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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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Church
2023-02-21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게 되면 하나님의 성화 훈련도 함께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무엇인가를 구하면 그것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그릇도 함께 만들어 주신다. 예를 들어 많은 물질을 위해 기도하면 그 물질을 잘 다스리고 거룩하게 쓸 수 있는 인품도 주신다. 물론 그 과정에는 적절한 훈련 프로그램이 도입된다. 이것을 연단이라 한다.


또한, 연단을 거쳐 사람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일컬어 성화라고 한다. 성화는 구원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하나님과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이따금 당사자들도 본인이 구원 받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는 듯하다.


‘그러면 구원 못 받은 것입니다. 구원 받았으면 스스로 확실히 압니다.’ 


익히 알려진 바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예외를 만들곤 한다. 즉 인생사에 100%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목사님 가정에서 자란 L자매는 당연히 구원 받은 줄 알고 살았다. 그녀의 나이가 46세가 될 때까지... 


그녀는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며 구원 받은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46세에 주님을 만나 거듭남의 체험을 하고 보니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구원 받지 못한 상태로 살아 왔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 전까지 그녀는 구원 받은 줄 착각하고 살아 온 것이된다.



이것은 ‘구원이 학습된 결과’이다. 하라는 대로 하면 구원 받는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따라 했더니 다들 구원 받았다고 말해준다. 설교 때마다 뭉뚱그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해주니까 분위기상 자신도 모르게 구원 받은 줄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줄 알고 죽었는데 눈을 떠보니까 지옥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의 종이라는 타이틀로 사역을 하던 사람들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른 척 하시는 사례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구원 받은 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배려한 두려운 경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부로 다른 성도의 구원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본인이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믿음을 통해서 점검되어져야 한다. 동시에 성경은 행함을 통해서 그 믿음이 진짜인지를 증명하라고도 말씀하고 있다. 구원은 분명 입으로 시인하고 믿는다는 고백을 통해 손쉽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고백이 진짜여야만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1%도 없으면서 따라하라니까 앵무새처럼 따라한 결과로 진정 구원이 완성되겠는가?


나의 믿음이 진짜인지, 내 안에 주님이 정말로 임재하시는지를 인간이 유관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성화’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만큼’이라는 절대 기준을 달성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예수님을 닮아보려는 진실된 몸부림이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죗값 다 지불해 주셨으니 처음부터 작정하고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심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다가 저지르게 되는 죄와 허물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특징은 성화이다. 그것은 거룩한 변화를 의미한다. 머리카락만큼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예수님을 닮아 보겠다는 진실한 몸부림이 있었는가? 


누구나 좋은 사람, 좋은 상황 앞에서는 좋은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문제는 힘든 세상의 시련 앞에서, 나를 화나게 하는 상황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이다. 마음껏 죄를 지으며 1%의 죄책감도 없다면,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면, 예수 믿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성품적인 발전은 전혀 없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면 그 구원이 진짜 구원이겠는가. 


행함이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행함에 대한 의지를 통해 스스로의 구원 여부를 조심스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이 기준을 기도와 응답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주심을 믿는다 말하면서 기도는 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조금도 순종하지 않고 있다면 그 믿음이 참이겠는가?


운전 중에 마음껏 화를 내며 왼쪽 뺨을 때린 사람에게 왼쪽은 물론 할 수만 있으면 오른쪽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앞에서 주님을 의식하며 절제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의 주인이 과연 하나님이라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마음으로 지은 죄도 엄연히 죄라고 말씀하신다. 복수할 능력이 없어서 직접적으로 복수는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미워할 거 다 미워하고, 화낼 거 다 화내고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는 하지 않고 용서는 하지 않으면서 내 인생의 목표를 위해서만 기도한다면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기복신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번영을 기원하는 것에 특화된 어떤 종교는 입에서 특정한 구령을 반복하는데 본인들 말로는 응답률이 높다고 한다. 그들은 죄를 멀리하라고 하지 않는다. 


믿음과 관련된 책중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있다. 그 책에서는 그 힘을 사용해서 동시에 세 명의 이성을 사귀게 된 것을 마치 간증처럼 자랑하고 있다. 오로지 자신들이 갖고 싶은 것에 대해서만 집중할 뿐 영혼의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그들은 번영을 기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번영을 기원할 때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에 제약을 받는다. 그것은 ‘거룩함’이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화낼 거 다 내고, 미워할 거 다 미워하고 복은 언제 받을래?”


세상의 감정들로 가득 찬 심령으로는 하늘의 것을 받을 수 없다. 가난한 심령의 소유자들만이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만 응답 될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지 여부는 말씀을 실천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증명되어질 것이다. 


자고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살아야 한다. 10년 전, 20년 전보다 나은 내가 되어 있어야 한다.


“너는 왜 그렇게 까칠하니? 화났니?”

“나 원래 그래.”


은혜 받은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은 누구나 상상이 갈 것이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면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친구들과 유쾌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음성과 표정, 기분을 생각해보라. 대체로 은혜 받은 사람은 인상과 분위기를 통해 그것이 드러난다.


“나도 한 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잘 안 돼.”


은혜 받은 티가 나지 않는다면 은혜 안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주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는 삶은 성화가 중단되고, 성화에 대한 소망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면 축복의 통로, 기도도 막힐 수 있다. 


만일, 과거에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지금은 은혜와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필시 그럴 말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다시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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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1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범사(凡事)라 함은 모든 상황, 모든 사건을 의미한다. 성경대로라면 깊은 분노를 느끼게 하는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분노의 순간에 감사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노를 선사한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노한 상태로 업무를 처리하거나 누군가와 언쟁을 벌여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평상시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왜 그 때는 이런 생각들이 나지 않았을까” 


상대방에게 실컷 화를 퍼부었는데도 마음이 영 좋지 않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영적 패배감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잃어가며 싸웠다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평안해야 세상도 이기고 신앙도 승리할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빠르게 심리적 안정과 평안을 되찾아주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한다. 감사가 이토록 빠르게 안정감을 찾아주는 이유는, 문제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상황의 긍정적 면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적인 회복력도 간과할 수 없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감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감사는 훈련이라고 하는 배움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훈련하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계속 연습하면 다음에는 좀 더 쉽게 감사할 수 있고 더욱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어떤 고난이 와도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견고함을 지니게 된다.


실패 자체는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지 못한다.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도 내 인생을 망칠 수 없으며 내 기분을 망가뜨릴 수 없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해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내 마음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사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최씨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다가 교통범칙금 딱지를 끊게 되었다. 

“젠장, 5만원이면 가족들과 외식 할 수 있는 돈인데 재수 더럽게 없네 쯧.”


최씨는 하루 종일 범칙금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최씨의 가족들 또한 저기압인 최씨 때문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최씨 가족의 나들이는 유쾌하지 못하게 끝나고 말았다. 



옆집에 사는 오씨 역시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다가 교통범칙금 딱지를 끊게 되었다. 오씨는 몹시 불쾌했다.

“5만원이면 가족들과 외식 할 수 있는 돈인데 재수 더럽게 없네 쯧.” 


오씨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도 하지 않고 한동안 운전만 하다가 문득 가족들의 분위기를 보았다.


‘아,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나온 거였지. 어차피 즐겁기 위해서 더 큰 돈도 써가며 놀러도 다니는 것 아닌가. 우리 가족의 즐거운 오늘 하루를 5만원 때문에 망쳐서는 안 되지.’


오씨는 억지로 감사의 제목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 문득문득 범칙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애써 의식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했다. 오씨의 노력으로 그와 그의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내 기분을 망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하지만, 상황도 좋지 않은데 기분까지 나빠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행복은 선택하는 습관이다. 지금 당장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 


목표를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고 이 같은 태도 역시 습관이 된다. 이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평생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행복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감사를 선택하자. 당신의 행복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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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