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 가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며 중간 중간 SNS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몰입과 집중을 방해합니다. 평상시 사람의 뇌파는 베타파를 발생시키지만 무엇인가에 집중하게 되면 오메가파로 바뀌게 됩니다. 더 집중하게 되면 알파 혹은 세타파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은 기도와 명상을 할 때 나오는 것으로 소위 인간의 비범함을 견인합니다.
이 뇌파가 나오기까지를 체제가 변환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 계속해서 업무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체제전환만 하다가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집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집중할 대상, 즉 목표를 정하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업무처리에 필요한 뇌파가 나오도록 집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 가운데서 수업 내용을 수용하는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인지능력’의 차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지능력’에 영향을 주는 큰 요소는 바로 ‘집중도’입니다.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서로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업무능력’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무능력’의 차이를 만드는 것 역시 업무에 대한 몰입입니다. 몰입과 집중의 시간이 누적되면 인생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며 세상과 교회를 오갈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과 업무들을 나열할 수 있습니다. 틈틈이 시계도 보고 중간 중간 SNS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셔서 ‘영’으로 예배해야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창세 때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논, 밭의 곡식과 열매가 그러하듯 우리의 믿음과 인격 또한 그렇게 심어진대로 열매 맺어 익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선택하고 사용한 감정이 미래의 내 성품을 형성하고 내가 오늘 품은 생각으로 나의 인격은 익어갑니다.
사랑할수록 사랑하게 되고 믿을수록 믿음은 강해지며 화평케 할수록 평강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도 인내 할 수 있습니다. 평정심은 비즈니스는 물론 삶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위기와 갈등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위기가 찾아옵니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떠오르는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생각들입니다.
더 악화 될 것을 우려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사자가 생각했던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요.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심각할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평정심’입니다. 대부분의 잘못된 판단은 ‘평정심’의 부재에서 오니까요.
요셉은 평정심을 잃을 위기에 반복적으로 놓이게 됩니다. 형들 손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열심히 일 했건만 누명을 쓰고 갇혔을 때, 관원장들의 꿈을 정확히 해몽해주고 아무 댓가도 받지 못하고 계속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을 때...
감옥에서 언제 풀려날지 모를 요셉이 초조함의 공격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며 인내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그로부터 유지되는 ‘평정심’ 때문이었습니다.
‘몰입, 집중’ 업무의 최대 효율성을 논함에 있어서 반드시 대두되는 화두.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가장 효율이 좋다.”
우리는 몇 가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며 중간 중간 SNS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몰입과 집중을 방해합니다. 평상시 사람의 뇌파는 베타파를 발생시키지만 무엇인가에 집중하게 되면 오메가파로 바뀌게 됩니다. 더 집중하게 되면 알파 혹은 세타파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은 기도와 명상을 할 때 나오는 것으로 소위 인간의 비범함을 견인합니다.
이 뇌파가 나오기까지를 체제가 변환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 계속해서 업무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체제전환만 하다가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집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집중할 대상, 즉 목표를 정하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업무처리에 필요한 뇌파가 나오도록 집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 가운데서 수업 내용을 수용하는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인지능력’의 차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지능력’에 영향을 주는 큰 요소는 바로 ‘집중도’입니다.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서로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업무능력’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무능력’의 차이를 만드는 것 역시 업무에 대한 몰입입니다. 몰입과 집중의 시간이 누적되면 인생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며 세상과 교회를 오갈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과 업무들을 나열할 수 있습니다. 틈틈이 시계도 보고 중간 중간 SNS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셔서 ‘영’으로 예배해야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창세 때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논, 밭의 곡식과 열매가 그러하듯 우리의 믿음과 인격 또한 그렇게 심어진대로 열매 맺어 익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선택하고 사용한 감정이 미래의 내 성품을 형성하고 내가 오늘 품은 생각으로 나의 인격은 익어갑니다.
사랑할수록 사랑하게 되고 믿을수록 믿음은 강해지며 화평케 할수록 평강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 ) 할수록 더욱 ( )하게 된다.
누구라도 예외 일 수 없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과거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보다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늘’은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됩니다. 우리는 미래의 내가 그토록 오고 싶어 할 과거 속에 이미 와 있습니다.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더라면...
더 많이 기도 했었더라면...
열심히 공부 했었더라면...
저축을 좀 더 했었더라면...
우리는 미래의 나에게 심은 것을 먹일 수 있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특별한 힘’이 내재 되어 있다.
이 사실은 이미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 지 오래여서 이제는 대부분이 그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그 힘이 내재되어 있는 공간을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무의식에 깃들어 있는 ‘그 힘’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이미 그 힘을 사용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집중’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 방법을 실행하지 못한다. 집중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집중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렇듯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해결하려는 의지가 생기고 그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평상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탁월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집중할수록 그 아이디어는 더욱 업그레이드 되어가고 자신만의 노하우도 생긴다.
‘문제에 대한 집중’을 놓지 않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 믿음은 어디에서 올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 믿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도 인내 할 수 있습니다. 평정심은 비즈니스는 물론 삶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위기와 갈등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위기가 찾아옵니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떠오르는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생각들입니다.
더 악화 될 것을 우려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사자가 생각했던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요.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심각할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평정심’입니다. 대부분의 잘못된 판단은 ‘평정심’의 부재에서 오니까요.
요셉은 평정심을 잃을 위기에 반복적으로 놓이게 됩니다. 형들 손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열심히 일 했건만 누명을 쓰고 갇혔을 때, 관원장들의 꿈을 정확히 해몽해주고 아무 댓가도 받지 못하고 계속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을 때...
감옥에서 언제 풀려날지 모를 요셉이 초조함의 공격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며 인내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그로부터 유지되는 ‘평정심’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