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 리포트는, 밸류체인에서 봉사하고 있는 멘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작성하는 글입니다. 언젠가 멤버들이 하나님께 대외적으로 쓰임 받게 되는 날, 행여라도 억울한 소문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객관적 상황을 미리 남겨 놓는 기록입니다.
귀하께서 공격하듯 책망하고 있는 그 멘토는 귀하의 자녀분과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청년입니다. 귀하의 자녀분이 어려운 누군가를 도왔는데 몇 년 만에 나타나서, 지금 귀하께서 하고 있는 행동을 자녀분께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분 나이의 사역자들이 과연 선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사탄에게 영이 잠식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논리적 대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으며 할 말이 없으면 화를 냅니다. 부디 귀하와는 대화가 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한 글자씩 적습니다.
1. 귀하의 문자에서 멘토를 향한 원망이 느껴집니다. 혹시 멘토가 귀하께 돈을 요구한 적이 있나요?
2. 당시 밸류체인에서 함께 모금을 해드렸고 귀하께서도 감사 문자를 보내셨던 것은 기억하시나요?
3. 그럼에도 귀하께서는 멘토의 어떤 제안도 수행하지 않으며 ‘돈을 벌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은 기억하시나요?
어떤 미련한 사람이 돈을 돌려 받으려고 온라인에서 만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에게 돈과 시간을 쓰며 모금까지 해드리나요?
4. ‘돈을 주겠다’는 그 약속은 지키셨나요? 단돈 만 원이라도 보내셨나요?
5. 멘토의 지속적인 제안을 모두 무시하고 본인 마음대로 살다가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병까지 얻어서 몇 년 만에 나타나 이렇게 원망을 하시는 분과 맞닥뜨린 상황을 귀하의 자녀분이 겪고 있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말씀 읽으세요. 기도하세요. 운동하세요'
그 어떤 말도 실천하지 않고 본인 마음대로 사는 분을 지키고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멘토의 말이 성에 차지 않아서 본인 뜻대로 살겠다고 가셨으면 잘되셨어야지요. 영육간 튼튼하게 잘 사셨어야지요. 아니면 더 훌륭한 다른 멘토를 찾아가셨어야지요. 귀하의 목사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귀하의 지체들은 어디에 두고 생판 본적도 없는 사람에게 몇 년 만이 나타나서 이런 원망을 쏟아 놓으시는 건가요?
주님께서 연결해주셨다고 믿었다면... 멘토가 그 정도 노력을 보였다면 본인도 성의는 보이셨어야죠. 본인 시간만 소중합니까? 정녕 멘토들이 할 일 없고 무능해서 이 사역을 하고 있는 줄 아시는 겁니까?
멘토의 제안은 전부 무시하고, 본인 맘대로만 행동하며 ‘힘들어 죽겠다’는 보기만 해도 하루 종일 우울해지게 만드는 장문의 문자만 줄창 보내기에 한 마디 했더니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요? 정죄를 한다고요?
정죄란 이런 것입니다. 강단에 서서 설교만 했으면 이런 일 겪지 않았을 텐데 괜히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습니다. 귀하께서는 현재 사역자를 훼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귀하 때문에 사역할 의욕이 사라집니다. 제가 이래서 함부로 멘티 관계 맺지 말라고 사역자들에게 신신당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게 정죄입니다
저는 모두가 은혜롭게 듣고 있는 간증 사례 뒤에 가려진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는 어두운 간증들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고 들으며 자라왔고 지금도 그 현장에 서있습니다.
고아를 입양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키웠더니 집에 돈을 훔치고... 속을 썩여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주었건만 친딸까지 겁탈한 입양아, 서울 상경해서 오갈 데 없는 청년을 데려다 기술은 물론 야간학교까지 보내 준 오너의 가게 부품을 훔쳐 판 청년... 용서했더니 계속 나쁜 행동으로 오너에게 피해를 입힌 최○○, 병력으로 취직조차 되지 않는 미혼모에게 육아와 일감을 제공해 준 오너를 급여 미지급으로 허위 고소했다가 재판에서 지게 되자 재판비를 달라고 한 염치없는 엄○○...
‘너 크리스천인데 용서 안 할 거야? 사랑 안 할 거야? 네 딸을 겁탈은 했지만 용서해야지? 여러 번 훔쳤고 앞으로도 훔칠 거지만, 망해서 네 가족들이 거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용서하고 데리고 있어줘야 주님의 사람이지? 어딜 감히 나를 버리려고 해? 그 어두운 표정은 뭐야? 끝까지 친절한 미소로 말 해야지?’
이런 것이 정죄입니다. 그리고 지금 귀하께서 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살이 찢겨도 품어야 하는 것이 십자가 사랑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귀하는 멘탈 약한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위험한 크리스천 같습니다. 무엇보다 귀하께서는 그런 사랑을 실천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는 사역은 구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착한 성도들의 마음을 역이용하려는 마귀에게 사역자들이 봉변당하는 일이 없도록 분별하고 지키는 것 입니다. 귀하께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마음 아프지만 저는 귀하로부터 제 지체를 지켜야겠습니다.
프로그램 개발자인 P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ㅇ수학에 억울한 일을 당한 C는 어떻게 되었을까?
P는 평생을 기도해 왔던 모든 기도제목을 응답 받게 되었다.
1. 완벽한 시간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었다. P가 그동안 대가를 받지 않고 성도들을 섬겨온 과정과 P가 쓴 책과 칼럼이 일종의 ‘신뢰 보증’ 장치가 되어 P에게 투자 의뢰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P의 주위에는 돈을 맡기고 싶다는 대기 수요가 항상 있는 상태다.
2.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완전히 잊고 지냈던 꿈, P는 목회자가 되었다. 매주 성도들의 간증이 끊이지 않는 성령 충만한 성도님들과 함께하는 교회, 성도들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사가 되었다.
3. P는 신학교 시절부터 말해왔던 ‘목회자를 돕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선포를 이루어가고 있다. 돈 때문에 목회를 하지 못하는 목사님, 교회는 있으나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목사님, 젊은 일꾼들이 없어 꼭 필요한 교회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는 목사님 등 P는 자신의 지체들과 함께 목회자분들을 돕고 있다.
이번엔 C의 근황을 살펴보자.
C의 목사인 P는 예배 중에 모든 성도들 앞에서 선포했다.
“혈기 부리지 않고 지혜롭게 문제를 잘 처리하였으니 C 성도님에게 곧 전리품이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처럼 다음 날 C에게 한 관공서로부터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C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했다.
C는 강사료와 함께 100명의 학생을 배정받게 되었다. C와 한 번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평생 인맥이 된다. 100 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알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황금 인맥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ㅇ수학 직원이 여기저기 C에 대해 험담한 내용을 보면 C가, ㅇ수학 학생들에게 C의 개인 과목을 홍보한 것에 대한 험담이 있다.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수학도 아니고 전혀 다른 과목을 권하는 게 무슨 잘못인가?
학생들이 ㅇ수학 소유물인가? C는 ㅇ수학을 위해 기사도 써주고 홍보 영상을 촬영해주는 등 최선을 다해 ㅇ수학을 도왔다. 그러나 ㅇ수학이 C에게 저지른 여러 행동들로 미루어 볼 때, 그저 남 잘되는 꼴 보기 싫은 질투심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 상황은, ㅇ수학이 인색한 마음으로 C의 사업을 훼방하자 즉시로 하나님께서 C에게 새로운 고객들을 선물로 주신 상황으로 보인다. C는 어떤 크리스천일까?
C 부부는 자신의 아파트 중 한 채를 교회 겸 사택으로 제공했으며 10명이 넘는 교인들을 전도했다. 두 부부의 헌신으로 나이든 한 목회자 부부가 충분한 사례비를 받으며 34평 좋은 아파트에서 목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예수님 믿은 지 3년 차 되는 새신자 때에는 자신의 집을 기도 처소로 제공하여 날마다 많은 성도들의 기도 부흥을 이끌었으며, 10년 근속으로 받은 5돈짜리 순금 메달을 지역 개척 교회에 드릴 만큼 주님의 일에 진심으로 살아왔다. 거제도에서 인천까지 박보영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기 위해 매주 온 가족이 다녔을 정도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특별한 성도들이다.
이한수 목사님은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쩌면 성도님들이 목사님들 보다 더 믿음이 좋으실지도 모릅니다. 목사는 직업이 목사여서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오지만 여러분은 돈도 생기지 않는데 이렇게 열심히 교회를 나오니까요”
돈 한 푼 받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재정을 아낌없이 드리며 살고 있는 C 부부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P가 C에게 승리의 전리품을 선포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 분쟁에는 ㅇ수학에 대한 복수심이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C라는 한 성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상황을 사실대로 말할 뿐인데 그럼에도 ㅇ수학에 대한 험담처럼 들리는 이유는 ㅇ수학이 한 행동 자체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태훈이가 차에다 커피를 쏟았어요 - 험담처럼 들리진 않는다
태훈이가 차에다 똥을 쌌어요 - 태훈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말로 들린다
ㅇ 수학이 확인도 하지 않은 거짓말로 한 성도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다. 단지 했던 행동을 나열했을 뿐인데 행동 자체가 흉악하니 험담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ㅇ수학에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난정과 ㅇ수학의 거짓말을 들은 이들에게 상황을 정확히 알려 C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다. ㅇ수학을 이니셜처리 해 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ㅇ수학이 악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니셜로 덮어 놓은 모자이크가 모두 실명 처리 될 것이다. 명예 훼손에 따른 벌금 몇백만원은 P에게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생면부지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씩도 지출하고, 한 청년이 입은 2500 만원가량의 손해도 대신 갚아주는 마당에 그깟 몇 백 만원이 대수랴. 홍보비 한 번 거하게 지불한 것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2. 이 분쟁에는 작은 자를 들어 큰 자를 치시는 주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P와 ㅇ수학은 규모면에서는 다툼이 성립 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도 차이가 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ㅇ수학과의 분쟁에서 잃을 것이 없다. 워낙 인지도가 없다보니 더 이상 잃을 인지도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P가 C의 문제를, 크리스천으로서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이성적으로 처리해가는 모습을 보며 더욱 P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지체들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P가 모른 체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토록 강력한 유대감과 조직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첫째, 가룟 유다 DNA를 가진 자들을 치밀하게 분별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정말로 돈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했기 때문이다.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당연한 공식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놀라운 것은, 베풀수록 배가 되어 돌아오는 천국의 페이백 시스템이다. P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된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임을 알고 있다.
P는 더욱 더 기쁨으로 베풀게 되고, 호의를 받은 분들 또한 ‘이런 호의는 처음이라’며 천국의 순환 시스템으로 합류하고 있다. P와 함께하는 지체들은 모두 그렇게 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주님 앞에서 인색하게 구는 자들은 이 말씀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장 38절)
가짜가 아니라, 진짜를 가려낼 안목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진짜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자.
‘돈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진짜로 돈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그는 진짜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사기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부는 시간이 지나면 열매를 통해 증명이 될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 20절)
여기 ‘돈이 아니라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업가 P가 있다. P는 한 성도의 자녀 A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주님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기도해 왔는데 아영이가 첫 번째 학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 주세요”
약 2년 후, P는 정말로 세상에 없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신앙 인격이 검증된 선생님들과 함께였다. P는 시중에서 월 50~80만원 정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월 12만 5천원에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금액이 가능했을까?
프로그램 개발자의 수고비, 회사 설립과 운영에 소요되는 고정 경비, 회원을 모집하고 학부모를 응대하는 등 사업에 필요한 교육과 등록, 세무회계 등 기타 모든 제반 비용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P는 프로그램을 통해 단 한 푼의 금전도 취하지 않는다. 한시적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만들고 선생님들을 교육 시키는 준비 기간 2년, 프로그램이 자리 잡기까지 다시 2년, 총 4년간 그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한다.
이정도면 ‘돈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위해서’라는 P의 말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그 중심만큼은 말이다.
P의 블로그에는 ‘성도를 세워서 교회를 세우겠다’는 그의 포부가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P는 온라인에서 만난 경제적으로 가장 약자였던 성도들을,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상태에서 기도 훈련을 시키며 물심양면 후원하여 억대 연봉자를 만드는 등 연봉증가와 인간관계 회복, 몸과 마음의 건강 등 삶의 돌파를 이끌어 냈다. 그렇게 세워진 성도들의 얼굴과 실명, 그들의 6년간의 성장스토리가 P의 블로그에 나열되어 있다. 6년, 6년 동안 말이다.
P는 억대연봉자 모임 MDRT협회 최고 그레이드 달성자로 등재되어 있다. P는 3권의 책을 집필했고, 그 중 한 권은 네이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100억대 규모의 공사 현장을 여럿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과 함께 국. 내외 미자립 교회 목회자를 돕기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성도들이 꿈을 말하면 ‘기도합시다’ 말로만 하지 않고, 함께 기도하며 비전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킨 후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 정식 회사를 설립해주고 실제로 매출까지 발생시키도록 돕고 있다.
P는 성도들을 선생님들로 세웠다. 그렇게 세워진 선생님들은 P와 함께 학생들을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P가 만든 프로그램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광고비 한 푼 지불하지 않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한 번 수강한 학생이 끊지 않는 재수강 행렬과 대안학교에까지 입소문이 나서 선생님들이 넉넉한 강의 소득을 얻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수업뿐 아니라 진로와 신앙 상담도 함께 해주다보니 아이들과 유대관계가 형성되고 자연스레 학부모님들과도 가족 같은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렇듯 P와 함께 했던 이들은 모두 P를 만나기 전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금전적으로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 개발자인 P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ㅇ수학에 억울한 일을 당했던 C는 어떻게 되었을까?
ㅇ수학을 설립한 선교단체대표 D에 대해 알아보자. D는 이미 여러 기독교 교단에서 이단 시비에 휘말렸던 바가 있다. 한 장로교 교단 총회장님은 D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좀 위험해요. 가까이 지내지 마세요.”
한 기독교 출판사의 대표님 또한 D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딘가 정직하지 못한 느낌이 있어요.”
D는, 본인이 이단 시비에 말려 억울했던 경험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억울한 처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D가 이단 시비에 휘말린 이슈 중 한 가지를 꼽자면 ‘자신이 직통 계시를 받는다’는 주장이 있다.
직통 계시라 함은 ‘주님께서 내게 ~ 하라’고 했다 주장하며 다수를 선동하는 행위다. 이는 ‘주님께서 용서하라는 마음을 주십니다’와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상상해 보라. 모든 목회자들이 여기저기서 주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며 성도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선동한다면 교회 질서가 어떻게 되겠는가?
다수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교단 입장에선 이런 위험요소 때문에라도 ‘직통 계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D가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주장을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어쨌거나 아군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가? 진짜로 D가 계시를 받은 거라면 어쩌겠는가?
필자의 지체들 또한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구체적인 응답들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도 신기한 간증들이 끊이지 않으니 다른 성도의 삶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D가 행한 일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느껴지지 않자 D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 D는 선배들에게 요청해서 받은 선배들의 회사 자료로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어떤 기업체 대표실 문을 ‘뻥’ 차고 들어가서 설득하여 사업을 해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루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께서 그만두라고 하셨고 지금은 주의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옛날 일부 부흥강사들이 사용하던 가짜 간증처럼 허술해 보이지만 믿어준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번엔 D가 직통 계시를 받아 설립했다는 ㅇ수학의 경영 상태와 이용자들의 평가를 살펴보자.
회사의 중역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자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ㅇ수학은 현재 직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월급을 못 받고 있는 내부 직원 중에는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디 취직해도 고액 연봉을 거뜬히 받을 인재들을 모아 놓고 월급도 못 줄 정도의 경영난을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계시에 의한 결과물인가? 몇 가지 뻔한 답변이 떠오른다.
“응답 못 받은 것도 주님의 뜻이다. 고난도 은혜다.”
선배들이 준 자료만으로도, 사업을 일으켜 성공시킬 정도의 경영 능력은 어디 갔는가? 타 회사 내부 자료를 취합하여 재가공하는 것에 따른 위법성과 도덕성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교육 업계에서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폭리 수준의 본사 마진에 대해 여기저기 터지는 불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래 글은 네이버에 ㅇ 수학으로 검색하면 뜨는 블로그 글의 일부이다.
이런 근본 없는 수익 분배 구조는 대체 누가 짠 것인가? 선생님들은 굶어 죽어도 좋으니 일단 본사만 살면 된다는 것인가? 그렇게 선생님들을 쥐어짜서 가져간 마진으로 얻은 결과가 고작 아사직전의 본사란 말인가? 평소 평신도들에게 ‘영향력을 키우려면 성공해야한다며 기도하라’고 그렇게 외치더니 정작 본인이 기도한 결과가 이것인가?
함께했던 가족 같은 지체에게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행한 이 부도덕한 처사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고동락하던 지체를 사실여부 확인 없이 쳐낸 그 인격이 그리스도의 것이 맞는가?
심지어 ㅇ수학 직원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행동을 C가 모르는 줄 알고, C에게 C가 속한 단톡방에 자신을 초대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C집사님! 집사님이 ㅇ수학 단톡방 개설하신 곳 있으시면 저 좀 초대해 주실래요?”
이 얼마나 비겁하고 졸렬한 처사인가. ㅇ수학 사람들이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선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C가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ㅇ수학 관련된 지인들에게 첫 번째 문자를 보냈다.
“곧 사실여부를 정리해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러자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일언반구도 없던 ㅇ수학 대표 D가 황급히 C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D는 크리스천 특유의 따뜻한 음성으로 C에게 호소했다.
“죄송합니다. 안식 월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은혜로 그냥 덮읍시다. 예수님도 죄 없이 죽으셨잖아요. 예수님도 얼마나 억울하셨겠어요.”
안식월이라 몰랐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뒤늦게라도 대표가 나서서 교육업을 하는 C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헛소문을 수습해 주면 된다. 그러나 D는 피해구제를 위한 대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사업체에 피해가 갈까봐 C의 입을 막기 위해 급급할 뿐이었다.
결국 C는 자신의 사회적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상황을 기록한 글을 ㅇ수학 회원들에게 직접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정리해서 보내 드린 글 확인하신 후 다시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글을 읽은 D로부터 2주가 지난 현재까지 어떠한 조치도 연락도 없었다. 본인들이 퍼뜨린 거짓말을 해명해 주지 않고, 무턱대고 덮자고만 하기에 ‘그럴 수 없으니 해명 자료를 보고 연락 달라’고 했는데 어째서 연락이 없는 걸까?
상대방이 힘없이 맞고만 있을 줄 알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몰래 뒤에서 두들겨 패다가 상대방에게 들키니까 이제 그만 싸우자고? 크리스천끼리 이러지 말자고?
적어도 크리스천이라면, 아니 정상적인 인격체라면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저지른 그 행동에 대해서만큼은 수습을 해 주었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ㅇ수학이 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지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더 이상 C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길 원치 않는다. 난정 같은 블랙 크리스천이 더 이상 교회에 해를 가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모든 직업에는 받은 돈에 걸맞은 역할 즉 ‘밥값’이 있다. 그렇다면 목사의 밥값은 무엇일까? 그것은 양들을 돌보는 것이다. 설교는 목사가 해야 할 업무의 일부일 뿐이다. 설교만하고 양들은 돌보지 않을 거라면 교수나 강사가 적합하다. 좋은 설교는 이미 유튜브에 넘쳐나지 않는가?
평상시에 크리스천들은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이 최고라 믿는다. 필자의 부모님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삯꾼도 있고 쭉정이, 염소도 있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의 담임 목사님과 지체라 부르던 이들이 자신을 모른 체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집사님은 여러 사람에게 저에 대한 험담을 하였고 곳곳에서 집사님의 이런 발언과 녹취, 문자를 저에게 보내오고 있습니다. 살펴보니, 본인 과실은 쏙 빼고 사실을 왜곡하여 저와 제 사업체를 공격하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다분히 보입니다.
집사님의 험담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집사님께서 ‘중간에 짤렸다’고 말하는 일대일 예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하는 마음으로 진행이 되지만 결국, 집사님 한 사람을 위해서 비용 없이 진행해 드린 무료 컨설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지각하셨지요. 집사님 한 사람을 위해 두 사람이 시간을 낸 건데 본인이 계속 지각하고 숙제에 해당하는 칼럼도 읽지 않으셨지요? 칼럼을 읽지 않으면 컨설팅이 중단될 수 있다는 글은 여러 차례 게시글로도 공지가 되어 있었는데 이런 부분은 쏙 빼고 본인 유리한 이야기만 하고 다니셨더군요.
이처럼 집사님의 모든 발언에는 상대방을 망가뜨리기 위한 악한 의도가 다분히 보입니다. 본인 잘못은 빼고 말하고, 사실 여부가 확인 되지 않는 추측성 발언을 사실처럼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번 다툼은 서로에게 얻을 것이 전혀 없는 사탄의 작품입니다. ㅇ수학은 기독교 단체로서 이런 논쟁자체가 이미지에 독이 되는데 이는 집사님으로 인해서 촉발이 된 것입니다.
사복음서를 ‘분별’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살펴보라.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분별’을 당부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장 6절)
사역자들을 괴롭히며 훼방하는 자들이 누구일거라 생각하는가? 불교인? 힌두교인? 크리스천을 핍박하는 사람은 다른 종교인이 아니라 크리스천이다. 바로 난정 같은 크리스천들이 사역자들을 훼방하고 괴롭힌다.
평생 교회에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든 주님 뜻대로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사역자들에게 돌을 던진다. 잘한 일에는 문화 상품권 한 장 주지 않으면서 뭔가 트집 잡을 꼬투리라도 보일라치면 확인조차 하지 않고 돌부터 던지고 보는 악한 자들은 타 종교가 아니라 같은 기독교인들이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복수를 위해서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상대방을 물리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가 경찰서를 수시로 드나들던 경험이 있는가? 모든 것을 잃어 이판사판이 된 자들을 겪어 본 적 있는가? 주기적으로 한 번씩 복수할 기회를 찾아 평생 보복하는 집요한 리벤저들에게 걸려 본적 있는가?
제대로 임자 만나면 꼬리를 내리고 슬슬 뒷걸음질이나 칠 어설픈 꼬마 깡패들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십자가만 믿고 양껏 소리치며 사역자들에게 비수를 꽂는다. 그들은 상대방이, 예수님 때문에 자신에게 보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강자 앞에선 약하고, 교회 안에서만 강한척하는 이 비겁한 자들을 분별하는 것은 다행히 그리 어렵지가 않다. 영적으로 악한 자들의 특징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활동에 불성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꾸준함을 요하는 신앙미션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숙제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멘토링을 진행하지 않는다. 분별을 위한 나름의 장치인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일대일 멘토링을 받게 된 분께 드리는 공지 글의 일부다.
본인이 멘토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세요. 집중하셔야 집중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강의나 책 등 다른 좋아 보이는 것들이 있다면 먼저 그것에 집중해 보시고 오세요.
“왜 안 하셨어요? 다음엔 꼭 해오세요!”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분은 멤버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약속한 과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멘토링이 중단되고, 본인에게 향하던 멤버들의 관심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이것은 귀하께서 멘토가 되었을 때, 책임감 없는 멘티들로부터 귀하를 보호해 드리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멘토들이 슬럼프를 겪어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없게 되는 모습을 보며 오랜 시행착오 끝에 구축된 매뉴얼입니다.
멘티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차피 멘토링은 몇 회 만에 중단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돈도 받지 않고 몇 사람이 어째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본 적도 없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겠습니까?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임을 정녕 믿지 못하신다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필자가 매월 후원금을 요구했다는 난정의 주장 역시 실상은, 국내외 미자립 교회를 돕기 위해 1개월에 1만원씩 후원하는 활동인데, 후원금조차도 각 교회로 직접 송금하도록 각 미자립 교회 계좌 번호가 적혀 있어서 단 1만원도 필자가 만져 볼 수 없는 구조이다.
블로그에 들어가면 후원교회 이름과 각 교회별 계좌번호가 있어 직접 확인 가능하고 각 교회 목사님께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난정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는 증거가 6년 전부터 차근차근 블로그에 정리되어 있다.
여기 한 사역자가 있다. 미자립 교회와 미자립 성도를 섬기며 6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증인들이 즐비한 상황이다. 이 사역자에게 비수를 꽂은 자는 얼마 전까지 사역자의 칼럼을 읽으며 ‘은혜 받았다’는 등 자신의 각오를 댓글로 남기며 마지막 단계까지 마치고, 일대일 컨설팅에서 자신이 은혜 받은 소감을 말하며 그 사역자의 도움을 갈구하며 그에게 배움을 얻던 난정이었다.
평소 필자는 성도님들께 선물조차도 보내시지 말아 달라는 공지를 해왔다. 명절 등에 다른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선물을 줄 때, 혹시라도 경제적으로 선물할 여건이 안 되는 분의 마음이 어렵지 않길 바라서였다.
“배려는 약자 중심으로 하는 것이니 우리 교회는 목회자에게 선물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명예 훼손에는 두 가지가 있다.
- 사실을 적시한 것
-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처벌의 수위가 결정되는데 난정은 아주 악질적인 의도로 허위 사실을 지어냈기 때문에 처벌이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로 한 사람 나아가 한 교회의 사역과 사회적 생명을 끊을 수 있는 발언을 옮긴 ㅇ수학 또한 책임이 없을 리 없다.
1. C는 ㅇ수학을 누구보다 아끼는 소속 코치였다. 비용 한 푼 받지 않고 남편과 자녀들까지 총동원하여 ㅇ수학의 홍보 영상을 찍어줄 정도로 C의 ㅇ수학에 대한 열심은 특별했다.
2. 그러나 ㅇ수학은 이렇게 촬영한 영상은 물론 C가 작성한 모든 글들을 사실 확인 절차 없이 난정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내렸다. 이것은 사회 통념상으로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3. 문제 상황을 처리함에 있어 사실 여부를 당사자에게 확인조차 해보지 않고 직원을 동원하여 여기저기 전화로 상대방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발언을 옮겼고, 그것은 녹음 파일이 되어 당사자인 C에게까지 전달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4. C는, ㅇ수학 개발자인 L 로부터 직접 들은 ㅇ수학의 내부적인 어려움들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발설하기는커녕 도움이 되기 위한 여러 행동들을 취하여 왔다. ㅇ수학을 험담하는 분들이 있다면 자제시키며 좋은 방향으로 설득해왔다. 이를 입증해 줄 증인들도 있다.
5. 크리스천들이 ㅇ수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유명 브랜드라거나 다른 메리트 때문이 아니라 신앙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설립한 교육 기관에서 누군가의 생계를 위협하고 심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심각한 행동을 사실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자행하였다. 귀하의 가족이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상상해 보라.
난정이 퍼뜨린 거짓말에 대해서 살펴보자.
난정이 퍼뜨린 거짓말은 ‘C의 교회 목사님이 물질축복을 받게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C 교회의 목사님은 필자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필자로부터 금전 요구를 받았던 사람이 있다면 그 금액에 100배를 보상하겠다. 이 글을 캡처해 두길 바란다”
필자의 블로그에는 비용 한 푼 받지 않고 필자가 도움을 드렸던 분들의 이야기가 얼굴 실명과 함께 공개되어 있다. 코칭 받은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던 어려운 분들이었고 무료가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난정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난정은 자신의 아이를 지도하던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진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피드백 통화를 종료하고 한참 후 갑작스럽게 선생님에게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난정은 C에게 말하곤 했다.
“내 아이에 대해 쓴 소리 하면 못 참겠더라구요”
난정의 이런 발언은 문자로도 남겨져 있다. 난정은 학부모 코칭을 받고 있던 C의 피드백에도 격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다음 내용은 C가 난정에게 보낸 글의 일부다.
1. 집사님은 저와 마지막 통화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마친 후 갑자기 돌변하여 수업을 중단하겠다는 말과 함께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집사님은 처음부터 ‘나는 쓴 소리를 들으면 견딜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고 문자도 제게 있습니다.
3. 집사님은 다른 선생님께도 테러 수준의 문자를 수십 통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자녀가 숙제를 지속적으로 해오지 않아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통화 내용과 문자를 보면 평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웃기까지 하며 통화를 마친 후 갑자기 돌변하여 수업을 중단하겠다는 말과 함께 공격성을 보이며 문자를 수 십 개씩 연속으로 보냈습니다.
4. 다른 선생님께 보낸 문자와 저에게 보낸 문자,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집사님이 평소 해온 말과 반복된 행동들을 고려해 볼 때, 집사님은 본인 말대로 누군가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견디지 못하고 감정적 대처를 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5. 충분히 좋은 대화를 한 후 갑자기 돌발 행동하시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 혼자 대화를 곱씹으며 오해하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피해망상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6. 자신이 돈을 지출하는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이용하여 선생님을 제압하려 했던 흔적도 보입니다. 환불 협박에도 선생님이 굽신거리지 않고 담담히 돈을 돌려주자 수업을 잘하고 있던 둘째까지 중단을 요청하며 자신의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난정이 본인 아이의 선생님에게 보낸 문자에는, 선생님을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자신에게 굽신거리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한 마디로 그녀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위 사건은 당시 난정에게 무료로 일대일 컨설팅을 해주고 있던 필자의 귀에도 들어오게 된다. 필자는 국내외 미자립 교회를 후원하는 사역과 함께 평신도들에게도 무료 컨설팅을 제공해 왔다. 전화로 진행되는 무료 컨설팅의 대가로 필자가 유일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칼럼을 읽는 것이다. 칼럼을 읽지 않으면 진도를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정은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숙제를 해오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 한 사람을 위해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전화를 받지 않아서 지각까지 하곤 했다. 난정의 불성실함 때문에 컨설팅 중단을 고민하던 찰나에 그녀가 사람들을 대하는 무례하고 악한 모습까지 보게 된 필자는 컨설팅을 더 이상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C는 난정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말로 컨설팅을 종료했다.
"바쁘셔서 숙제를 못하시는 것 같으니 몰입하실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하시지요"
난정 또한 평소처럼 유쾌하게 대화를 마쳤다. 그러나 난정은 이번에도 전화를 끊은 후, 자신의 컨설팅이 중단된 것에 분을 표하며 C에게 문자 테러를 해오기 시작했다. 난정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C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거짓말들을 만들어 C가 근무하던 ㅇ수학에 유포했고, ㅇ수학은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소문을 냈다.
돈을 지불하는 스스로를 갑이라 생각하는 오만, 평소 작은 혈기조차 다스리지 못해서 화가 나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기어이 저질러야만 하는 화인 맞은 심령,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인격이 빚어낸 참사로서 평소 마음속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그러지 말라’는 만류를 가볍게 무시한 결과다.
그 결과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칭하면서도 복수를 위해선 어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전혀 예수님을 닮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1년 넘게 자신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본인이 멘토라 불렀던 C에게 그럴 순 없었을 것이다.
자기 자녀의 선생님 그것도 같은 주님의 자녀에게 그렇게 광기에 사로잡혀 혈기 가득한 문자 테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화평한 날에는 모두 거룩한 척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인격이 드러난다. 정말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자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원하는가?
말씀대로 살려는 크리스천의 인내를 ‘약함’으로 오해하고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교회 안의 악인들... 교회 안에는 양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염소, 쭉정이 그리고 사명감 없이 오로지 직업적으로 목사가 된 삯꾼들도 있다. 양인지 염소인지, 목사인지 삯꾼인지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 20절)
난정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번 사건은 난정이라는 한 크리스천의 사적인 복수심에서 시작된다. 재발방지 차원에서 실명을 사용하려 한다. 헛소문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려는 자들은 자신도 이름 정도는 걸어야 할 것이다.
난정이 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면 필자 또한 그녀를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 훼손으로 맞고소 할 계획이다. 진행과정에서 거짓을 말하는 쪽이 드러날 것이다. 그녀의 성씨까지 공개하게 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다른 미디어 선교사들처럼 필자 또한 다양한 핍박을 경험해 왔으나 한 번도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필자의 지체인 C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공격이 아니라 성도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말씀드리려는 것이다.
1. 이 글을 통해, 성도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목회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귀하의 자녀가 C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필자와 같은 조력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상상을 하며 글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평소에도 필자는 성도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무조건 참거나 혈기 부리는 것 말고도 차분하게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 왔다.
호주에서 3년 동안 받지 못했던 임금을 받게 된 오희초 성도, 집주인의 부당한 요구로 좌절될 뻔한 미국행을 해결 받은 이광욱 목사님 부부, 15년간 어떤 변호사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 받고 수십억대 추가 자산이 생긴 라윤 성도, 습관적으로 작업비를 떼어 먹는 크리스천들로부터 작업비를 받게 된 홍채아 성도, 공무원의 부당행정처리로 못 받을 뻔한 돈을 받게 된 미얀마 SK 선교사님 등 함께 기도하며 문제에 임하면 그 때마다 주님께서 이성적인 해법을 주셨다.
2. 주님의 이름으로 마케팅하는 교회 산하 사업체에서, 자신에게 충성했던 성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ㅇ수학을 운영하는 선교단체 소속 성도들은, 본인의 목사님이 C에게 했던 행동을 자신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그곳은 교회가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팔은 하나님을 향해 굽혀져야 하지 않겠는가.
네 편, 내 편 따지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차분히 글을 읽어 보라. 그러면 교회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보일 것이다.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도들이, 지체라고 굳게 믿었던 교회와 담임 목사로부터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고 있다. ㅇ수학에서 C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난정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C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날조한 거짓말을 C가 근무했던 ㅇ수학 운영진에게 유포했다. ㅇ수학측은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소문을 냈다.
다행히 지각 있는 회원들이 ㅇ수학직원이 퍼뜨리는 내용을 전화로 녹음하여 C에게 보내오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C는 난정과 ㅇ수학으로 인해 이미지에 중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3.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렇게 상황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실 이 상황은 필자의 세 번째 사역 ‘분별’과 관련이 있다. 필자는 교회와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리는 염소, 쭉정이, 삯꾼 목사에 관한 집필을 1년 전에 마치고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공개해 두었다. 그러던 중 난정이 시즌 3의 시작 버튼을 누른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책을 출간한 후에는 그 책에 관련된 활동으로 실제 삶에 적용하는 예시를 보여 왔다.
첫 번째. 기도에 관한 책 ‘그 힘 사용 설명서’
온라인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성도님들께 무료 기도 코칭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돌파를 이루어 냈다. 최저 임금에서 시작해 억대 연봉을 넘어서는 멤버들의 모든 과정이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기록되어 있다. 6년의 시간이 흘렀고 함께한 멤버 모두가 뚜렷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는 실제 인물들의 간증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함께하는 지체들은 사역의 열매인 동시에 필자의 달란트를 증명해 주는 증인이 되었다.
두 번째. 구원에 관한 책 ‘구원의 밸런스’
성도들의 가족구원과 관계 회복에 관련된 간증이 쏟아 졌다.
- 호주에 사는 제인 성도는 필자의 제안에 따라, 전도 대상자였던 어머니께 전화로 성경말씀을 전했다가 놀라운 간증을 듣게 되었다.
“엄마, 목사님께서 꼭 오늘 전하라고 하셨어. 오늘 넘기지 말라고...”
“정말 놀랍구나! 사실은 하나님께 주택 담보 대출 다 갚는 날 교회 가겠다고 그렇게 기도 비슷하게 했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오늘 낮에 마지막 남은 대출 다 갚고 통장까지 전부 찢어 버렸거든...”
제인 성도의 어머니는 집 근처 교회에 등록하여 새 가족이 되셨다. 그리고 2022년 9월 28일 기도 중에 폭풍처럼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셨다. 제인 성도가 어머니의 구원을 놓고 기도한지 19년 만의 응답이었다.
- '아버지 곁에서 함께 있어 드리라’는 필자의 제안에 따라, 라윤 성도는 치매 증상이 시작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귀국했다. 그리고 정말 기적같은 일이 시작 되었다. 기도하며 목 마사지, 유산균 등 필수 영양제, 금주, 함께 식사하며 대화해 드리기 등을 실천한 결과 화장실 처리를 못해서 실수하시던 모습이 사라지고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까지 드리게 되신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신 하나님, 어째서 평소 연락 한번 없던 고객들이 세일즈를 시작하자마자 연락해 오는 걸까? 여기저기서 소개 건을 물어보는 연결해 주시는 걸까?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작년 4월,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한 시간을 보내고 보험 세일즈에 복귀했을 때도 기다렸다는 듯이 고액 계약들이 터졌다. 이미 다른 보험사들로부터 상담을 마친 VIP들이 계약만을 앞둔 상태에서 필자에게 연결이 된 것이다. 내가 연락한 것이 아니다. 필자의 지인이 우연히 그분들의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상담 내용을 듣게 된 것이다. 정말 극적인 타이밍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상담을 마친 고객들은 필자가 내민 계약서에 서명하며 말했다.
“다른 FP들은 본인 수당을 위한 계약을 제시했는데...”
그렇게 나는 복귀 첫 달부터 누군가에게는 연봉일 수 있는 돈을 벌었고, 다음 달에는 그 두 배를 벌게 되었다. ㈜밸류체인 설립으로 바빠지기 전인 9월까지, 총 5개월 남짓 활동한 결과로 나는 또다시 억대의 돈을 벌었다. 보험업에선 항상 억대 연봉을 달성해 왔다. 나의 믿음의 나침반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필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억대 연봉자 모임에 가보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번 달은 안 되는구나 싶으면 기적처럼 실적이 맞춰져서 1등급이 맞춰져요.”
그들의 무의식이 1등급 사원 실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수없이 많은 자기계발서와 믿음, 신념에 관련된 책들이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믿음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모두 믿음의 법칙을 알고 그 힘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째서 그 힘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하나님 뜻대로 살면 반드시 복을 주신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며 나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분명 기복주의 신앙이란 비난이 따라 올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렇게 믿고 살아보면 어떨까. 철없는 기복신앙에 젖어서라도 좋으니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주실 복을 확신으로 사모하며 살아보면 어떻겠는가 말이다. 일부 교인들은 말한다.
‘복 받으려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믿고 기도했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더욱 시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온전히 2~3년을 순종해 본 적이 있기는 하냐고...
기복 신앙이라도 좋으니 2~3년 목숨 걸고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열이 펄펄 나는데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 예배를 사수하기 위해 달려가고, 억울한 일을 당해 상대방이 미워 죽겠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받기 위해 분노의 눈물을 삼키며 ‘주님 제가 저 사람 용서할게요. 그러니 저에게 예비하신 복을 주소서’ 기도하며 그렇게 3년을 하나님께 드려 보았는가? 드려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필자는 이 같은 고백을 한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변화를 반복적으로 목도하고 있다. 반면,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많이 아는 교회에서, 목소리깨나 내는 교인들이 화낼 거 다 내고 편을 가르는 등 교묘하게 불순종하며 어떤 기도의 응답도 받지 못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 고백은 누구보다 거룩하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평안을 주신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들의 고백과 달라 보인다. 우선 심리적 상태 또한 전혀 평안해 보이지 않는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쉽게 화를 낼 정도로 공격적이다. 어째서인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월등히 많을 뿐 아니라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성인인데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흔한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그 흔치 않은 케이스가 ‘축복 비판론자’들 가운데서 만큼은 흔하게 눈에 띈다.
이들의 비판적 시선은 비단 축복만이 아니다. 다른 지체들, 심지어 목회자를 향하기도 한다.
중보 기도인지 뒷담화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저급한 대화를 ‘기도’라는 단어로 자기 합리화 시킨 그에게선 어떤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간곡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른 지체를 험담하는 자, 지체를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세우는 자, 특히 교회 모임의 리더를 험담하는 자는 반드시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그와 함께 환난의 폭우를 맞게 될 것이다.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친해서’ 그를 등지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교회와 하나님을 등지고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인 기반조차 갖추지 못했으면서 늘 자신이 옳고 타인은 틀렸다 믿으며 상대방의 허락도 없이 상대방을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타인을 가르치길 좋아하는 그들은 타인으로부터의 가르침은 받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중히 이야기해도, 잘못을 지적하면 큰 분란이 야기 되며 그로 인해 생긴 깊은 골은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도 온유함도 발견할 수 없다. 타인의 의견에 즉시 반론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인격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상식적 지표가 아니던가. 이는 상식적인 부분이다.
‘예수 믿고 축복 받았다’는 누군가의 간증에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이 건강한 인격의 소유자이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 모든 세대를 두려움 없이 비난하는 자의 견해가 어떻게 거룩한 성도의 것이겠는가.
필자가 처음으로 애타게 구했던 것은 축복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처음 만났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었다. 많은 기도 응답과 체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부유함’과 연관되는 어떤 사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축복의 하나님을 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도가 응답 되기 시작했다.
선구자 = Way Maker = 예수님 =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거침없이 새로운 길을 내시는 분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비난을 피하실 순 없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병든 사람을 방치하는 자들에게 ‘안식일의 목적이 사람이 병들지 않도록 쉴 시간을 주기 위함’이라는 본질을 상기시키신 예수님.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음란을 저지르면 영혼이 상하니까 죄를 짓지 못하게 막으려고 율법으로 정한 것이지, 그렇게 신바람 나서 몰려 다니며 사람 돌로 쳐 죽이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율법의 본질을 볼 수 있듯, 본질을 알아야 그 제도의 본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본질을 볼 수 있어야 창의적 발상을 방해하는 모든 고정관념의 감옥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 육아, 직업, 신앙, 인간관계 등 어떤 영역에서든 빠르게 결과물을 낼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더 높은 배움을 얻기 위한 대학교육이, 교육적으로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타락한 온갖 풍습과 학자금 대출만 잔뜩 지우고 있는데도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하는 줄 알고 노예처럼 끌려가는 이들에게 주님은 뭐라 말씀하실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그런 지방 삼류대나 가서 돈 쓰고 세월만 죽이느니 차라리 취직해서 저축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청년들이 있다. 대학교육의 목적에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는 적어도 남들처럼 생각 없이 끌려가진 않았다. 생각하는 기능만 되찾을 수 있어도, 생각 없이 끌려가는 군중보다는 더 나은 시도를 할 수 있다.
배우려면 학원을 가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누가 만들었는가? 수강료만 쓰고 아무 효과도 못 보는 아이가 태반이지 않은가?
학원만 다니면 잘될 거라는 믿음, 본인이 노력해서 해봐야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이, 그저 돈으로 타인이 차려 놓은 제도에 의존해서 남들 다 하니까, 남들도 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따라 사는, 생각하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는 삶의 혁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성도에게 헌금부터 요구한다면 그는 가짜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 읽기, 기도하기’ 등의 영적인 것이라면 그의 말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영적으로 인도하려 할 때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영적인 권위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목회자가 진실된 마음으로 성도에게 집중하면, 기도의 응답과 같은 영적인 능력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둘을 매칭시켜 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김 목사야, 이는 내 양이니 잘 부탁한다’
‘박 성도야, 이는 내가 너를 위해 보낸 인도자니 잘 따르도록 해라’
목회자가 하나님 중심으로 서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통해 끊임없는 영적 능력을 부어 주신다. 예언, 예지, 통찰력은 흔한 편이고 신유의 은사도 나타난다.
"우리 목사님은 신유의 은사가 있어"
아니다. 목사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은사의 통로로 쓰신 것이다. 은사는 목사님이 주님 안에 서 있지 않으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리더로 인정하고 순종하면 그를 통해 지속적인 인도하심을 보여주신다.
반면, 성도가 목회자의 권위를 무시하며 불순종하게 되면 목회자를 통해 부어지는 신령한 만나는 그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도는 다른 목회자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 그 성도는 목자 없는 양같이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게 될 것이다.
이번엔 목회자 입장에서 진짜 성도와 가짜 성도를 구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성도에게 말씀과 기도로 집중하여 그 성도의 삶에 열매가 나타나는데도 그가 아무런 헌신도 하지 않는다면 그 성도는 가짜일 공산이 크다. 그는 언젠가 교회를 떠날 것이고 떠난 후에는 받은 축복을 고스란히 토해내어 처음보다 형편이 더 나빠지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교회 안에 온통 그런 성도뿐이라면 목회는커녕 성전 임대료조차 낼 수 없어서 목회자는 빚을 지게 될 것이다.
교회는 지체이다. 지체는 서로 연결 되어 생사를 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성도의 십일조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일조를 드려야 하고 목회자는 성도의 십일조가 지켜지고 더 풍성해 질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돌봐야 한다.
십일조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아직 십일조를 드릴 만한 믿음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오히려 억지로 십일조를 드리려 하다가 시험에 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될 수 있으니 차라리 드리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평생 드리기 싫으면? 평생 드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릴 믿음이 있는 자들이 드리는 것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기꺼이 십일조도 드릴 수 있게 된다.
평소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는 신앙 멘토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실 때 대접할 마음은 전혀 없고 번번이 계산을 피하는 사람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특히, 십일조가 그러하다. 십일조는 믿음이 없는 자들도 드릴 수 있는 영역이다. 믿음이 없어도 기본 예의로, 염치로, 상식으로 드릴 수 있다. 더군다나 자신이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면 십일조는 당연히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성전 임대료와 각종 공과금, 목회자의 생활비가 무엇으로 충당되겠는가. 목회자가 나에게 집중해 주는 고마운 시간은 내가 드리는 규칙적인 헌금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규칙적인 헌금, 이것이 십일조이다. 직장에서 일을 시켜놓고 급여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기분 좋으면 급여를 주고, 내키지 않을 땐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고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교인은 결과적으로 목회자가 목회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십일조를 드릴 마음이 없는 성도는 목회자의 시간을 함부로 뺏는 것을 삼가야 할지 모른다. 목회자가 다른 성도들에게 집중해서 그 성도들이 축복을 받아 교회 운영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이 양심적인 태도일 것이다.
“구원은 공짜지만 물질 축복은 공짜가 아니더라.”
오래전부터 믿음의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외쳐온 축복 간증의 기본 골격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기도 응답받았다는 성도 중에, 하나님께 물질 축복받아서 부자 되었다고 간증하고 다니는 분 중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시아 성도도, 유럽의 성도도, 구원받은 아프리카의 원주민 성도도 같은 간증을 한다. 과연,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게 복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교회의 도움과 시설을 이용하고, 목회자의 헌신을 받으며 특혜만 누리고 답례는 하지 않으려는 양심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그게 가능하겠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어지지 않으니 십일조가 아까운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니 헌금이 망설여지는 것이다. 결국, 그의 삶은 그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았던 알리바이 리포트를 또다시 남기게 되었습니다.
알리바이 리포트는, 밸류체인에서 봉사하고 있는 멘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작성하는 글입니다. 언젠가 멤버들이 하나님께 대외적으로 쓰임 받게 되는 날, 행여라도 억울한 소문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객관적 상황을 미리 남겨 놓는 기록입니다.
귀하께서 공격하듯 책망하고 있는 그 멘토는 귀하의 자녀분과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청년입니다. 귀하의 자녀분이 어려운 누군가를 도왔는데 몇 년 만에 나타나서, 지금 귀하께서 하고 있는 행동을 자녀분께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분 나이의 사역자들이 과연 선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사탄에게 영이 잠식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논리적 대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으며 할 말이 없으면 화를 냅니다. 부디 귀하와는 대화가 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한 글자씩 적습니다.
1. 귀하의 문자에서 멘토를 향한 원망이 느껴집니다. 혹시 멘토가 귀하께 돈을 요구한 적이 있나요?
2. 당시 밸류체인에서 함께 모금을 해드렸고 귀하께서도 감사 문자를 보내셨던 것은 기억하시나요?
3. 그럼에도 귀하께서는 멘토의 어떤 제안도 수행하지 않으며 ‘돈을 벌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은 기억하시나요?
어떤 미련한 사람이 돈을 돌려 받으려고 온라인에서 만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에게 돈과 시간을 쓰며 모금까지 해드리나요?
4. ‘돈을 주겠다’는 그 약속은 지키셨나요? 단돈 만 원이라도 보내셨나요?
5. 멘토의 지속적인 제안을 모두 무시하고 본인 마음대로 살다가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병까지 얻어서 몇 년 만에 나타나 이렇게 원망을 하시는 분과 맞닥뜨린 상황을 귀하의 자녀분이 겪고 있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말씀 읽으세요. 기도하세요. 운동하세요'
그 어떤 말도 실천하지 않고 본인 마음대로 사는 분을 지키고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멘토의 말이 성에 차지 않아서 본인 뜻대로 살겠다고 가셨으면 잘되셨어야지요. 영육간 튼튼하게 잘 사셨어야지요. 아니면 더 훌륭한 다른 멘토를 찾아가셨어야지요. 귀하의 목사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귀하의 지체들은 어디에 두고 생판 본적도 없는 사람에게 몇 년 만이 나타나서 이런 원망을 쏟아 놓으시는 건가요?
주님께서 연결해주셨다고 믿었다면... 멘토가 그 정도 노력을 보였다면 본인도 성의는 보이셨어야죠. 본인 시간만 소중합니까? 정녕 멘토들이 할 일 없고 무능해서 이 사역을 하고 있는 줄 아시는 겁니까?
멘토의 제안은 전부 무시하고, 본인 맘대로만 행동하며 ‘힘들어 죽겠다’는 보기만 해도 하루 종일 우울해지게 만드는 장문의 문자만 줄창 보내기에 한 마디 했더니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요? 정죄를 한다고요?
정죄란 이런 것입니다. 강단에 서서 설교만 했으면 이런 일 겪지 않았을 텐데 괜히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습니다. 귀하께서는 현재 사역자를 훼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귀하 때문에 사역할 의욕이 사라집니다. 제가 이래서 함부로 멘티 관계 맺지 말라고 사역자들에게 신신당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게 정죄입니다
저는 모두가 은혜롭게 듣고 있는 간증 사례 뒤에 가려진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는 어두운 간증들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고 들으며 자라왔고 지금도 그 현장에 서있습니다.
고아를 입양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키웠더니 집에 돈을 훔치고... 속을 썩여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주었건만 친딸까지 겁탈한 입양아, 서울 상경해서 오갈 데 없는 청년을 데려다 기술은 물론 야간학교까지 보내 준 오너의 가게 부품을 훔쳐 판 청년... 용서했더니 계속 나쁜 행동으로 오너에게 피해를 입힌 최○○, 병력으로 취직조차 되지 않는 미혼모에게 육아와 일감을 제공해 준 오너를 급여 미지급으로 허위 고소했다가 재판에서 지게 되자 재판비를 달라고 한 염치없는 엄○○...
‘너 크리스천인데 용서 안 할 거야? 사랑 안 할 거야? 네 딸을 겁탈은 했지만 용서해야지? 여러 번 훔쳤고 앞으로도 훔칠 거지만, 망해서 네 가족들이 거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용서하고 데리고 있어줘야 주님의 사람이지? 어딜 감히 나를 버리려고 해? 그 어두운 표정은 뭐야? 끝까지 친절한 미소로 말 해야지?’
이런 것이 정죄입니다. 그리고 지금 귀하께서 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살이 찢겨도 품어야 하는 것이 십자가 사랑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귀하는 멘탈 약한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위험한 크리스천 같습니다. 무엇보다 귀하께서는 그런 사랑을 실천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는 사역은 구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착한 성도들의 마음을 역이용하려는 마귀에게 사역자들이 봉변당하는 일이 없도록 분별하고 지키는 것 입니다. 귀하께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마음 아프지만 저는 귀하로부터 제 지체를 지켜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원망으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잡았다! 교회 안의 악인들 1] 바로가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받는 복
프로그램 개발자인 P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ㅇ수학에 억울한 일을 당한 C는 어떻게 되었을까?
P는 평생을 기도해 왔던 모든 기도제목을 응답 받게 되었다.
1. 완벽한 시간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었다. P가 그동안 대가를 받지 않고 성도들을 섬겨온 과정과 P가 쓴 책과 칼럼이 일종의 ‘신뢰 보증’ 장치가 되어 P에게 투자 의뢰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P의 주위에는 돈을 맡기고 싶다는 대기 수요가 항상 있는 상태다.
2.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완전히 잊고 지냈던 꿈, P는 목회자가 되었다. 매주 성도들의 간증이 끊이지 않는 성령 충만한 성도님들과 함께하는 교회, 성도들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사가 되었다.
3. P는 신학교 시절부터 말해왔던 ‘목회자를 돕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선포를 이루어가고 있다. 돈 때문에 목회를 하지 못하는 목사님, 교회는 있으나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목사님, 젊은 일꾼들이 없어 꼭 필요한 교회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는 목사님 등 P는 자신의 지체들과 함께 목회자분들을 돕고 있다.
이번엔 C의 근황을 살펴보자.
C의 목사인 P는 예배 중에 모든 성도들 앞에서 선포했다.
“혈기 부리지 않고 지혜롭게 문제를 잘 처리하였으니 C 성도님에게 곧 전리품이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처럼 다음 날 C에게 한 관공서로부터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C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했다.
C는 강사료와 함께 100명의 학생을 배정받게 되었다. C와 한 번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평생 인맥이 된다. 100 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알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황금 인맥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ㅇ수학 직원이 여기저기 C에 대해 험담한 내용을 보면 C가, ㅇ수학 학생들에게 C의 개인 과목을 홍보한 것에 대한 험담이 있다.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수학도 아니고 전혀 다른 과목을 권하는 게 무슨 잘못인가?
학생들이 ㅇ수학 소유물인가? C는 ㅇ수학을 위해 기사도 써주고 홍보 영상을 촬영해주는 등 최선을 다해 ㅇ수학을 도왔다. 그러나 ㅇ수학이 C에게 저지른 여러 행동들로 미루어 볼 때, 그저 남 잘되는 꼴 보기 싫은 질투심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 상황은, ㅇ수학이 인색한 마음으로 C의 사업을 훼방하자 즉시로 하나님께서 C에게 새로운 고객들을 선물로 주신 상황으로 보인다. C는 어떤 크리스천일까?
C 부부는 자신의 아파트 중 한 채를 교회 겸 사택으로 제공했으며 10명이 넘는 교인들을 전도했다. 두 부부의 헌신으로 나이든 한 목회자 부부가 충분한 사례비를 받으며 34평 좋은 아파트에서 목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예수님 믿은 지 3년 차 되는 새신자 때에는 자신의 집을 기도 처소로 제공하여 날마다 많은 성도들의 기도 부흥을 이끌었으며, 10년 근속으로 받은 5돈짜리 순금 메달을 지역 개척 교회에 드릴 만큼 주님의 일에 진심으로 살아왔다. 거제도에서 인천까지 박보영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기 위해 매주 온 가족이 다녔을 정도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특별한 성도들이다.
이한수 목사님은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쩌면 성도님들이 목사님들 보다 더 믿음이 좋으실지도 모릅니다. 목사는 직업이 목사여서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오지만 여러분은 돈도 생기지 않는데 이렇게 열심히 교회를 나오니까요”
돈 한 푼 받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재정을 아낌없이 드리며 살고 있는 C 부부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P가 C에게 승리의 전리품을 선포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 분쟁에는 ㅇ수학에 대한 복수심이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C라는 한 성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상황을 사실대로 말할 뿐인데 그럼에도 ㅇ수학에 대한 험담처럼 들리는 이유는 ㅇ수학이 한 행동 자체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태훈이가 차에다 커피를 쏟았어요 - 험담처럼 들리진 않는다
태훈이가 차에다 똥을 쌌어요 - 태훈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말로 들린다
ㅇ 수학이 확인도 하지 않은 거짓말로 한 성도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다. 단지 했던 행동을 나열했을 뿐인데 행동 자체가 흉악하니 험담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ㅇ수학에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난정과 ㅇ수학의 거짓말을 들은 이들에게 상황을 정확히 알려 C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다. ㅇ수학을 이니셜처리 해 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ㅇ수학이 악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니셜로 덮어 놓은 모자이크가 모두 실명 처리 될 것이다. 명예 훼손에 따른 벌금 몇백만원은 P에게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생면부지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씩도 지출하고, 한 청년이 입은 2500 만원가량의 손해도 대신 갚아주는 마당에 그깟 몇 백 만원이 대수랴. 홍보비 한 번 거하게 지불한 것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2. 이 분쟁에는 작은 자를 들어 큰 자를 치시는 주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P와 ㅇ수학은 규모면에서는 다툼이 성립 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도 차이가 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ㅇ수학과의 분쟁에서 잃을 것이 없다. 워낙 인지도가 없다보니 더 이상 잃을 인지도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P가 C의 문제를, 크리스천으로서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이성적으로 처리해가는 모습을 보며 더욱 P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지체들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P가 모른 체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토록 강력한 유대감과 조직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첫째, 가룟 유다 DNA를 가진 자들을 치밀하게 분별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정말로 돈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했기 때문이다.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당연한 공식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놀라운 것은, 베풀수록 배가 되어 돌아오는 천국의 페이백 시스템이다. P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된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임을 알고 있다.
P는 더욱 더 기쁨으로 베풀게 되고, 호의를 받은 분들 또한 ‘이런 호의는 처음이라’며 천국의 순환 시스템으로 합류하고 있다. P와 함께하는 지체들은 모두 그렇게 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주님 앞에서 인색하게 구는 자들은 이 말씀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장 38절)
진짜 주님의 사업체 vs 가짜 주님의 사업체
“돈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하는 것이다”
예수님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기독교 사업체가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ㅇ수학’ 역시 ‘수학교육’ 이라는 본품에 +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입힌 상품구성이다. 주지하다시피 좋은 제품은 시간이 갈수록 매출이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론칭 4년이 되어가는 ㅇ수학의 현재 매출은 얼마나 성장하였을까?
ㅇ수학 프로그램 개발자 L의 말에 따르면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기존 인지도로 많은 회원을 모집해서 시작한 사업체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회원 수가 줄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교사들마저 ㅇ수학의 터무니없는 임금체계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신앙을 이유로 헌신 페이를 강요한다는 교사들의 불만은, 두유나 탄산음료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 있는 이단들을 연상케 한다.
‘능력 맛집’이라는 컨셉으로 성도모집에 성공한 ㅇ수학은 유명세를 기반으로 교육사업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오히려 교육사업 때문에 ‘능력 없음’이 탄로 나고 있는 상황이다. 수학사업을 접자니 ‘능력 맛집’이라는 모기업의 명성에까지 영향을 줄판이라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돈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사업한다는 ㅇ수학의 주장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사실, 가짜를 솎아내려는 태도는 성경에서 권하는 방식이 아니다. 가짜를 뽑으려다가 실수로 진짜를 뽑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태복음 13장 29절)
가짜가 아니라, 진짜를 가려낼 안목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진짜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자.
‘돈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진짜로 돈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그는 진짜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사기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부는 시간이 지나면 열매를 통해 증명이 될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 20절)
여기 ‘돈이 아니라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업가 P가 있다. P는 한 성도의 자녀 A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주님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기도해 왔는데 아영이가 첫 번째 학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 주세요”
약 2년 후, P는 정말로 세상에 없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신앙 인격이 검증된 선생님들과 함께였다. P는 시중에서 월 50~80만원 정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월 12만 5천원에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금액이 가능했을까?
프로그램 개발자의 수고비, 회사 설립과 운영에 소요되는 고정 경비, 회원을 모집하고 학부모를 응대하는 등 사업에 필요한 교육과 등록, 세무회계 등 기타 모든 제반 비용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P는 프로그램을 통해 단 한 푼의 금전도 취하지 않는다. 한시적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만들고 선생님들을 교육 시키는 준비 기간 2년, 프로그램이 자리 잡기까지 다시 2년, 총 4년간 그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한다.
이정도면 ‘돈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위해서’라는 P의 말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그 중심만큼은 말이다.
P의 블로그에는 ‘성도를 세워서 교회를 세우겠다’는 그의 포부가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P는 온라인에서 만난 경제적으로 가장 약자였던 성도들을,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상태에서 기도 훈련을 시키며 물심양면 후원하여 억대 연봉자를 만드는 등 연봉증가와 인간관계 회복, 몸과 마음의 건강 등 삶의 돌파를 이끌어 냈다. 그렇게 세워진 성도들의 얼굴과 실명, 그들의 6년간의 성장스토리가 P의 블로그에 나열되어 있다. 6년, 6년 동안 말이다.
P는 억대연봉자 모임 MDRT협회 최고 그레이드 달성자로 등재되어 있다. P는 3권의 책을 집필했고, 그 중 한 권은 네이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100억대 규모의 공사 현장을 여럿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과 함께 국. 내외 미자립 교회 목회자를 돕기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성도들이 꿈을 말하면 ‘기도합시다’ 말로만 하지 않고, 함께 기도하며 비전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킨 후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 정식 회사를 설립해주고 실제로 매출까지 발생시키도록 돕고 있다.
P는 성도들을 선생님들로 세웠다. 그렇게 세워진 선생님들은 P와 함께 학생들을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P가 만든 프로그램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광고비 한 푼 지불하지 않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한 번 수강한 학생이 끊지 않는 재수강 행렬과 대안학교에까지 입소문이 나서 선생님들이 넉넉한 강의 소득을 얻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수업뿐 아니라 진로와 신앙 상담도 함께 해주다보니 아이들과 유대관계가 형성되고 자연스레 학부모님들과도 가족 같은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렇듯 P와 함께 했던 이들은 모두 P를 만나기 전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금전적으로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 개발자인 P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ㅇ수학에 억울한 일을 당했던 C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거 정말 주님께서 주신 계시 맞나요?
ㅇ수학을 설립한 선교단체대표 D에 대해 알아보자. D는 이미 여러 기독교 교단에서 이단 시비에 휘말렸던 바가 있다. 한 장로교 교단 총회장님은 D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좀 위험해요. 가까이 지내지 마세요.”
한 기독교 출판사의 대표님 또한 D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딘가 정직하지 못한 느낌이 있어요.”
D는, 본인이 이단 시비에 말려 억울했던 경험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억울한 처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D가 이단 시비에 휘말린 이슈 중 한 가지를 꼽자면 ‘자신이 직통 계시를 받는다’는 주장이 있다.
직통 계시라 함은 ‘주님께서 내게 ~ 하라’고 했다 주장하며 다수를 선동하는 행위다. 이는 ‘주님께서 용서하라는 마음을 주십니다’와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상상해 보라. 모든 목회자들이 여기저기서 주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며 성도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선동한다면 교회 질서가 어떻게 되겠는가?
다수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교단 입장에선 이런 위험요소 때문에라도 ‘직통 계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D가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주장을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어쨌거나 아군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가? 진짜로 D가 계시를 받은 거라면 어쩌겠는가?
필자의 지체들 또한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구체적인 응답들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도 신기한 간증들이 끊이지 않으니 다른 성도의 삶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D가 행한 일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느껴지지 않자 D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 D는 선배들에게 요청해서 받은 선배들의 회사 자료로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어떤 기업체 대표실 문을 ‘뻥’ 차고 들어가서 설득하여 사업을 해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루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께서 그만두라고 하셨고 지금은 주의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옛날 일부 부흥강사들이 사용하던 가짜 간증처럼 허술해 보이지만 믿어준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번엔 D가 직통 계시를 받아 설립했다는 ㅇ수학의 경영 상태와 이용자들의 평가를 살펴보자.
회사의 중역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자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ㅇ수학은 현재 직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월급을 못 받고 있는 내부 직원 중에는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디 취직해도 고액 연봉을 거뜬히 받을 인재들을 모아 놓고 월급도 못 줄 정도의 경영난을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계시에 의한 결과물인가? 몇 가지 뻔한 답변이 떠오른다.
“응답 못 받은 것도 주님의 뜻이다. 고난도 은혜다.”
선배들이 준 자료만으로도, 사업을 일으켜 성공시킬 정도의 경영 능력은 어디 갔는가? 타 회사 내부 자료를 취합하여 재가공하는 것에 따른 위법성과 도덕성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교육 업계에서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폭리 수준의 본사 마진에 대해 여기저기 터지는 불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래 글은 네이버에 ㅇ 수학으로 검색하면 뜨는 블로그 글의 일부이다.
이런 근본 없는 수익 분배 구조는 대체 누가 짠 것인가? 선생님들은 굶어 죽어도 좋으니 일단 본사만 살면 된다는 것인가? 그렇게 선생님들을 쥐어짜서 가져간 마진으로 얻은 결과가 고작 아사직전의 본사란 말인가? 평소 평신도들에게 ‘영향력을 키우려면 성공해야한다며 기도하라’고 그렇게 외치더니 정작 본인이 기도한 결과가 이것인가?
함께했던 가족 같은 지체에게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행한 이 부도덕한 처사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고동락하던 지체를 사실여부 확인 없이 쳐낸 그 인격이 그리스도의 것이 맞는가?
심지어 ㅇ수학 직원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행동을 C가 모르는 줄 알고, C에게 C가 속한 단톡방에 자신을 초대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C집사님! 집사님이 ㅇ수학 단톡방 개설하신 곳 있으시면 저 좀 초대해 주실래요?”
이 얼마나 비겁하고 졸렬한 처사인가. ㅇ수학 사람들이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선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C가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ㅇ수학 관련된 지인들에게 첫 번째 문자를 보냈다.
“곧 사실여부를 정리해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러자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일언반구도 없던 ㅇ수학 대표 D가 황급히 C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D는 크리스천 특유의 따뜻한 음성으로 C에게 호소했다.
“죄송합니다. 안식 월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은혜로 그냥 덮읍시다. 예수님도 죄 없이 죽으셨잖아요. 예수님도 얼마나 억울하셨겠어요.”
안식월이라 몰랐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뒤늦게라도 대표가 나서서 교육업을 하는 C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헛소문을 수습해 주면 된다. 그러나 D는 피해구제를 위한 대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사업체에 피해가 갈까봐 C의 입을 막기 위해 급급할 뿐이었다.
결국 C는 자신의 사회적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상황을 기록한 글을 ㅇ수학 회원들에게 직접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정리해서 보내 드린 글 확인하신 후 다시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글을 읽은 D로부터 2주가 지난 현재까지 어떠한 조치도 연락도 없었다. 본인들이 퍼뜨린 거짓말을 해명해 주지 않고, 무턱대고 덮자고만 하기에 ‘그럴 수 없으니 해명 자료를 보고 연락 달라’고 했는데 어째서 연락이 없는 걸까?
상대방이 힘없이 맞고만 있을 줄 알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몰래 뒤에서 두들겨 패다가 상대방에게 들키니까 이제 그만 싸우자고? 크리스천끼리 이러지 말자고?
적어도 크리스천이라면, 아니 정상적인 인격체라면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저지른 그 행동에 대해서만큼은 수습을 해 주었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ㅇ수학이 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지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더 이상 C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길 원치 않는다. 난정 같은 블랙 크리스천이 더 이상 교회에 해를 가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모든 직업에는 받은 돈에 걸맞은 역할 즉 ‘밥값’이 있다. 그렇다면 목사의 밥값은 무엇일까? 그것은 양들을 돌보는 것이다. 설교는 목사가 해야 할 업무의 일부일 뿐이다. 설교만하고 양들은 돌보지 않을 거라면 교수나 강사가 적합하다. 좋은 설교는 이미 유튜브에 넘쳐나지 않는가?
평상시에 크리스천들은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이 최고라 믿는다. 필자의 부모님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삯꾼도 있고 쭉정이, 염소도 있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의 담임 목사님과 지체라 부르던 이들이 자신을 모른 체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군인가? 적군인가? 교회안의 치와와들
C가 난정에게 보낸 글의 일부다.
집사님은 여러 사람에게 저에 대한 험담을 하였고 곳곳에서 집사님의 이런 발언과 녹취, 문자를 저에게 보내오고 있습니다. 살펴보니, 본인 과실은 쏙 빼고 사실을 왜곡하여 저와 제 사업체를 공격하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다분히 보입니다.
집사님의 험담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집사님께서 ‘중간에 짤렸다’고 말하는 일대일 예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하는 마음으로 진행이 되지만 결국, 집사님 한 사람을 위해서 비용 없이 진행해 드린 무료 컨설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지각하셨지요. 집사님 한 사람을 위해 두 사람이 시간을 낸 건데 본인이 계속 지각하고 숙제에 해당하는 칼럼도 읽지 않으셨지요? 칼럼을 읽지 않으면 컨설팅이 중단될 수 있다는 글은 여러 차례 게시글로도 공지가 되어 있었는데 이런 부분은 쏙 빼고 본인 유리한 이야기만 하고 다니셨더군요.
이처럼 집사님의 모든 발언에는 상대방을 망가뜨리기 위한 악한 의도가 다분히 보입니다. 본인 잘못은 빼고 말하고, 사실 여부가 확인 되지 않는 추측성 발언을 사실처럼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번 다툼은 서로에게 얻을 것이 전혀 없는 사탄의 작품입니다. ㅇ수학은 기독교 단체로서 이런 논쟁자체가 이미지에 독이 되는데 이는 집사님으로 인해서 촉발이 된 것입니다.
사복음서를 ‘분별’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살펴보라.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분별’을 당부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장 6절)
사역자들을 괴롭히며 훼방하는 자들이 누구일거라 생각하는가? 불교인? 힌두교인? 크리스천을 핍박하는 사람은 다른 종교인이 아니라 크리스천이다. 바로 난정 같은 크리스천들이 사역자들을 훼방하고 괴롭힌다.
평생 교회에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든 주님 뜻대로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사역자들에게 돌을 던진다. 잘한 일에는 문화 상품권 한 장 주지 않으면서 뭔가 트집 잡을 꼬투리라도 보일라치면 확인조차 하지 않고 돌부터 던지고 보는 악한 자들은 타 종교가 아니라 같은 기독교인들이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복수를 위해서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상대방을 물리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가 경찰서를 수시로 드나들던 경험이 있는가? 모든 것을 잃어 이판사판이 된 자들을 겪어 본 적 있는가? 주기적으로 한 번씩 복수할 기회를 찾아 평생 보복하는 집요한 리벤저들에게 걸려 본적 있는가?
제대로 임자 만나면 꼬리를 내리고 슬슬 뒷걸음질이나 칠 어설픈 꼬마 깡패들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십자가만 믿고 양껏 소리치며 사역자들에게 비수를 꽂는다. 그들은 상대방이, 예수님 때문에 자신에게 보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강자 앞에선 약하고, 교회 안에서만 강한척하는 이 비겁한 자들을 분별하는 것은 다행히 그리 어렵지가 않다. 영적으로 악한 자들의 특징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활동에 불성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꾸준함을 요하는 신앙미션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숙제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멘토링을 진행하지 않는다. 분별을 위한 나름의 장치인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일대일 멘토링을 받게 된 분께 드리는 공지 글의 일부다.
본인이 멘토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세요. 집중하셔야 집중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강의나 책 등 다른 좋아 보이는 것들이 있다면 먼저 그것에 집중해 보시고 오세요.
“왜 안 하셨어요? 다음엔 꼭 해오세요!”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분은 멤버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약속한 과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멘토링이 중단되고, 본인에게 향하던 멤버들의 관심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이것은 귀하께서 멘토가 되었을 때, 책임감 없는 멘티들로부터 귀하를 보호해 드리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멘토들이 슬럼프를 겪어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없게 되는 모습을 보며 오랜 시행착오 끝에 구축된 매뉴얼입니다.
멘티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차피 멘토링은 몇 회 만에 중단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돈도 받지 않고 몇 사람이 어째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본 적도 없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겠습니까?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임을 정녕 믿지 못하신다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필자가 매월 후원금을 요구했다는 난정의 주장 역시 실상은, 국내외 미자립 교회를 돕기 위해 1개월에 1만원씩 후원하는 활동인데, 후원금조차도 각 교회로 직접 송금하도록 각 미자립 교회 계좌 번호가 적혀 있어서 단 1만원도 필자가 만져 볼 수 없는 구조이다.
블로그에 들어가면 후원교회 이름과 각 교회별 계좌번호가 있어 직접 확인 가능하고 각 교회 목사님께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난정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는 증거가 6년 전부터 차근차근 블로그에 정리되어 있다.
여기 한 사역자가 있다. 미자립 교회와 미자립 성도를 섬기며 6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증인들이 즐비한 상황이다. 이 사역자에게 비수를 꽂은 자는 얼마 전까지 사역자의 칼럼을 읽으며 ‘은혜 받았다’는 등 자신의 각오를 댓글로 남기며 마지막 단계까지 마치고, 일대일 컨설팅에서 자신이 은혜 받은 소감을 말하며 그 사역자의 도움을 갈구하며 그에게 배움을 얻던 난정이었다.
평소 필자는 성도님들께 선물조차도 보내시지 말아 달라는 공지를 해왔다. 명절 등에 다른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선물을 줄 때, 혹시라도 경제적으로 선물할 여건이 안 되는 분의 마음이 어렵지 않길 바라서였다.
“배려는 약자 중심으로 하는 것이니 우리 교회는 목회자에게 선물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명예 훼손에는 두 가지가 있다.
- 사실을 적시한 것
-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처벌의 수위가 결정되는데 난정은 아주 악질적인 의도로 허위 사실을 지어냈기 때문에 처벌이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로 한 사람 나아가 한 교회의 사역과 사회적 생명을 끊을 수 있는 발언을 옮긴 ㅇ수학 또한 책임이 없을 리 없다.
[양같은 염소 조심 무료 공개 중]
[[프롤로그] 해볼 거 다해보고도 안 된 성도를 위한 부흥 메시지!] 바로가기
복수를 위해 뭐든 다 하는 너, 크리스천 맞니?
ㅇ수학과 C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1. C는 ㅇ수학을 누구보다 아끼는 소속 코치였다. 비용 한 푼 받지 않고 남편과 자녀들까지 총동원하여 ㅇ수학의 홍보 영상을 찍어줄 정도로 C의 ㅇ수학에 대한 열심은 특별했다.
2. 그러나 ㅇ수학은 이렇게 촬영한 영상은 물론 C가 작성한 모든 글들을 사실 확인 절차 없이 난정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내렸다. 이것은 사회 통념상으로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3. 문제 상황을 처리함에 있어 사실 여부를 당사자에게 확인조차 해보지 않고 직원을 동원하여 여기저기 전화로 상대방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발언을 옮겼고, 그것은 녹음 파일이 되어 당사자인 C에게까지 전달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4. C는, ㅇ수학 개발자인 L 로부터 직접 들은 ㅇ수학의 내부적인 어려움들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발설하기는커녕 도움이 되기 위한 여러 행동들을 취하여 왔다. ㅇ수학을 험담하는 분들이 있다면 자제시키며 좋은 방향으로 설득해왔다. 이를 입증해 줄 증인들도 있다.
5. 크리스천들이 ㅇ수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유명 브랜드라거나 다른 메리트 때문이 아니라 신앙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설립한 교육 기관에서 누군가의 생계를 위협하고 심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심각한 행동을 사실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자행하였다. 귀하의 가족이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상상해 보라.
난정이 퍼뜨린 거짓말에 대해서 살펴보자.
난정이 퍼뜨린 거짓말은 ‘C의 교회 목사님이 물질축복을 받게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C 교회의 목사님은 필자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필자로부터 금전 요구를 받았던 사람이 있다면 그 금액에 100배를 보상하겠다. 이 글을 캡처해 두길 바란다”
필자의 블로그에는 비용 한 푼 받지 않고 필자가 도움을 드렸던 분들의 이야기가 얼굴 실명과 함께 공개되어 있다. 코칭 받은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던 어려운 분들이었고 무료가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난정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난정은 자신의 아이를 지도하던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진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피드백 통화를 종료하고 한참 후 갑작스럽게 선생님에게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난정은 C에게 말하곤 했다.
“내 아이에 대해 쓴 소리 하면 못 참겠더라구요”
난정의 이런 발언은 문자로도 남겨져 있다. 난정은 학부모 코칭을 받고 있던 C의 피드백에도 격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다음 내용은 C가 난정에게 보낸 글의 일부다.
1. 집사님은 저와 마지막 통화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마친 후 갑자기 돌변하여 수업을 중단하겠다는 말과 함께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집사님은 처음부터 ‘나는 쓴 소리를 들으면 견딜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고 문자도 제게 있습니다.
3. 집사님은 다른 선생님께도 테러 수준의 문자를 수십 통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자녀가 숙제를 지속적으로 해오지 않아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통화 내용과 문자를 보면 평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웃기까지 하며 통화를 마친 후 갑자기 돌변하여 수업을 중단하겠다는 말과 함께 공격성을 보이며 문자를 수 십 개씩 연속으로 보냈습니다.
4. 다른 선생님께 보낸 문자와 저에게 보낸 문자,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집사님이 평소 해온 말과 반복된 행동들을 고려해 볼 때, 집사님은 본인 말대로 누군가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견디지 못하고 감정적 대처를 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5. 충분히 좋은 대화를 한 후 갑자기 돌발 행동하시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 혼자 대화를 곱씹으며 오해하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피해망상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6. 자신이 돈을 지출하는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이용하여 선생님을 제압하려 했던 흔적도 보입니다. 환불 협박에도 선생님이 굽신거리지 않고 담담히 돈을 돌려주자 수업을 잘하고 있던 둘째까지 중단을 요청하며 자신의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난정이 본인 아이의 선생님에게 보낸 문자에는, 선생님을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자신에게 굽신거리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한 마디로 그녀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위 사건은 당시 난정에게 무료로 일대일 컨설팅을 해주고 있던 필자의 귀에도 들어오게 된다. 필자는 국내외 미자립 교회를 후원하는 사역과 함께 평신도들에게도 무료 컨설팅을 제공해 왔다. 전화로 진행되는 무료 컨설팅의 대가로 필자가 유일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칼럼을 읽는 것이다. 칼럼을 읽지 않으면 진도를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서 다니엘처럼 승리하라] 바로가기
그러나 난정은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숙제를 해오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 한 사람을 위해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전화를 받지 않아서 지각까지 하곤 했다. 난정의 불성실함 때문에 컨설팅 중단을 고민하던 찰나에 그녀가 사람들을 대하는 무례하고 악한 모습까지 보게 된 필자는 컨설팅을 더 이상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C는 난정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말로 컨설팅을 종료했다.
"바쁘셔서 숙제를 못하시는 것 같으니 몰입하실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하시지요"
난정 또한 평소처럼 유쾌하게 대화를 마쳤다. 그러나 난정은 이번에도 전화를 끊은 후, 자신의 컨설팅이 중단된 것에 분을 표하며 C에게 문자 테러를 해오기 시작했다. 난정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C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거짓말들을 만들어 C가 근무하던 ㅇ수학에 유포했고, ㅇ수학은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소문을 냈다.
돈을 지불하는 스스로를 갑이라 생각하는 오만, 평소 작은 혈기조차 다스리지 못해서 화가 나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기어이 저질러야만 하는 화인 맞은 심령,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인격이 빚어낸 참사로서 평소 마음속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그러지 말라’는 만류를 가볍게 무시한 결과다.
그 결과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칭하면서도 복수를 위해선 어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전혀 예수님을 닮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1년 넘게 자신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본인이 멘토라 불렀던 C에게 그럴 순 없었을 것이다.
자기 자녀의 선생님 그것도 같은 주님의 자녀에게 그렇게 광기에 사로잡혀 혈기 가득한 문자 테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화평한 날에는 모두 거룩한 척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인격이 드러난다. 정말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자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원하는가?
[양같은 염소 조심 무료 공개 중]
[[프롤로그] 해볼 거 다해보고도 안 된 성도를 위한 부흥 메시지!] 바로가기
지금부터 교회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크리스천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말씀대로 살려는 크리스천의 인내를 ‘약함’으로 오해하고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교회 안의 악인들... 교회 안에는 양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염소, 쭉정이 그리고 사명감 없이 오로지 직업적으로 목사가 된 삯꾼들도 있다. 양인지 염소인지, 목사인지 삯꾼인지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 20절)
난정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번 사건은 난정이라는 한 크리스천의 사적인 복수심에서 시작된다. 재발방지 차원에서 실명을 사용하려 한다. 헛소문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려는 자들은 자신도 이름 정도는 걸어야 할 것이다.
난정이 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면 필자 또한 그녀를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 훼손으로 맞고소 할 계획이다. 진행과정에서 거짓을 말하는 쪽이 드러날 것이다. 그녀의 성씨까지 공개하게 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다른 미디어 선교사들처럼 필자 또한 다양한 핍박을 경험해 왔으나 한 번도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필자의 지체인 C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공격이 아니라 성도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말씀드리려는 것이다.
1. 이 글을 통해, 성도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목회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귀하의 자녀가 C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필자와 같은 조력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상상을 하며 글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평소에도 필자는 성도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무조건 참거나 혈기 부리는 것 말고도 차분하게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 왔다.
호주에서 3년 동안 받지 못했던 임금을 받게 된 오희초 성도, 집주인의 부당한 요구로 좌절될 뻔한 미국행을 해결 받은 이광욱 목사님 부부, 15년간 어떤 변호사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 받고 수십억대 추가 자산이 생긴 라윤 성도, 습관적으로 작업비를 떼어 먹는 크리스천들로부터 작업비를 받게 된 홍채아 성도, 공무원의 부당행정처리로 못 받을 뻔한 돈을 받게 된 미얀마 SK 선교사님 등 함께 기도하며 문제에 임하면 그 때마다 주님께서 이성적인 해법을 주셨다.
2. 주님의 이름으로 마케팅하는 교회 산하 사업체에서, 자신에게 충성했던 성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ㅇ수학을 운영하는 선교단체 소속 성도들은, 본인의 목사님이 C에게 했던 행동을 자신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그곳은 교회가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팔은 하나님을 향해 굽혀져야 하지 않겠는가.
네 편, 내 편 따지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차분히 글을 읽어 보라. 그러면 교회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보일 것이다.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도들이, 지체라고 굳게 믿었던 교회와 담임 목사로부터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고 있다. ㅇ수학에서 C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난정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C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날조한 거짓말을 C가 근무했던 ㅇ수학 운영진에게 유포했다. ㅇ수학측은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소문을 냈다.
다행히 지각 있는 회원들이 ㅇ수학직원이 퍼뜨리는 내용을 전화로 녹음하여 C에게 보내오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C는 난정과 ㅇ수학으로 인해 이미지에 중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3.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렇게 상황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실 이 상황은 필자의 세 번째 사역 ‘분별’과 관련이 있다. 필자는 교회와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리는 염소, 쭉정이, 삯꾼 목사에 관한 집필을 1년 전에 마치고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공개해 두었다. 그러던 중 난정이 시즌 3의 시작 버튼을 누른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책을 출간한 후에는 그 책에 관련된 활동으로 실제 삶에 적용하는 예시를 보여 왔다.
첫 번째. 기도에 관한 책 ‘그 힘 사용 설명서’
온라인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성도님들께 무료 기도 코칭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돌파를 이루어 냈다. 최저 임금에서 시작해 억대 연봉을 넘어서는 멤버들의 모든 과정이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기록되어 있다. 6년의 시간이 흘렀고 함께한 멤버 모두가 뚜렷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는 실제 인물들의 간증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함께하는 지체들은 사역의 열매인 동시에 필자의 달란트를 증명해 주는 증인이 되었다.
두 번째. 구원에 관한 책 ‘구원의 밸런스’
성도들의 가족구원과 관계 회복에 관련된 간증이 쏟아 졌다.
- 호주에 사는 제인 성도는 필자의 제안에 따라, 전도 대상자였던 어머니께 전화로 성경말씀을 전했다가 놀라운 간증을 듣게 되었다.
“엄마, 목사님께서 꼭 오늘 전하라고 하셨어. 오늘 넘기지 말라고...”
“정말 놀랍구나! 사실은 하나님께 주택 담보 대출 다 갚는 날 교회 가겠다고 그렇게 기도 비슷하게 했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오늘 낮에 마지막 남은 대출 다 갚고 통장까지 전부 찢어 버렸거든...”
제인 성도의 어머니는 집 근처 교회에 등록하여 새 가족이 되셨다. 그리고 2022년 9월 28일 기도 중에 폭풍처럼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셨다. 제인 성도가 어머니의 구원을 놓고 기도한지 19년 만의 응답이었다.
- '아버지 곁에서 함께 있어 드리라’는 필자의 제안에 따라, 라윤 성도는 치매 증상이 시작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귀국했다. 그리고 정말 기적같은 일이 시작 되었다. 기도하며 목 마사지, 유산균 등 필수 영양제, 금주, 함께 식사하며 대화해 드리기 등을 실천한 결과 화장실 처리를 못해서 실수하시던 모습이 사라지고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까지 드리게 되신 것이다.
“예배를 드리다가 난생처음으로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씀해 드렸어요. 아버지도 저에게 그래 고맙다 하시곤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구요. 처음이었어요. 제가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한 거...”
- 김지연 성도는 지난 날 아버지께 받았던 상처를 묻고 매일 아버지를 안아 드리며 막힌 담을 헐기 위한 사랑의 망치질을 시작했다.
“핍박하고 거절해도 다가와서 우리를 안아 주신 예수님처럼, 우리 또한 한 번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대상이 아버님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버님 또한 태어나서 한 번은 그런 주님의 사랑을 받아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지연 성도의 아버지 또한 당신의 딸을 함께 안아주시며 서툴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세 번째가 분별에 관한 책 ‘양 같은 염소 조심’이다.
교회에서 충성 봉사했던 필자의 부모님이 가장 어려울 때 쌀 한포 주지 않고 모른 체했던 담임 목사님 그리고 목회자가 된 부모님의 목회를 거덜 낸 염소, 쭉정이 같은 교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너무도 소중할 수밖에 없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
교회에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삯꾼, 염소, 쭉정이, 크리스천 같지 않은 크리스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교회 생활 필독서!
[도서 '양같은 염소 조심' 무료 공개 중]
[[프롤로그] 해볼 거 다해보고도 안 된 성도를 위한 부흥 메시지!] 바로가기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신 하나님, 어째서 평소 연락 한번 없던 고객들이 세일즈를 시작하자마자 연락해 오는 걸까? 여기저기서 소개 건을 물어보는 연결해 주시는 걸까?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작년 4월,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한 시간을 보내고 보험 세일즈에 복귀했을 때도 기다렸다는 듯이 고액 계약들이 터졌다. 이미 다른 보험사들로부터 상담을 마친 VIP들이 계약만을 앞둔 상태에서 필자에게 연결이 된 것이다. 내가 연락한 것이 아니다. 필자의 지인이 우연히 그분들의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상담 내용을 듣게 된 것이다. 정말 극적인 타이밍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상담을 마친 고객들은 필자가 내민 계약서에 서명하며 말했다.
“다른 FP들은 본인 수당을 위한 계약을 제시했는데...”
그렇게 나는 복귀 첫 달부터 누군가에게는 연봉일 수 있는 돈을 벌었고, 다음 달에는 그 두 배를 벌게 되었다. ㈜밸류체인 설립으로 바빠지기 전인 9월까지, 총 5개월 남짓 활동한 결과로 나는 또다시 억대의 돈을 벌었다. 보험업에선 항상 억대 연봉을 달성해 왔다. 나의 믿음의 나침반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필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억대 연봉자 모임에 가보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번 달은 안 되는구나 싶으면 기적처럼 실적이 맞춰져서 1등급이 맞춰져요.”
그들의 무의식이 1등급 사원 실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수없이 많은 자기계발서와 믿음, 신념에 관련된 책들이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믿음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모두 믿음의 법칙을 알고 그 힘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째서 그 힘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하나님 뜻대로 살면 반드시 복을 주신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며 나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분명 기복주의 신앙이란 비난이 따라 올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렇게 믿고 살아보면 어떨까. 철없는 기복신앙에 젖어서라도 좋으니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주실 복을 확신으로 사모하며 살아보면 어떻겠는가 말이다. 일부 교인들은 말한다.
‘복 받으려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믿고 기도했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더욱 시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온전히 2~3년을 순종해 본 적이 있기는 하냐고...
기복 신앙이라도 좋으니 2~3년 목숨 걸고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열이 펄펄 나는데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 예배를 사수하기 위해 달려가고, 억울한 일을 당해 상대방이 미워 죽겠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받기 위해 분노의 눈물을 삼키며 ‘주님 제가 저 사람 용서할게요. 그러니 저에게 예비하신 복을 주소서’ 기도하며 그렇게 3년을 하나님께 드려 보았는가? 드려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필자는 이 같은 고백을 한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변화를 반복적으로 목도하고 있다. 반면,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많이 아는 교회에서, 목소리깨나 내는 교인들이 화낼 거 다 내고 편을 가르는 등 교묘하게 불순종하며 어떤 기도의 응답도 받지 못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 고백은 누구보다 거룩하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평안을 주신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들의 고백과 달라 보인다. 우선 심리적 상태 또한 전혀 평안해 보이지 않는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쉽게 화를 낼 정도로 공격적이다. 어째서인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월등히 많을 뿐 아니라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성인인데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흔한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그 흔치 않은 케이스가 ‘축복 비판론자’들 가운데서 만큼은 흔하게 눈에 띈다.
이들의 비판적 시선은 비단 축복만이 아니다. 다른 지체들, 심지어 목회자를 향하기도 한다.
중보 기도인지 뒷담화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저급한 대화를 ‘기도’라는 단어로 자기 합리화 시킨 그에게선 어떤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간곡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른 지체를 험담하는 자, 지체를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세우는 자, 특히 교회 모임의 리더를 험담하는 자는 반드시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그와 함께 환난의 폭우를 맞게 될 것이다.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친해서’ 그를 등지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교회와 하나님을 등지고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인 기반조차 갖추지 못했으면서 늘 자신이 옳고 타인은 틀렸다 믿으며 상대방의 허락도 없이 상대방을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타인을 가르치길 좋아하는 그들은 타인으로부터의 가르침은 받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중히 이야기해도, 잘못을 지적하면 큰 분란이 야기 되며 그로 인해 생긴 깊은 골은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도 온유함도 발견할 수 없다. 타인의 의견에 즉시 반론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인격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상식적 지표가 아니던가. 이는 상식적인 부분이다.
‘예수 믿고 축복 받았다’는 누군가의 간증에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이 건강한 인격의 소유자이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 모든 세대를 두려움 없이 비난하는 자의 견해가 어떻게 거룩한 성도의 것이겠는가.
필자가 처음으로 애타게 구했던 것은 축복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처음 만났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었다. 많은 기도 응답과 체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부유함’과 연관되는 어떤 사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축복의 하나님을 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도가 응답 되기 시작했다.
선구자들에게는 비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선구자 = Way Maker = 예수님 =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거침없이 새로운 길을 내시는 분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비난을 피하실 순 없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병든 사람을 방치하는 자들에게 ‘안식일의 목적이 사람이 병들지 않도록 쉴 시간을 주기 위함’이라는 본질을 상기시키신 예수님.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음란을 저지르면 영혼이 상하니까 죄를 짓지 못하게 막으려고 율법으로 정한 것이지, 그렇게 신바람 나서 몰려 다니며 사람 돌로 쳐 죽이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율법의 본질을 볼 수 있듯, 본질을 알아야 그 제도의 본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본질을 볼 수 있어야 창의적 발상을 방해하는 모든 고정관념의 감옥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 육아, 직업, 신앙, 인간관계 등 어떤 영역에서든 빠르게 결과물을 낼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더 높은 배움을 얻기 위한 대학교육이, 교육적으로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타락한 온갖 풍습과 학자금 대출만 잔뜩 지우고 있는데도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하는 줄 알고 노예처럼 끌려가는 이들에게 주님은 뭐라 말씀하실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그런 지방 삼류대나 가서 돈 쓰고 세월만 죽이느니 차라리 취직해서 저축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청년들이 있다. 대학교육의 목적에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는 적어도 남들처럼 생각 없이 끌려가진 않았다. 생각하는 기능만 되찾을 수 있어도, 생각 없이 끌려가는 군중보다는 더 나은 시도를 할 수 있다.
배우려면 학원을 가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누가 만들었는가? 수강료만 쓰고 아무 효과도 못 보는 아이가 태반이지 않은가?
학원만 다니면 잘될 거라는 믿음, 본인이 노력해서 해봐야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이, 그저 돈으로 타인이 차려 놓은 제도에 의존해서 남들 다 하니까, 남들도 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따라 사는, 생각하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는 삶의 혁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직업적인 목적으로 목사 직분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목회자가 성도에게 헌금부터 요구한다면 그는 가짜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 읽기, 기도하기’ 등의 영적인 것이라면 그의 말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영적으로 인도하려 할 때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영적인 권위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목회자가 진실된 마음으로 성도에게 집중하면, 기도의 응답과 같은 영적인 능력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둘을 매칭시켜 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김 목사야, 이는 내 양이니 잘 부탁한다’
‘박 성도야, 이는 내가 너를 위해 보낸 인도자니 잘 따르도록 해라’
목회자가 하나님 중심으로 서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통해 끊임없는 영적 능력을 부어 주신다. 예언, 예지, 통찰력은 흔한 편이고 신유의 은사도 나타난다.
"우리 목사님은 신유의 은사가 있어"
아니다. 목사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은사의 통로로 쓰신 것이다. 은사는 목사님이 주님 안에 서 있지 않으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리더로 인정하고 순종하면 그를 통해 지속적인 인도하심을 보여주신다.
반면, 성도가 목회자의 권위를 무시하며 불순종하게 되면 목회자를 통해 부어지는 신령한 만나는 그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도는 다른 목회자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 그 성도는 목자 없는 양같이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게 될 것이다.
이번엔 목회자 입장에서 진짜 성도와 가짜 성도를 구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성도에게 말씀과 기도로 집중하여 그 성도의 삶에 열매가 나타나는데도 그가 아무런 헌신도 하지 않는다면 그 성도는 가짜일 공산이 크다. 그는 언젠가 교회를 떠날 것이고 떠난 후에는 받은 축복을 고스란히 토해내어 처음보다 형편이 더 나빠지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교회 안에 온통 그런 성도뿐이라면 목회는커녕 성전 임대료조차 낼 수 없어서 목회자는 빚을 지게 될 것이다.
교회는 지체이다. 지체는 서로 연결 되어 생사를 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성도의 십일조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일조를 드려야 하고 목회자는 성도의 십일조가 지켜지고 더 풍성해 질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돌봐야 한다.
십일조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아직 십일조를 드릴 만한 믿음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오히려 억지로 십일조를 드리려 하다가 시험에 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될 수 있으니 차라리 드리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평생 드리기 싫으면? 평생 드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릴 믿음이 있는 자들이 드리는 것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기꺼이 십일조도 드릴 수 있게 된다.
평소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는 신앙 멘토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실 때 대접할 마음은 전혀 없고 번번이 계산을 피하는 사람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특히, 십일조가 그러하다. 십일조는 믿음이 없는 자들도 드릴 수 있는 영역이다. 믿음이 없어도 기본 예의로, 염치로, 상식으로 드릴 수 있다. 더군다나 자신이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면 십일조는 당연히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성전 임대료와 각종 공과금, 목회자의 생활비가 무엇으로 충당되겠는가. 목회자가 나에게 집중해 주는 고마운 시간은 내가 드리는 규칙적인 헌금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규칙적인 헌금, 이것이 십일조이다. 직장에서 일을 시켜놓고 급여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기분 좋으면 급여를 주고, 내키지 않을 땐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고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교인은 결과적으로 목회자가 목회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십일조를 드릴 마음이 없는 성도는 목회자의 시간을 함부로 뺏는 것을 삼가야 할지 모른다. 목회자가 다른 성도들에게 집중해서 그 성도들이 축복을 받아 교회 운영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이 양심적인 태도일 것이다.
“구원은 공짜지만 물질 축복은 공짜가 아니더라.”
오래전부터 믿음의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외쳐온 축복 간증의 기본 골격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기도 응답받았다는 성도 중에, 하나님께 물질 축복받아서 부자 되었다고 간증하고 다니는 분 중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시아 성도도, 유럽의 성도도, 구원받은 아프리카의 원주민 성도도 같은 간증을 한다. 과연,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게 복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교회의 도움과 시설을 이용하고, 목회자의 헌신을 받으며 특혜만 누리고 답례는 하지 않으려는 양심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그게 가능하겠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어지지 않으니 십일조가 아까운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니 헌금이 망설여지는 것이다. 결국, 그의 삶은 그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