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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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기도효과는 설명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구분 됩니다. 설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기도하면 무엇이든 빨리 배우게 된다.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하는 것이다. 집중력은 훈련이 된다. 그 증거로 집중할수록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하란 말이야!”

“저... 죄송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건가요?”


세상은 최선을 강요하지만 최선이라는 것을 다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최선을 알까? 


혹시 누군가와 죽도록 치고 박고 싸워 본적이 있는가. 없다면 죽도록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알겠지만 실제로 ‘죽도록 싸웠을 때’ 느껴지는 기분, 몸의 상태 또 그 이상의 무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초콜릿을 본적도, 먹어 본적도 없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초콜릿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먹어 본 사람만이 초콜릿을 온전히 알 수 있다. 이처럼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론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과 ‘집중 한다’는 것 또한 그러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집중해야 하나요?”

“네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본적 없는 사람, 집중해 본적 없는 사람은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데... 집중 상태를 유지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데... 


평소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성공하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최선을 다하는 ‘집중’을 배울 수 있을까. 


어린 시절 개인 교사와 단 둘이 수업을 하면서도 딴 생각을 했던, 그것이 습관이 되어 어떤 상황에도 집중하지 못하던 나는 기도하며 처음으로 집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끊임없는 가난이 숨통을 조여오던 시절, 나의 정신을 하나님께로 연결시키면 평안이 찾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 누군가가 술로 시름을 잊으려 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나의 정신을 주님께로 연결시키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덮었다.


“어! 내가 2시간이나 주님 생각을 안 했네.”


주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업무, 식사, 이동 모든 순간 마다 주님을 생각했다.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재미있는 생각할 거리도 없었다. 


주님께 집중하는 만큼 내가 선해 질 것 같았고, 내가 선해지는 만큼 주님께서 더 빨리 우리 집의 형편을 회복시켜 주실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세상 문제 앞에서의 집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셨다. 



그 믿음은 때로는 논리적, 기술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상담을 잘하게 해주세요.’ 라는 대전제를 세우고 기도하면 세부 액션 플랜으로


⇨ 먼저 상담에 필요한 원고를 작성하자. 왜 우리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왜 우리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지 두 가지 관점으로. 내가 들어도 설득이 될 정도로 완벽히 서술하자.


⇨ 원고가 길다. 지루하지 않도록 함축. 꼭 필요한 내용 아니면 삭제. 고급스런 어휘를 선택하되 너무 어려운 단어는 지양하자.


⇨ 먼저 상담 순서의 흐름을 익히자. 써 놓은 원고를 보면서 교재와 브로슈어를 꺼내서 능숙해 질 때까지 연습하자.


⇨ 원고를 외우려하지 말고 전달해야 하는 내용의 순서와 골자를 외우자. 먼저 원고를 단락별로 구분하고 각 단락의 첫 번째 줄만 메모지에 적은 후 메모 순서를 보면서 말하는 훈련을 하자.


⇨ 실전 훈련. 앞에 고객이 있다고 생각하고 실수가 없을 때까지 연습하자.


⇨ 내용이 자연스러운지 녹음해서 들어보고, 표정은 자연스러울 때까지 거울을 보면서 연습해보자.


⇨ 주변 사람들에게 시연해보고 문제점은 없는지 의견을 구해보자.



이런 과정을 거쳐 준비가 되면 가슴 가득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서 상담에 임할 수 있었는데 체결률은 100%에 가까웠다. 나중에는 상담 후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하지 않아도 ‘나의 설명을 들은 이상 우리 학원에 오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아니어도 나중에라도 올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더욱 여유롭게 상담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상당수의 클라이언트들은 상담원의 설명이 아니라 상담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확신과 에너지에 설득이 되어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면 자신이 먼저 그 논리에 완벽히 설득되어야 한다. 


상담에서 그랬던 것처럼 교재를 놓고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에 대해 기도를 하면 그에 맞는 결과물들이 나왔고 이내 잘 가르치는 학원으로 입소문이 났다. 더 나아가 영어교육업체의 요청으로 교육팀장을 맡게 되었다. 만들어진 교재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학습 방법을 구상해서 교사들을 교육하는 업무였다. 


가장 성적이 좋지 않았던 학생이 10년여 만에 선생님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어 최종적으로 유명대학 라이선스를 받아 진행하는 어학원 프로그램의 총괄기획까지 맡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과제에 대해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도에 집중하면 항상 효과적인 해결방안이 떠올랐다. 노력을 하니까 해결이 되고 해결이 되니까 더욱 신바람이 나서 더 큰 과제에 집중하는 이 행동은 습관이 되어 선순환을 했다. 성공하는 습관의 첫 단계인 성취하는 습관이 시작된 것이다. 


때로는 감성적, 근본적 해법을 주신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요?’

‘먼저 아이들이 네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너를 좋아하도록 만들어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저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네가 먼저 진심으로 사랑해라.’



우리는, 성공했던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계속 성공하는 상황을 목도하곤 한다. 그들이 계속 성공하는 이유는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모든 분야에서 집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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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현대인들 중에 상당수는 무기력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무기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도 하지 않는 사회적 무기력

2. 직장도 다니며 할 도리는 하지만 그 이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비전에 대한 무기력


무기력은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듭니다. 무책임, 무능, 나태, 의지박약... 


이런 태도를 경고하는 구절이 잠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러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죄이거나 죄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이 죄가 된다고?" 


죄의 기준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 온 아버지가 은퇴 후에도 경비실에서 3교대 근무를 하고, 칠순 노모가 식당에서 힘든 일을 하는데도 젊은 자녀가 노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써가며 미래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직업 없이 유튜브, 게임, 웹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프고 때로는 화가 납니다. 본인 또한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죄책감은 죄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바, 우리는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죄가 그러하듯 나태함 또한 스스로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당사자가 무기력한 상태를 지속하도록 합리적 변명을 찾아 줍니다.


“난 구직중이야. 꿈을 찾고 있어.”


그러나 타당한 변명거리가 있음에도 자꾸만 죄책감이 든다면 자신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양심에 비춰 살펴봐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가족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게으른 사람을 직원으로 고용한 업주는 그로 인해 업무적, 심리적 피해에 노출 됩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자영업자들이 직원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구한다면 주실까요? 

주십니다. 아버지의 경제교육프로그램에 순종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얘야, 아버지 공장에 일손이 부족한데 와서 도와다오.”

“그럼, 저도 월급 주실 건가요?”

“물론이지.”


적지 않은 오너들이 자신의 어린 자녀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 일을 도왔던 친구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사회에서도 인정받습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부잣집 자제들은 대체로 노동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부모에게 무한정 돈을 타서 쓰는 이들입니다.


일하기는 싫고 돈은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게으름은 충분히 죄의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를 의탁하며 나아가면 ‘게으름’부터 고쳐주십니다. 


죄인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갔듯, 게으르고 무능한 모습 그대로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실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예외는 없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첫 단추가 기도와 말씀. 기도와 말씀이 사람을 성실하게 만듭니다. 


그 근거를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논리적 설명을 해줘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택입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면 미래에 맞설 성실함도 길러진다고 믿는 것. 이것은 당사자의 선택입니다.



진심으로 기도하고 말씀에 전념하는 사람 중에 불성실한 이들을 본적이 있습니까. 반대로 성실함이 없는 이들은 대게 성경, 기도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확대해석, 위험한 일반화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취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요청해 오신 성도님들은 단 한분도 예외 없이 기도나 말씀을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기도와 말씀에 충만한 성도가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무기력한 모습으로 지내는 모습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무기력에 사로잡힌 성도들은 말합니다.


“성경 읽고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그것은 목회자 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목회 선상에서 충분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목회를 계속할까, 말까를 갈등하는 목회자 분들 또한 충분한 기도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로상담이 신앙상담이 되고 저는 기도부터 하라는 말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반복, 그렇게 책 ‘그 힘 사용설명서’가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말 보다 행동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가나 말만 앞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도모임 또한 그렇습니다. 얘기만 하다 기도시간이 끝이 납니다. 


그런 기도 모임은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결국 해체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기도 없는 삶은... 자꾸만 해체됩니다. 물기 없는 밀가루 반죽처럼 재료가 있어도 뭉쳐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꾸준함과 성실함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끌어 갑니다. 땀의 대가를 지불해 주십니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해서 벌도록 만드십니다. 그 열심에 불을 지피게 만드는 도구가 기도입니다. 


기도를 해보신 분들, 오랜만에 해 보시는 분들은 공감할 것입니다. 기도는 힘이 듭니다. 노동입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저항을 극복하며 점점 기도 시간이 늘어날 때 오는 심리적 변화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커져갑니다. 그 믿음이 모든 성공과 성취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 심지어 무신론자들도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성공공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하나님께서 돈을 안주시는 것이 아니라 못 주시는 것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충분히 성실하게 기도하지 않아서 못 주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성실히 기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적용이 가능해집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만 아니라면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최선을 다해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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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기도응답에 대한 믿음을 방해하는 것 중에는 죄책감, 죄의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되면 죄송해서, 두려워서, 어차피 기도해도 응답 해주시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죄의식을 느끼는 범위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이는 지나칠 정도로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는가하면 어떤 이는 심각할 정도로 죄에 무감각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성도는 마음속으로 지은 죄로 인해서도 죄의식을 느낍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면서 성경말씀은 한 장도 펼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죄의식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행동이 무엇인지 알면서 실천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실행에 옮겼을 때, 심지어 그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만큼 기도와 멀어집니다.


물론 우리가 죄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죄 때문에 죄송해서 하나님 앞에 서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가 됩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지은 나쁜 생각도 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만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기도 응답 받을 이는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 받을 자격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듯 기도의 응답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늘 듣지만 늘 잊고 살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리를 사용해주시고 응답도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에게만 설교 할 수 있는 자격을 주신다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쓰시는 이유는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를 써 달라고 기도하며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응답을 기대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 값을 사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때문입니다.


은혜 :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예수공로로 받고 기도 응답은 자기 공로로 받게 될까요? 


계산 해 본다면 잘 해서 받을 상보다 잘못해서 받을 벌이 훨씬 더 많을 우리입니다. 은혜는 언제나, 어느 상황에나 유효하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죄 값을 사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힘입어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넘어지지만 삶 속 시험과 난관을 기도로서 극복해가며 믿음의 성장을 거듭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왜 십자가여야만 하는지’를 머리가 아닌 영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회개 역시 사람의 행위일 뿐, 엄밀히 말해 이 회개로 인해 죄 값이 지불되지 않습니다. 회개는 방향을 하나님께로 향하겠다는 결단의 표현 일 뿐, 회개의 눈물 때문에 죄 값이 사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값이 청산되는 것.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죄에서 오는 지나친 중압감에서 자유를 얻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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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기도응답 못 받은 것도 응답이다.”

“하나님의 뜻이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말들이 기도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기도 응답 못 받은 것도 응답이라는데 그럼 난 지금 응답을 받은 거야 못 받은 거야.”


“하나님의 뜻이면 이루어지고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럼 굳이 이렇게 힘들게 기도할 필요가 없잖아. 어차피 하나님의 뜻이면 이루어질 것이고 아니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 말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도다운 기도를 충분히 드린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깊은 신앙의 고백입니다. 


예컨대, A를 요청 드렸지만 엉뚱하게도 B를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때로는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그것이 더 탁월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성도는 확신에 차서 이렇게 간증하게 됩니다.


“기도응답 못 받은 것이 응답이더라.” 


충분히 기도하면 당장 눈앞에 응답이 나타나지 않아도 더 이상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임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모든 상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이길 믿음이 주어진 것입니다. 


“기도응답 못 받은 것도 응답이다.” 

“하나님의 뜻이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고백은 기도다운 기도를 올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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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성도들의 기도시간이 줄어든 이유는 환경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아직도 제3세계에 속하는 후진국 중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전혀 없어서 당장 먹을 한 끼의 식사를 염려해야 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한창 일해야 할 젊은 남자들이 길거리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먹을 것이 없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할 일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농사라도 짓고 싶지만 토질이 모래처럼 되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없고, 파종할 수 있는 씨앗도 없으며, 심었다고 해도 비가 오지 않아서 식물이 곧 말라죽는다.


어른이 들어가기 힘들만큼 굴의 크기가 작아서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할 소년들이 탄광에서 석탄가루를 마셔가며 채굴을 하고, 5살배기 아이가 부모를 따라서 피부에 화상을 입힐 만큼 강한 뙤약볕을 받으며 맨손으로 커피콩을 딴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은 그들의 한 두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한 끼를 먹기 위해 하루를 일하는 그들에게 내일을 위한 저축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토록 힘들고 위험한 일을 고작 그 정도 돈을 받고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 밖에 할 일이 없으니까. 그거라도 해야 하니까.”


한 때 우리나라 역시 이런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과거 지독하게 가난했었다. 그 때 당시, 신앙의 선배들은 틈만 나면 기도했다.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천막교회에서 꽁꽁 언 흙바닥에 거적때기를 깔고서 밤이 새도록 철야기도를 하고 새벽이 오면 또 다시 새벽기도를 했다.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기도에 집중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기도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기도가 아니면 그 고된 삶을 지탱할 수도, 극복해 나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취업난이 지속된다고는 하지만 제3세계의 빈민들의 경우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극빈국들과 비교한다면 그래도 살 만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알량한 편안함이 더 큰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기도를 막기도 한다. 


사람에겐 위기의 순간,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 신께 기도를 하게 되는 본능이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는 신을 찾는다. 그렇다면 사막 한 가운데에 홀로 떨어진 사람과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 중에 기도 할 확률이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이 문제 앞에 봉착 했을 때 제일 먼저 취하는 행동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판단이 들면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제일 먼저 본인의 힘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성실한 행동이긴 하다.


그러나 그 성실함 때문에 기도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성실함은 오히려 본인에게 영적인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태평양 한 가운데서 혼자 표류하고 있을 때 해야 할 그 행동을 평소 삶의 작은 문제 앞에서도 습관처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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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그렇게 주문 외우듯이 반복해서 똑같은 기도를 할 필요는 없어요. 한 번만 이야기해도 하나님은 들으시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을 실제 적용시켜 보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 제 동생이 교회에 나오게 해주세요.”


이 한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 기도드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기도를 해 본 성도, 응답을 받아본 성도들이라면 이렇게 말한다.


“충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기도하면 충분한 것일까?


우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과 충분한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기력이 쇠한 사람은 '몸보신 좀 해야겠다'라고 하며, 이미 충분히 먹었는데도 계속 음식에 손을 대는 스스로에게는 '아, 이제 그만 먹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공부해야 하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저축해야 하는데, 기도해야 하는데···.’


믿음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기도한다면 더 이상 기도의 결핍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격이신 하나님께 마치 마법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반복해서 기도를 드려야 하는 걸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통해 응답을 주신다. 믿음은 마치 자석과 같아서 믿음을 품게 되는 순간 그 믿음과 관련 된 것들이 삶속에 끌려오듯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먼저 당사자의 선택과 결정이 우선시 된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 받을 때와도 같다. 


즉, 믿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한 번 선택했다고 해서 곧 바로 믿음이 오지는 않는다. 그 선택이 단단히 굳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기도하며 선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반복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의 상태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올 때까지 반복해서 기도를 드려야 한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기도 함에도 뚜렷한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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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도자의 믿음에 반응하신다는 증표를 주려는 의도가 있다. 즉, 자신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시고자 함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심을 통해 스스로 살아계심을 나타내신다. 사람들에겐 하나님을 감춰지고 가려진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스스로 숨으려는 습성이 있는 신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피조물인 우리에게 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셨다. 기도하는 백성들 앞에서 스스로를 감추려 하신 적은 없었다.


국내 목회자 분들께서 공통적으로 많이 경험하는 간증이 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한참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쌀이 떨어질 때면 딱 때를 맞춰서 누군가가 쌀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날은 전혀 모르는 분이 ‘기도 중에 주님께서 이 교회에 가져다 드리라.’는 마음을 주셨다면서 그 때 당시 꼭 필요했던 것들을 가져 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사자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굳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시려는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너 혼자가 아니다. 나는 살아 있는 하나님이며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확신’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소유한 이들은 신앙생활 중, 어떤 시련이 와도 굳센 믿음으로 극복하게 된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기쁘게 여기실 뿐 아니라 자신이 응답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원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해놓고 기도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중요한 이유가 사라진 셈이 된다. 기도의 응답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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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Church
2023-01-16

“주님 제가 목회자의 길을 가길 원하십니까? 말씀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드린 분들 중에 하나님께 “NO!" 라는 응답을 받으신 분을 주변에서 본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를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힘을 각자가 이미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아예 꿈조차 꾸어지지 않지요.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해도, 하나님께 그것을 이루어 주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다 할지라도 한국인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당연히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만을 머릿속에 그리기 때문에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 현재 눈에 보이는 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식은 배우고 기능은 훈련하면 됩니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꿈에 대한 선택과 결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전을 주실 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 기도를 시작 했다면, 응답은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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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에 대해 '죄’라는 표현을 사용 했다. 

사무엘 선지자 역시 자꾸만 기도를 중단하고 싶어지는, 기도에 대한 쉼의 욕구를 알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기도를 중단하고 싶은 욕구에 승복하는 것을 죄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중보 기도 해 줄 그리스도인이 자신 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도를 외면한다면 그것을 죄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영적인 방황을 하고 있는 가족을 두고도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자신이 기도하지 않는 상황의 결과를 직시하고 그 영적 게으름의 최후에 대해서 생각 해봐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주님을 영접하겠지. 언젠가 돌아오겠지.’


그러나 오늘 나의 기도가 없으면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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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모든 사람들은 성공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본인이 알고 있는 그 방법을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자기 관리 능력 일 것입니다. 자기 관리를 쉽게 하는 방법은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처음,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킬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마트 폰에 타이머 기능이 있습니다. 10분으로 맞추고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하루에 1번 이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10분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하루에 10분은 하자는 의미 입니다. 10분을 하고 더 할 수 있으면 더 기도 하면서 시간을 늘려 갑니다. 그런데 기도 시간을 늘렸는데 기도하기가 힘이 드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은 10분만이라도 기도 하도록 합니다. 하루도 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 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훈련입니다.


매일 1시간 기도 한다면? 너무 좋겠지요. 그렇지만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킬 수 있을까요. 저 또한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10분은 어떻습니까. 10분은 누구나 지킬 수 있습니다. 10분 조차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핑계일 것입니다. 단, 걸으면서 하는 기도? 운전하면서 하는 기도? 그런 것은 '10분 기도 시간'에 포함을 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기도의 시간으로 적어도 10분 이상을 드리는 겁니다.


혹시 어제 기도를 안 했다면? 오늘 이틀치 20분을 하면 될까요? 그러면 5일 안 했으면 50분을 하면 될까요? 


아니요. 그렇게 밀린 숙제처럼 쌓아 놓다보면 아예 포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과감하게 자신을 용서하세요. 자신에게 너그러워 지는 겁니다. 오늘 넘어질 수 있습니다. 내일은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며칠간 태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과오를 묻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훈련 방식입니다. 하루에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기도 시간은 10분입니다. 


어제 3시간 기도 하신 분들은 오늘은 안 해도 될까요? 아니요 그래도 10분은 드리는 겁니다. 기도를 하루라도 쉬면 자칫하면 그대로 푹 쉬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 발견한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자기 관리 방법입니다.


하지만 매일 10분씩 기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의 엄청난 방해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기도 시간 10분은 결코 10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 동안 우리의 삶에 만들어 둔 기도를 훼방하는 수많은 장치들이 무너지도록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어떻게든 훼방하려 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오하고 기도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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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