않으면 내일은 없을 것 같은 각오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 믿음을 갖는 것은 힘이 듭니다. 이렇게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평범을 넘어서는 당사자의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귀하께서 스스로를 살릴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 따님과 교회 분들 또 온라인에서 함께 기도해 주실 많은 분들의 믿음으로 귀하를 살게 할 것입니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세상 사람들은 우연이라 부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 부릅니다. 이것은 아마도, 아직은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실 수 없는 분에게 주님께서 저를 통해 보내시는 첫 번째 러브레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기쁜 소식으로 뵙게 될 날을 기대하며 브리스가 드림
블로그를 운영한 뒤부터 출판사에서 부쩍 주문량이 늘었다는 소식은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블로그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들어오는 단체 주문도 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블로그 운영전까지 단체 주문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단체 주문은 백 퍼센트 주님께서 판매하신 건이지요. 그런데 블로그 운영 후부터 단체 건이 조금씩 늘더니 드디어 소망교회에서 500권을 주문해 주셨습니다.
제가 움직이니까 주님도 함께 움직이시는 듯한 이 상황,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주님도 함께 일하시더라는 목사님들의 간증이 떠오릅니다.
이웃분의 글 중에서 ‘기도의 응답을 본인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낯설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면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불확신, 결과물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항상 그 녀석이 맹위를 떨칩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를 하면 평안과 알 수 없는 확신을 주시고, 그 가운데 꾸준히 행함을 유지하다 보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동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전령이 도착한 것이죠.
이 패턴,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새로운 도전과 맞닥뜨리게 되면 ‘기도의 응답이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되는’ 그 불확신이 찾아옵니다. 블로그 초창기 아무런 댓글도 없을 때, 주님께 여쭙곤 했습니다.
‘지금 제가 잘하고 있는 건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말씀 좀 해주세요.’
저에게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굳히게 만든 것은 여러분이었습니다. 불확신은 열정을 차단하지요. 아시다시피 열정이 없다면 뭐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 상태가 조금만 더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블로그에 신앙일기를 다시 적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다시 하루하루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시 교회를 나가보려고 한다.’
‘다시 ~ 하게 되었다.’는 신앙 간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글을 통해서 기도가 회복되는 ‘기도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다가 블로그 알람이 울려서 봤더니 본인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던 그 제목이었다.’
‘초대가 와서 무심코 읽은 첫 번째 칼럼이 내가 요즘 기도하던 그 문제의 답이었다.’
‘요즘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런 간증을 접할 때마다 ‘아,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고 계시구나.’ 확신이 들면서 평소보다 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 보려고 몸가짐, 마음가짐 노력하게 되더군요.
신앙 연조가 있는 분들 중에는 ‘아직도 이것밖에 안 되는 자신의 모습’을 못마땅해 하며 스스로를 혼내고 정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때 우리 자신은... 참 못마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그런 꾸지람보다 ‘칭찬과 보상’이 훨씬 더 발전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사람들도 알고 있는 양육방법을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모르실리 없겠지요. 결국 주님께선 이렇게 저에게 칼럼을 쓰게 하신 이유는 여러분이라는 최고의 칭찬을 통해서 저부터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들어 가시려는 계획이셨나 봅니다.
운영해 보니 블로그는 우리 마음과 구조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영화, 음식, 여행 자기가 주제를 정해서 포스팅하는 만큼 주제별 관심사와 지식이 깊어지듯, 주님에 대한 포스팅이 많아지는 만큼 신앙도 성장하는 듯합니다.
단지, 신앙 포스팅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나 봅니다. 신앙일기를 쓰기 시작했더니 일어나는 소소한 변화들을 알려옵니다. 아시다시피 큰 변화는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우선 시작하고,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는 꾸준함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듭니다. 언제나, ‘일단 시작’과 ‘꾸준함’이 기적을 만듭니다. 성실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창의력은 쓸모가 없게 되어 버리지요. 모든 성공은 10퍼센트 미만의 탁월함과 90퍼센트 이상의 단순함을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실천이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발걸음이라면 우리는 기도의 응답과 믿음의 성장이라는 보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이 사탄의 세력에게 점령되다시피 했다는 말, 흔하게 들려오는 이슈인 것 같습니다. 이곳 온라인에서는 믿음, 기도, 예수그리스도라는 키워드가 실린 포스팅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이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미디어 선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봄부터, 주님께서 블로그를 통해 ‘책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알리라는’ 사인을 주셨는데 블로그는커녕 흔한 페이스북도 해 본 적 없던 터라 계속 버티다 뒤늦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려고 해서였을까요. 페이스북은 회원 가입 때부터 계속 오류 나서 아이디도 못 만들고... 알바 도움 잠깐 받았더니 사이비 친구들을 잔뜩 초대해오고...
아이디를 만드는 것부터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막막해 계속 미루던 때에 분명하게 들려온 마음의 음성.
“오프라인의 하나님이 온라인의 하나님은 아니냐.”
그에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제 간증 글도 올리겠지만 온라인을 시작할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을 저는 삶에서 몇 번이고 경험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하나 문제를 극복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평범을 넘어서는 성과들이 나타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했었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그 힘’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간 주님과 함께한 자취를 검색과 자료로 증거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도 남겨두게 하셨나 봅니다.
전교 꼴등 했던 학생이 어떻게 선생님들에게 교수법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세계적인 영어 매거진의 교육파트 팀장을 거쳐 국내 일류대학 라이센스로 진행되는 어학원 프로그램의 총괄기획까지 맡게 되었는지...
기도 안 하고 안일한 삶을 살다가 어떻게 무너지고 또다시 어떻게 기도하며 억대 연봉자협회 회원이 될 수 있었는지... 무너질 때마다 전혀 다른 새 분야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인지...
단순히 정신집중과 열정의 산물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저 급여 70만 원을 받던 어린 청년이 대체 어떻게 해서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상위 1%까지 올라갈 만큼의 정신집중과 열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제게는 주님께 해답이 있었습니다. 이 문장만 읽으신 분들은 저를 기복 신앙인으로 오해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과거도 올립니다. 제가 극복한 것은 단순히 가난만이 아니었고, 그곳엔 언제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함께 계셨으니까요.
살면서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과거입니다. 그것이 비즈니스에 1%도 도움 될 만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요. 묻어두고 싶은 과거지만 제 삶을 통해 전해져야 하는 메시지는 그래야 균형을 찾겠지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저희 가족의 가난과 삶의 아픔을 모른척하며 선교만 하라고 강조하시는 분이라고 믿었다면 고등학생이던 저는 교회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주님을 만나는 시간은 훨씬 더 뒤로 미루어졌었겠죠. 그런 이유로 신앙적 갈등을 하시고 있는 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 메시지를 준비하셨다고 믿습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방식으로 기도와 믿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분을 어린 날의 제가 만났었더라면 저는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읽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가 글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요. 하나님의 사람은 성경 속에 답이 있습니다.
신학을 전공했지만 목회자는 아닙니다. 저를 친구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다가 조금 더 빨리 수학공식을 깨달은 같은 반 친구. 같은 학생 입장이라서 그런지 친구의 설명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될 때가 있지요.
믿음의 법칙 = 이루어질 것을 생생하게 꿈꾸듯 바라보는 것
저는 블로그에 방문하신 분들께서 기도의 응답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감하며 기쁨에 전율하는 모습을 꿈꾸며 바라봅니다. 그것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덮는 꿈도 꿉니다.
[뉴스 원문]
[『그 힘 사용설명서』 브리스가 저자 "브리스가 선교재단의 시작은 기도부흥사역입니다"ㅣ밸류체인타임스] 바로가기
『그 힘 사용설명서』 브리스가 저자 "브리스가 선교재단의 시작은 기도부흥사역입니다"
『그 힘 사용설명서』 브리스가 저자는 기도의 원리와 축복 메시지를 구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책에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법과 믿음대로 되는 법칙이 자세히 적혀져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면 축복을 받기 원하는 브리스가 저자의 간곡함이 느껴진다.
기자: 책 제목이 ‘그 힘 사용설명서’입니다. ‘그 힘’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저자: The Power, 그 힘은 고유명사로 쓰인 단어로, 하나님의 힘 즉, 절대 주권을 의미합니다.
기자: 출간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으신가요?
저자: 20대 초반, 주님을 만나고 꿈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일 하고 싶어서 20대 중반에 신학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더 이상 돈을 안 벌어도 될 정도가 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을 할 것입니다.
기자: 억대 연봉자 모임에 회원으로 등록이 되어있으시던데 얼마나 돈을 더 버셔야 하나요?
저자: 한국, 미얀마, 필리핀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데 모두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영혼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입니다. 특히 필리핀은 TV에도 여러 차례 소개 된 쓰레기 마을에 위치해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따로 모금 활동을 위해 다니지 않으셔서 보내드려야 합니다.
기자: 목회를 그만 두시고 사회 전선에 뛰어드신 건가요?
저자: 신학대학에 와보니 대부분 학생들이 하나님께 부르심 받아서 오게 되었다고 하던데 저의 경우에는 특별히 그런 부르심을 경험하진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제 마음대로 무작정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막상 입학을 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우선 등록금이 문제였고 졸업을 한 후에 받게 될 목회자들의 급여도 저에게는 고민거리였습니다.
당시에 저희 집은 부모님의 사업부도로 처하게 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부모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조그만 지하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저는 ‘예수님이 좋은 것’과 ‘목회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마이너스 통장은 늘 한도치에 달해 있었고 성전 임대료는 몇 개월씩 밀려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생각하는 목회자의 삶이란 궁핍과 돈에 대한 쪼들림이 늘 함께하는 것처럼 보여 졌습니다. 몇 차례 목회를 중단하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무례를 무릅쓰고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부모님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늘 부모님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자녀로서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목회지에는 노숙자 또는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분들이 주로 계셨던 터라 교회의 유일한 운영자금은 이모부부, 삼촌부부, 어머님과 함께 해온 친구 같은 동역자 분들이 보내 주시는 헌금이 전부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들어온 후원 헌금들로 성도들에게 반찬을 만들거나 찬거리를 사서 주시기도 하시고 항상 무엇인가를 베풀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성전 임대료가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교회에서 주는 구제 물품과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지내던 분들이 교회를 떠날 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나는 모습은 자녀로서 모른 척 지켜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기자: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저자: 이를테면 돈을 빌려 달라거나 자신이 하는 다단계에 같이 가달라거나 보험을 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전혀 필요가 없을 200만원 상당의 무전기를 가져와서 팔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기자: 사주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는 건가요?
저자: 네. 그 중에는 부모님께 큰 소리로 화를 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목회를 그만 하시거나, 다른 교회의 부교역자로 들어가시면 안 되겠냐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부모님은 제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셨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저희 부모님이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TV에 가끔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가만히 보니까 저희 부모님이 그런 분들인 거에요. 너무나 죄송해서 회개하고 눈물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교회는 닫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지, 부모님이 하시는 일이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부모님은 옳은 일을 하시는 것인데 내가 사역에 도움이 될 정도로 충분히 돈을 벌면 될 일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고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목회가 아닌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사람들에게 왜 기도가 필요한지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분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모두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축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간증과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기도 응답에도 일종의 노하우 비슷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주변에는 10~20년씩 교회 다니시면서도 이렇다 할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당시 저 역시 그런 유형의 신자였는데 듣고 배운 대로 기도를 드렸더니 저에게도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 기억나는 기도 응답이 있으신가요?
저자: 가장 처음으로 경험한 극적인 기도 응답은 부모님 교회에 제가 존경하는 성도님 부부가 계신데 당시 두 분에게는 몇 개월간 꾸준히 기도를 했음에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두 분께 찾아가서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 됩니다”라고 함께 기도했는데 정말 그날로 그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분들도 놀라셨겠지만 저도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그 때부터 기도에 불이 붙었던 것 같아요. 기도를 하니까 응답이 되고, 응답이 되니까 힘이 나서 몇 시간씩 기도를 하게 되는 선순환이 시작됐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그 힘 사용설명서’는 기도 응답의 노하우에 대한 책인가요?
저자: 주변에서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의 경험담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응답의 원리,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원리를 분석해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제대 후에 첫 직장에서 받은 급여가 70만 원이었는데 최저 임금을 받던 사람이 불과 몇 년 만에 억대 연봉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 해지니까 차츰 기도에 소홀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기도를 하지 않다시피 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니까 제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지지 않더라고요. 주님 만나기 전의 거친 성품들도 다시 나타나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성품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던 지혜와 실행능력까지도 삶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더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저로 돌아갔습니다.
기자: 이를테면 최저 급여를 받던 예전의 본인 말인가요?
저자: 네, 맞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특별하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보통 사람’과 ‘특별한 사람’으로 구분 되는 것 같아요. 그럼 누가 특별한 사람이냐?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다시 보통 사람이 됩니다.
‘보통 사람’은 특별한 사람들의 성공노하우를 배우겠다고 뒤를 쫓지만 ‘특별함’은 배움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생기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성공보다는 실패를 하잖아요. 사업이든, 장사든... 저도 딱 그렇게 보통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다시 삶의 위기가 찾아오면 저는 또 예전처럼 기도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저를 보통 사람들의 범위에서 구분 지어 특별한 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기자: 어느 정도의 성공이신가요?
저자: 성공이라는 말은 조심스러워서 저는 성취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제가 속한 분야에서 상위 1% 안에 드는 실적을 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 앞에서 잘 된 케이스로 사례 발표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사실 제 삶에서 나누고 싶은 부분은 제가 크게 부자가 되었거나 성공을 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부터 사고 싶어 하던 자동차가 있는데 아직 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제가 지금까지 드린 헌금이면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정말 큰 자산가가 되었다면 아마 예물도 드리고 사고 싶은 것도 샀겠지요. 제 성취의 크기는 현재 그 정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최저임금을 받던 사람이 기도를 통해 억대 연봉자가 되었지만 기도 생활에 나태해져서 다시 최저 임금을 받던 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시 기도했더니 다시 억대연봉을 받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 패턴을 반복하며 극에서 극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 마디로 1등 아니면 꼴등이었던 거죠. 보통은 한 사람의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성취와 실패, 실패와 회복이 제게 몇 번이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동행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제가 경험한, 제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모태신앙으로 주일학교부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주신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거든요. 그냥 추상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기도에 응답 받았다는 간증을 해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도 응답해주시리라는 확신은 없었던 거지요. 저는 분명히 성도 분들 중에 저와 같은 분이 계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자: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이신가요?
저자: 제 필명 브리스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의 선교사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잖아요. 그녀의 이름을 딴 브리스가 선교재단건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저도 모든 수익 사업에서 손을 떼고 거기서 매월 발생하는 금융소득을 그 달 안에 100% 다 선교에 소진하며 사는 것입니다. 재단 건립자금을 모을 때까지는 충분히 벌어서 충분히 헌금하며 사는 것이고요.
기자: 작가님의 본명이 궁금합니다.
저자: 억대 연봉자 모임에서 조회해 보실 수 있도록 제 책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브리스가 저자는 ‘그 힘’, 즉 하나님의 힘을 온전히 구하고 기대하면 반드시 응답을 주신다는 당찬 확신과 하나님의 향한 열망으로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브리스가 저자는 현재 두 번째 저서 ‘구원의 밸런스’ 출간을 마쳤으며, 3번째 책을 출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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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한유영 기자]
'그 힘 사용 설명서' 저자 브리스가의 이야기가 신앙계 9월호에 소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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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분만하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소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무사히 나를 낳게 해달라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면서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철야예배에 참석했었다는 어머니의 무용담은 어려서부터 워낙 많이 듣던 단골소재였다.
“너는 그렇게 기도해서 낳은 아이야.”
그렇게 기도해서 낳은 아이는 삼남매 중 유일한 골칫거리가 되었다. 순둥순둥 무난하게 자라던 나는 부모님의 사업부도와 함께 급격히 어긋나갔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신앙적인 면을 누구보다 존경했었다. 그런 부모님의 사업 부도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쌀이 떨어지고, 시장 상인들이 버린 팔다 남은 채소를 얻어다 먹을 만큼 어려웠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밀린 고등학교 수업료 때문에 울 때마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보내줘야 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실망감으로 성경책을 땅에 팽개쳤다.
하나님이 너무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어째서인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도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축복의 하나님을 소개해 주셨다. 한 푼 없이 시작한 사업체를 현재가치로 수백억 규모의 기업으로 일으키기까지의 끊임없는 신앙 간증들. 당시의 나는 구원과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질병처럼 우리에게 닥쳐온 이 지독한 가난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뿐이었다.
군에 입대한 나는 부모님 말씀대로 매일 신명기28장, 시편 1편을 읽기 시작했다. 취사병이었던 나는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 놓고 혼자 보일러실에서 어린 시절 가정예배를 드렸던 순서대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성경을 읽고 성경책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삶을 돌아봐 주실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대 후에도 형편은 그대로였다. 아픈 아버지께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으로 일을 하시던 모습은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오신 주님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내가 기대했던 물질이 아니라 못 자국이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난 나는 정신병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던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진심어린 감사가 가능케 되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전도 대상자들에게 말하곤 한다.
“심령의 고통을 차단하셔서 아픔을 잊게 하시고 현실을 극복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녀에게 예수님을 선물 하십시오. 당신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날에, 주님께서 당신 대신 당신의 자녀를 지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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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의 나는 10살도 더 차이나는 형님, 누나 집사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었고 겸손한 두 분은 진심으로 기도에 동참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몇 개월 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그날 바로 해결 되었다. 그 때부터 작은 개척교회에 기도다운 기도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기도다운 기도란 하나님의 구체적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요청, 응답 주신다는 확신이 있으니 몇 시간도 거뜬히 무릎 꿇게 되는 것이다. 요즘 일부 교인들이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를 강조하는 것에 반감 표함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플러스가 된 것은 기도였기에 나는 기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급여 70만원을 받던 나는 몇 년 후 억대 연봉을 받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전교 꼴찌를 했던 아이가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하고, 선생님들에게 교수법을 강의하는 강사가 되었으며 어학원 프로그램 기획 총괄을 맡게 되었다. 평균이하로 미련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응답주시는 방식은 뜻 밖에도 ‘탁월한 지성’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이, 이후에는 기업체들이 소개소개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면 공략해야 할 고객유형, 화법, 마케팅 포인트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이디어는 나의 배경 지식에서는 나올 수 없는 ‘내가 알지 못하던 크고도 비밀한 것’이었다. 관리자가 되면 평균매출은 오르고 육성을 받은 사원들 중에서 억대 연봉사원들이 나왔다. 신명기와 시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성령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였다. 지금도 나는 기도를 소홀히 하는 성도들을 만나면 말하곤 한다.
‘용해되지 않은 말씀은 내 것이 아니라고, 그 말씀을 녹여서 내 영혼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 기도라고...’
성경공부 교재 첫 장에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인도하시던 집사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각자가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일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게 하시는 분, 끊임없이 내일을 기대하며 기도하게 하시는 내 인생의 유일한 플러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